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노후車 지원방안, 그리고 에너지 세제
2010년 04월호 지면기사  / 글│박 철 완 박사 <chulw.park@gmail.com> 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 고문 컨설턴트

자동차 산업이 하루도 바람 잘날 없는 것 같다. 급기야 최근엔 토요타발 리콜 쓰나미가 몰아쳤다. 일부 예측은 다른 자동차 업체들에게 호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하고, 또 한편에서는 모든 자동차 업체가 그동안 쉬쉬했던 부분이 이제야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라고 한다. 필자 역시 토요타발 쓰나미가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작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기사에서, 필자는 그동안 눈부신 실적을 올린 듯 칭송받던 토요타 전문경영진이 사실은 잘해왔던 것이 아니라 문제가 많았으며, 이와 관련해 창업주 가문이 격노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 위기의 토요타를 예견하고 창업주 3세인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복귀한다는 뉘앙스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모 종교의 성전에도 나와 있듯, 한 사람에게 죄가 있다 싶으면 진실 여부를 떠나 그 기회를 이용해 주변서 매를 가하는 기회주의자는 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큰 비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토요타발 쓰나미에 대한 향후 예측을 쓰려고 준비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가 단순치 않아 아직은 아니다 싶어 일단 책상 뒷켠에 미뤄두기로 했다. 이번 호에는 자동차시장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에 따른 영향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노후차 지원방안과 유류가격 정책의 핵심인 에너지 세제에 의한 시장 향방에 관한 것이다.


요동치는 자동차 산업

2008년 하반기에 몰아닥친 경제 한파와 더불어 자동차 산업에서는 저연비(낮은 연료비용)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저연비 자동차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동차 유지비 측면에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저연비 자동차의 도입을 통해 자국의 에너지 사용량을 감축할 수 있다. 좀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중·남미의 몇몇 산유국들의 경우 자동차 도입률 증가로 석유수입국 처지로 전락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듯 운송 수단의 선진화에 따라 에너지 수급의 균형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전자산업에서 PDP TV의 최초 투입 시 우려했던 수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문명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특히, 문명이 발달하면서 전체 에너지 사용량에서 운송 수단에 의해 소모되는 에너지 사용량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2008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로 인해 자동차 업체들은 개인의 자동차 선택 성향이나 방향성에 부합하기 위해 경차뿐 아니라 풀 하이브리드나 클린 디젤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출중한 경차 제조 능력과 함께 풀 하이브리드 및 클린 디젤 제조 기술을 갖춘 회사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상황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몇몇 자동차 제조사는 2009년 한 해 눈부신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술적인 우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최고가 늘 최선은 아닌 것이, 자동차 산업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보이지 않는 손들의 영향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노후차 지원방안(National Scrappage Scheme)의 정책적 영향을 살펴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U 자동차시장은 다른 요인에 의한 영향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의 영향력을 살펴보는 데는 아주 적합하다.


판매의 증가 동인

EU에서 비중 있는 자동차시장으로 꼽을 수 있는 국가는 독일,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영국이다. 이들 국가는 시장 지배력이 높고 경차 쪽에 우수한 제품을 보유한 차량 브랜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표 2). 또한 노후차 지원방안에 대해 시간차를 두고 정책적인 지원과 중단을 하고 있기 때문에 노후차 지원방안의 여파를 관찰하기에 적합하다.
JATO Dynamics에서 제시한 데이터   (그림 3)에 의하면, 2008년 12월과 2009년 12월의 5개국 자동차 판매 대수에 있어서 재밌는 현상이 관찰된다. 최근 노후차 지원방안의 종료를 선언한 독일은 재작년 대비 29.8% 정도 신차 판매 대수가 감소했고 아직 노후차 지원방안이 유효한 4개국은 재작년에 비해 신차 판매량이 증가세를 보였다. 추가적으로 EU 자동차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비록 높지는 않지만, 동유럽 국가의 추세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2009년 12월 판매량이 감소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동유럽 국가의 추세와 노후차 지원방안이 종료된 EU 최대 시장인 독일의 신차 판매 감소 추세로 미뤄 볼 때, 현재 EU 자동차시장에서 독일을 제외한 주요 4개국의 자동차 판매량 증가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의 정책적 부양책, 특히 노후차 지원방안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노후차 지원방안의 종료가 초읽기에 들어간 유럽 자동차시장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흐름은 미주 지역이나 아시아에서도 다르지 않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차의 글로벌 판매량 감소가 시사하는 바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근현대 한국사에서 경험했던 보릿고개를 연상케 하는 상황이 자동차 산업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겨울을 견뎌내고 고비를 넘긴 직후에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듯, 2010년 자동차시장의 향방을 밝다고만은 할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CO2 배출량에 대한 규제책 등에 힘입어 자동차 구매 습관 자체가 경차 쪽으로 쏠리고 있고, 자동차 제조사 또한 경차에 대한 메리트를 증대시키기 위해 전례없는 업그레이드를 단행하면서 자동차시장에서 경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같은 경차 판매량의 증가를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따른 시장의 복원력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독일 자동차시장과 비슷한 규모의 국내 내수시장은 독일과 유사한 노후차 교체 지원 프로그램이 실시되었지만 특정 차량과 무관하게 두루 판매량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우리나라 자동차시장을 분석한 국내 경제지들의 기사를 보면, 한국 소비자들은 유럽 소비자와 달리 중대형차 중심의 차를 구입했다. 국내시장에서 토요타 프리어스나 현대·기아차의 아반떼/포르테 LPI 하이브리드가 대중적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중대형차 중심으로 재편된 것은 한국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국에서 풀 하이브리드, PHEV, 더 나아가 전기차가 국내용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국내시장이 중대형차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에 대한 부연을 하자면(자동차 산업 동향과 동떨어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2008년  경제위기 한파 이후 국내 부동산 시장의    거래량이 뚝 떨어진 데에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실질적인 총부채 상환 비율(DTI) 등 부동산 규제책이 실효를 거두면서 거주 이외의 부동산 취득이 줄어들면서 집 다음의 소비재인 자동차로 대리 만족을 느끼려는 한국적인 정서가 반영되었다고 필자는 본다. 한국과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오히려 전 세계적인 경제 경색의 효과는 동유럽의 현상이 직접적인 반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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