친환경차가 내달리는 길
하이브리드 카와 그린 에너지 산업
2009년 04월호 지면기사  / 박철완 박사|미국 Drexel 대학교 초빙조교수

지난 연말 GM과 크라이슬러가 미 의회에 제출한 자구안에 대해 여론의 거센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소유의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 DC를 방문한 잭 왜고너 GM 회장의 모습은 쉽게 납득이 안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오피니언란에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는 내용의 글을 투고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몇 장 안 되는 자구안으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정부 지원을 받아내는 것이 GM이 할 수 있는 투자 대비 최고 효율의 수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GM과 더불어 크라이슬러 몰락의 배경은 경영진의 문제, 그리고 최근 국내에서 불거진 크라이슬러 대표 모델의 하자 문제(필자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보도에 의하면 차량 조립시 에어컨 관련 부품이 빠진 상태로 조립되었다고 한다) 등이 잘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물론 GM과 크라이슬러가 챕터 11 상태로 파일링되더라도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전 세계에 있는 제조공장의 문을 닫거나 재고정리 10% 추가 세일 등을 단행하거나 하지는 못할 것이다(마치 서킷시티가 챕터 11에 들어가면서 매장 정리를 한 것처럼).

잘 알다시피 자동차 산업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산업이 엄청나게 많다. 직접적으로 부품 산업이 있을 것이고, 자동차 정비 서비스 자체도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다. 자동차 도로망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관련 산업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자동차 산업과 마리아주(marriage: 궁합)가 가장 잘 맞는 산업 중 하나는 에너지 산업이다.


 

新 마리아주


에너지 산업은 석유파동과 지구온난화 문제와 맞물려 최근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산업에서 그린 에너지 산업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그리고 엔진 기반의 자동차 산업과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산업은 친환경 자동차 산업과 그린 에너지 산업으로 새로운 마리아주를 만들어 가려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과 에너지 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 자동차가 닿는 곳이면 어디든 주유소가 있고 새로 뚫리는 도로엔 어김없이 주유소가 문을 연다. 이렇듯 자동차는 핵심 연료로 오랫동안 화석연료에 의존해 왔고, 이 연료를 공급하는 주유소는 정유사의 핵심 사업 부분 중 하나인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한번 들여다보자.


2009년 3월 8일 아침, 김일상 씨는 7시에 중형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출근 도중에 회사 근처 주유소에 들러 가솔린을 가득 채웠다. 그는 이 정도면 3~4일은 충분하겠지 생각하며 날로 치솟는 기름 값에 절로 한숨을 짓는다.


2009년 봄을 맞는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그려볼 수 있겠다. 차를 타는 데 있어 소위 기름과 관련해서 신경 쓰이는 것은 단 하나 ‘가격’이다. 다른 것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럼 김일상 씨가 주유소를 방문했을 때의 정경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도록 하겠다.


김일상 씨는 차속을 줄이면서 비어 있는 자리를 찾는다. 빈자리를 찾아들어가 엔진을 끄자마자 주유원이 반갑게 인사하며 주유량을 묻는다. 가득 40 L 정도를 주유하는데 약 1~2분정도 소요되었다. 일상 씨는 결제를 신용카드로 하고 회원카드에 포인트를 적립한 후 주유소를 서서히 빠져나온다.


이 광경이 우리의 일상 평균적인 모습이라고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LPG 충전소라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주유소에 비해 LPG 충전소는 드물기 때문에, LPG 차량 소유자는 원거리를 갈 때 꼭 가까운 충전소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주유소는 상대적으로 워낙 촘촘히 있기 때문에 큰 불편이 없다. 반면 LPG 경우에는 Fuel Station Grid 자체가 이용에 용이하지 않다. 그렇다면 하이브리드 카와 Fuel Station Grid와의 관계는 어떤가?

하이브리드 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혁신이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첫 번째는 파워트레인 측면에서의 혁신이다. 또 다른 측면은 자동차 제어 방식에서의 고도화다. 즉 전장의 고도화가 이루어진 측면에서 신형 차량인 것이다. 전기전자공학을 이용한 적극적인 차량 제어가 이루어져 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측면의 혁신이 어우러져 하이브리드 카가 탄생한 것이다. 여기에 PHEV(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s)라는 방식의 신형 하이브리드 카까지 대두되었다. 어쨌든 핵심은 전자기술이 파워 측면과 제어 측면에 적극적으로 개입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 에너지 산업과의 관련성은 파워 측면만 봐야 하는가, 아니면 제어 측면도 같이 고려해서 봐야 하는가?

일차적으로 파워 측면만을 보도록 하자. 기존의 하리브리드 카는 리튬이온 혹은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를 충전하기 위해서 외부 전력을 끌어 쓰는 방식이 아니었기에 에너지 산업과의 또 다른 방식의 마리아주를 추구할 필요가 없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PHEV는 다르다.

전력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전력 사용량에 있어서 최근 10년간 있었던 인상적인 사건은 PDP, LCD 등 평판 TV의 등장이다. 기존의 브라운관(CRT) TV와 달리 초창기 평판 TV는 유지비가 많이 드는 ‘전기 먹는 하마’로 간주되었다. 평판 TV의 등장으로 각 나라의 전력망(Electric Grid)에 5~10% 정도의 주름이 갈 것이란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평판 TV는 앞으로 등장할 PHEV와 같은 방식의 미래형 자동차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PHEV의 등장은 화석연료와 동시에 전기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방식의 에너지원을 요구한다. 이는 Energy Grid를 짜는 데 있어서 Electric Grid와 Fuel Station Grid로 이원화된 형태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전력 산업과 정유 산업 간의 관계가 재정립돼야 한다. 양 산업이 결합된 형태의 기업 출현도 점쳐 볼 수 있다. 마치 한국전력과 SK에너지가 (비록 공기업과 사기업이란 차이가 있지만) 합쳐진 형태의 기업이라고나 할까.

현실적으로 한국전력과 같은 공기업이 정유 사업을 시작하는 방식이나, SK에너지 같은 사기업이 발전소를 인수하거나 건설하는 방식은 현행 법상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정유사가 그린 에너지를 생산, 저장, 판매하는 방식으로 기업 구조를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 하나의 사업 모델로 적합하지 않나 싶다(물론, 여기에 2차적으로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에너지를 저장 후 재판매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적어도 PHEV와 관련한 측면에서 본다면 말이다.

PHEV의 향방에서, 그 자동차가 개발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는 사실 핵심이 아니다. 그보다는 PHEV의 운용 모델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 핵심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유 회사가 그린 에너지를 사업의 한축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의 개선된 비즈니스 모델이 PHEV 도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사회적 인프라


그럼 PHEV에 대한 가상적인 운용 상황을 그려보자.


2013년 3월 8일, 김일상 씨는 3월에 구입한 PHEV형 중형차를 몰고 다닌다. PHEV를 구매했기에 아파트와 주민 센터(구 동사무소)에 PHEV 소유자 등록을 하고 PHEV용 주차 구역을 할당받았다. 그리고 주민 센터 직원으로부터 이번 달부터 전기세는 2가지 요율로 합산 청구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사실 PHEV를 사려고 할 때 PDP를 처음 샀을 때의 첫 달 전기요금에 깜짝 놀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망설였다. 그러나 PHEV의 경우 시범 보급 사업과 함께 전기세 요율, 지정주차, 충전구 등이 일상 씨가 거주하는 동네에 해당되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영업사원의 말을 믿고 구매를 결정했다.

일상 씨는 주차장에서 충전구에 충전 라인을 연결하고 충전이 시작되는 것을 확인한 후 집으로 올라간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일은 외근이 없으니 그냥 충전만 해도 출퇴근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대전을 다녀와야 하는 금요일에 맞춰 내일모레쯤 가솔린을 채우리라 생각한다.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2009년과 2013년경의 김일상 씨 일상은 이렇게 바뀔 수 있다. 2013년 김일상 씨의 삶을 봤을 때, 단순히 자동차 회사에서 PHEV를 개발했다고 해서 다되는 것이 아니라 갖춰져야 할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사회 인프라 측면에서 변혁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전 정부에서 언급되었던 K-grid(미국의 Smart-grid)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따라서 일종의 Organic-grid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생각하는 Organic-grid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그럼 위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서 다시 PHEV와 에너지 산업과의 관련성 쪽으로 초점을 맞춰보자. 정유(精油) 등의 에너지 산업은 현재 크게 3가지 도전을 받고 있다.


● 화석연료 이외의 연료로부터의 도전

● 태양, 수소, 풍력과 같은 그린 에너지에 의한 도전

● 연료가 아닌 전기 에너지로부터의 도전


첫 번째 경우는 바이오디젤이 화석연료 중에서 가솔린/디젤과의 점유율 경쟁으로 이미 표출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유 회사는 바이오디젤과 같은 형식의 새로운 연료에 대한 연구개발과 사업에 대해 충분히 기획도 하고 진행도 하고 있다. 물론 중소 업체가 신규 사업으로 제안하기도 하지만, 에너지 관련 사업은 결국 대형 자본을 앞세운 측에서 주도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경우는 가정에서도 태양광 발전 시설을 갖추는가 하면, 쓰고 남는 전기를 재판매할 수 있는 경제 구조가 만들어져 향후 대형으로 갈지 중소형도 생존할지 좀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소비유통 업체에 해당하는 신세계가 옥상에 태양전지 패널을 설치하여 자신들이 사용할 전력의 일부를 충당하는 사업 구조를 제시함에 따라 사업 목적에 이 부분이 추가된 바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전반적인 에너지 산업 측면에서 자본력과 경험이 풍부한 기업이 선도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 경우인 전기에너지의 도전 부분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나중에 Organic-grid 개념과 함께 따로 다뤄보겠지만, 간략히 기술하면 전기에너지의 활용도가 점점 증대되고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새로운 변수 ‘에너지 기업’

 


정유 회사와 같은 에너지 기업은 자신들의 생산품이 소모되는 곳이 크게 동력과 전기 생산 분야라는 측면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의 USABC(US Advanced Battery Consortium) 등 제법 많은 이차전지 관련 사업이나 커미티에는 엑손모빌, 쉘 등 대형 정유 회사들이 개입돼 있다. 한국의 SK에너지도 정유 사업 이외에 하이브리드 카용 이차전지와 시스템 개발을 하고 있으며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 업체인 SKME를 계열사 형태로 두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또 엑손모빌과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핵심 기술이라 할 수 있는 분리막 사업을 진행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엑손모빌은 한때 습식분리막의 세계 1위였던 일본 토넨 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으며, SK에너지는 독자적으로 습식분리막 기술 개발에 이어 제품화에 성공한 상태다). 이처럼 자동차 산업과 에너지 기업의 유기적 결합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향후 미래형 자동차 산업에서 자동차 회사의 가장 강력한 파트너이자 경쟁자는 정유 회사가 될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양상은 미국에서 특히 두드러질 전망이다.

하이브리드 카의 핵심 부품인 리튬이온 혹은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를 생산하는 기업 구조를 보면, 한·중·일이 참 다르다. 한국은 화학 및 전자부품 회사(LG화학, 삼성SDI)가, 일본은 전자 회사(산요전기, 마쓰시타, 소니)가, 중국은 배터리 전문 회사(그 중 독특한 회사가 BYD이다. 이 회사는 자체적으로 자동차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가 주력 회사들이다. SK에너지는 정유 회사가 진입하는 구조다. 어떤 형태가 정답인지 아무도 모른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BMW와 SAAB는 각각 항공기 엔진과 항공기를 만드는 회사였다. 반면 혼다는 자동차로 시작하여 항공기를 만드는 회사로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방향이 정답이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미국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사실상 파산상태에 접어든 GM과 크라이슬러는 국유화를 목전에 둔 금융계의 시티은행이나 AIG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적으로 챕터 11 상태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더 이상 대책이 없는 상태다. ‘선장’이 무능한 데다 이미 밑에서도 무너지고 있다. 이에 비해 포드는 그런대로 차분하게 대책을 세워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제 경색에 의한 자동차 수요 감소는 항우장사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2~3년 후를 대비해서 회사채라든가 현금 확보를 진행중이다.

기본적으로 미국 자동차 산업은 GM-크라이슬러에서 환골탈태할 새로운 회사, 혹은 적어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 후에 탄생할 New GM과 포드가 이끌어 가게 될 것이다. 이 때 미국 자동차 산업은 새로운 세대로 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바마 정부에는 이들이 제대로 길을 가준다면 롱런할 수 있는 꺼리가 많은 게 사실이다. 물론 이 꺼리를 현대·기아자동차가 적절히 이용할 수도 있다. 필자가 미국 현지에서 바라볼 때, GM으로 대별되는 미국 자동차 업체가 살아가는 여러 시나리오에 정유 회사의 개입이 이뤄진다면 한·일 자동차 회사들은 혹독한 미래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SK에너지와 같은 개발 능력이 출중한 정유 회사(여타 기업들은 정유 기능에 충실하기에 예외로 한다)가 현대·기아자동차와 어떻게 전략적인 제휴를 짜내는가, 또 미래형 자동차와 에너지 Grid의 핵심 요소를 어떻게 이끌어내는가에 따라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끝으로 필자의 개인적 희망은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다국적 정유 기업 및 미국 하이퍼 인프라 산업과 효과적으로 어우러져 세계를 다시 석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전망이 빗나가고, 대신에 현대·기아자동차가 그 길을 갔으면 하는 것이다.
chulw.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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