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으로 다가온 차 EV
2011년 08월호 지면기사  / 글│한 상 민 기자 <han@autoelectronics.co.kr>



1990년대 초 대중음악 신에서는 시애틀 출신의 ‘너바나(Nirvana)’란 인디밴드가 마이클 잭슨을 밀어내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저널리스트들은 이를 두고 자본이 지배하는 메인스트림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얼터너티브(Alternative)란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 ‘얼터너티브’는 ‘대안’, ‘패러다임의 변화’를 뜻했다. 한편 동시대에 좀 더 남쪽에 위치한, 스모그로 몸살을 앓던 캘리포니아에서는 무공해자동차(Zero Emission Vehicle, ZEV)의 의무판매법이 제정되며 자동차의 패러다임 변화가 예고되고 있었다. 
2010년을 지나며, 기후변화, 탈화석연료 대응을 서두르는 세계의 정부들에게 ‘그린카’란 연비를 크게 개선시킨 차가 아닌, 화석연료 기반에서 전기를 기반으로 하는 자동차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차, ‘전기차’로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얼마 전까지 자동차 역사의 ‘너바나’로 여겨졌던 하이브리드 카가 “연비개선 수단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차”가 돼버렸다.


임무교대

1990년대 중반 OEM들은 캘리포니아의 ZEV 법규 대응을 위해 전기차를 만들어야만 했다. ZEV에 대응하려면 전기차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기차는 차값은 너무 비싸고, 납축 배터리의 형편없는 성능으로 주행거리가 극히 제한적이고 긴 충전시간이 요구되는 등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차가 아니었다. OEM들은 어떻게 하면 주행거리를 더 연장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고, 이렇게 해서 현재 GM이 쉐보레 볼트를 두고 말하는 내연기관을 제네레이터로 활용해 주행거리를 늘리는 레인지 익스텐더(Range Extender)의 개념이 탄생했다. 이것이 바로 하이브리드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당시 기술 수준에서 무거운 배터리에 엔진까지 추가하는 차는 성공할 수 없었다.
하이브리드 기술에 거의 모든 OEM들이 회의적일 때 일본의 토요타와 혼다는 다른 생각을 했다. 1997년 초 일본의 부품 메이커들이 전 세계 OEM들에게 “토요타와 혼다가 하이브리드 카를 개발하고 있다”며, 전기/전자 부품 세일즈에 나섰지만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부분의 OEM들이 이를 믿지 않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토요타는 하이브리드 카를 전기차의 단점을 보완하는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자동차의 상품성이 연비가 아닌 파워로 평가되던 시대에 ‘미래는 연료를 절약하는 방향으로 간다’고 판단하고 내연기관을 보완해 연비를 끌어 올리는 수단으로 이 기술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내연기관을 모터와 배터리가 보완하는 토요타의 병렬 하이브리드 카는 이후 전기 모터, 배터리 기술 등 자동차의 미래 파워트레인 기술을 선도하는 위치에 올랐고, ‘그린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았다. 또 기후변화 대응, 대기오염 대응에 열정적인 정부, 시정부의 각종 보조금, 인센티브 혜택을 받으며 적어도 미국시장에서는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후발 OEM들에겐 여전히 가격, 수익 측면에서 문제가 있지만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카들은 이 차의 대중화를 앞당겼고, 다양한 전기차에 이용될 전기/전자 부품 가격을 끌어내리는데 크게 공헌했다. 


배출규제는 유동적

세계는 기후변화, 온실가스 배출저감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CO2 배출의 23%를 차지하는 수송부문에서의 배출저감이 강조되며, 승용차의 CO2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각종 규제 및 조치가 강구되고 있다.



각국의 자동차 환경규제 현황을 보면, 유럽연합은 2012년에 승용차의 CO2 배출을 130 g/km, 2020년에 95 g/km로 규제키로 했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Tier-2 기업 평균 연비규제(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 program, CAFE)를 실시하고 있고, 다수의 주정부가 CAFE보다 더 강력한, 저공해·무공해배출차의 의무판매를 강제하는 캘리포니아의 LEV II 규제 및 ZEV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도 연비 기반의 배출규제 제도를 유럽과 같이 CO2 기반으로 옮기고 있다.
자동차 회사들은 2020년까지 CO2 배출을 대략 95 g/km 수준에 맞춰야만 한다. 그러나 바이오 디젤 등 대체연료차를 포함한다고 해도 달성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유럽연합은 하이브리드 기술, 클린디젤과 가솔린 엔진의 개선, 기타 연비절감 대책을 총동원할 경우 110 g/km은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10 g/km를 더 낮춰야만 한다.
OEM들은 과연 유럽연합이 2020년까지 95 g/km의 목표를 고집할 것인지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규제만 놓고 본다면 과거에도 130 g/km란 목표치가 수차례 유예됐고, 새 목표 또한 다시 유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ZEV 규제는 차량 중량 저하에 따른 연비 개선효과 등까지 평가해, CO2 배출저감 목표 달성을 위한 대체연료차, 플러그인 하는 전기차의 의무 판매량을 제시하고 있다.
“규제와 법규가 전기차 개발을 종용하는 것은 아니다. 왜 전기차를 해야만 할까.” 산업연구원 이항구 주력산업팀장은 “에너지 안보 때문”이라고 말했다.
석유고갈

자동차 법규, 환경에 대한 도덕적 관점과는 달리 석유자원을 고려한다면 전기차는 절박하다. 현대ㆍ기아자동차 등 대부분의 OEM들, 자동차 컨설팅 기관들은 연료전지차, 하이브리드 카, 바이오디젤, 클린디젤, 천연가스차(NG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종류의 친환경차를 모두 개발해 지역시장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 외부에서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보지 말고 에너지에 포커스해 미래 전략을 짜라”고 주문한다. 또 “전기차 시장 규모에 대한 예측보다 각국 정부의 정책 동향에 귀 기울여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석유 추출 속도가 최대에 이르고, 그 이후부터 생산 속도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피크오일(peak oil)’이라고 하는데, 유력한 기관들이 내놓는 정보를 갖고도 이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불확실한 작업이다. 그러나 에너지 안보에 대비하는 세계 당국의 정책과 기업들의 동향은 피크오일이 멀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활발하게 전기차 시대에 대비하고 있는 기업들이 정유회사들이다. 국내에서도 SK그룹의 관계자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정부의 전기차 로드맵이 빨라진다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 SK그룹일 것”이라며 “SK는 전기차 관련 이슈에 대해 심각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석유생산 능력의 한계를 시사하는 주요 연구 중에는 IEA의 전망 보고서(World Energy Outlook 2010)가 있다. IEA는 국제기구 최초로 세계의 재래식 원유 생산이 2006년에 정점을 통과했다고 추정했다. 재래식 원유는 질이 높고 생산비가 저렴해 석유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IEA는 재래식 원유 생산이 정점 이후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동안 비재래식 원유 생산(초중질유, 오일샌드 추출 석유, NGL 등)의 증가와 미개발 혹은 미발견 유전을 통해 전체 석유 생산이 2035년까지 완만하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IEA는 2035년까지 신규 유전에서 기존 원유 생산량의 약 80% 달하는 추가 생산을 예상해 반영했다. IEA는 이것이 매우 불확실하다는 데에 동의했다.
산업연구원의 강두연 선임은 “피크오일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위기감은 과거와 비교할 때 매우 높아졌고, 세계의 에너지 안보 대응 강도도 강력해졌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르면 2020년 경 피크오일이 오고 생산 감소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 수송용 에너지로는 비재생에너지에 석유 등 화석연료와 핵연료가 있다. 재생에너지에는 수소, 풍력, 태양광, 지열, 바이오매스 등이 있다. 석유는 고갈돼 가고 있고 천연가스는 석유와 10년 차를 두고 피크를 맞을 전망이다. CO2 배출량이 문제지만 석탄은 가격이 싸고 350년은 더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될 전망이다. 원자력은 심각한 원전사고가 있었지만 화석연료를 배제할 경우 기저전력용의 유일한 대안이다. 반면 신재생에너지는 발전 단가, 효율, 설치 면적 등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재배를 해야 하는 바이오 연료는 면적뿐만 아니라 식량문제 등 다양한 문제로 메이저 연료가 될 수 없다.
결국 수송연료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석유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고, 대부분은 어떻게 만들어지던 간에 전기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 정책에 포커스

미국은 2015년까지 플러그인 하는 전기차를 100만 대, 중국과 프랑스는 2020년까지 500만 대, 독일은 100만 대 보급을 목표로 잡았다. 미국은 전기차 산업 육성을 탈석유화와 에너지 안보 대응은 물론 낙후된 전력산업의 개선, 고용안정 등의 경제대책으로 이용하고 있다. 독일정부는 2030년에는 전기차 보급 대수를 500만 대로 늘려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연방경제기술부 등 4개 부처가 배터리, 전기/전자 부품, 지능형 전력망 구축 등 핵심기술에 5억 유로를 투자키로 했다.
중국 역시 자동차시장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지겠지만 석유 수요 문제로 전기차에 집중할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자동차와 전기차 산업발전계획(2011~2020년)을 발표하고, 향후 10년 동안 1,000억 위안(150억 달러)을 투자키로 했다. 일본은 지난해 4월 ‘차세대 자동차 전략 2010’을 발표하며 2차전지 전략, 희토류 등 자원 전략, 충전 인프라 전략, EV타운 등 신 비즈니스 모델 전략, 국제표준화 전략 등을 마련했다.
이항구 팀장은 “전기차에 대한 계획과 전략을 ‘장밋빛 전망’, 구호성 발표로 치부하며 달성 가능한 목표인지 의심하기도 하지만 국가가 해야만 하는 목표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기차 산업은 정부의 의지를 기업들이 따라가지 못하며 뒤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자동차 R&D 정책 중심도 전기차에서 스마트 카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준중형 EV 개발

2009년 전 세계는 전기차 개발, 보급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국내에서도 5월에 세계 80개 도시 시장단과 대표단이 모여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대응책을 논의하는 ‘C40 세계도시 기후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돼 각국 도시들의 전기차 보급 계획이 발표됐다. 르노삼성자동차는 9월에 열릴 프랑크프루트 모터쇼에서 르노가 전기차에 대한 중대 발표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우리 정부는 프랑크프루트 모터쇼가 끝난 10월에야 황급히 33차 비상경제대책 회의를 현대ㆍ기아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개최하며 ‘전기자동차산업 활성화방안’을 발표했다. 이때 고속전기차 양산이 2011년으로 앞당겨졌다.
한국의 전기차 보급 핵심 키를 쥐고 있는 현대ㆍ기아자동차는 프랑크프루트 모터쇼 이전까지 ‘왜 전기차 열풍이 강력히 불어 닥치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올해 1,400억 원 규모의 차세대 준중형 전기자동차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한 상황에서도 전기차에 대한 기본 전략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전기차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전기차 개발자들은 10년 전의 배터리 가격과 기술이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이 차의 미래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니켈수소 배터리 기반이 없는 국내 사정에서 하이브리드 카 개발에 나서면서 세계 최초로 리튬 배터리를 하이브리드 카에 장착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LG화학, SK에너지 등과 협업하며 달라진 배터리의 위상과 가능성을 보게 됐다.
엔지니어들은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던 가격 전망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배터리의 수명은 자동차가 폐차될 때까지 견딜 수 있고, 8시간이란 긴 충전시간은 2시간으로 줄이는 것조차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20분 내에 가능하다”고 했다.
현대ㆍ기아자동차는 국내용 전기차만을 개발해왔다. 블루온 전기차의 후속으로 올 12월에 출시되는 경CUV 전기차 역시 국내용이다. 2,000대가 생산된다. 그러나 2014년에는 세계를 겨냥한 준중형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 전기차의 개발은 지식경제부의 5개 대형 선도과제 중 주력산업 분야의 한 과제로 이뤄진다. 차세대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는 3년 간 정부 출연금 700억 원을 포함 총 1,400억 원이 투입된다. 현대ㆍ기아자동차 등은 이를 통해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160 km 이상, 제로백 12.0초 이하, 최고 속도 140 kph 이상, 완속충전 5시간 이내, 급속충전 15분 이내 달성을 목표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와 비즈니스

전기차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전기차 산업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화석연료 기반에서 전기 기반 사회로의 변화는 수송부문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내연기관차와 같이 400~500 km를 주행하려면 차에 배터리가 엄청나게 많이 실려야 하기 때문에 전기차가 가야할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러나 르노삼성자동차측은 “200 km 이상 주행하는 날이 얼마나 될 것인가. 또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 숫자가 얼마나 될까. 전체를 100명이라고 보면 단 2명만이 하루에 200 km 이상을 달린다”며 “결국 전기차 비즈니스는 98명에게 전기차를 보급하고 2명을 위해 하이브리드 카나 내연기관차를 대여해 줘 불편을 해소하는 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충전은 불편하고 번거로운 것만은 아니다. 또 급속충전은 상용차가 아니라면 충전의 중심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전기차의 충전은 모바일폰을 가정의 콘센트에 꼽아 매일 충전하는 것과 같다.
전기차의 비싼 값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배터리 가격은 평생 쓸 기름을 넣고 다니는 것과 같다. LG화학 등 배터리 제조사들은 배터리 값이 조만간 크게 내려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현재의 높은 가격을 상정해, 배터리가 800만 원이고, 5년 사용 시의 잔존가격이 300만 원이라고 가정해도 차량 운용비는 전기료 1만 5,000원을 포함해 한 달에 10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고객들에게 배터리 값을 나눠 내도록 어떤 선택을 주느냐가 OEM의 중요한 전기차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다.
충전은 단순한 충전이 아니라 네트워크화 되고 서비스화 될 것이다. 서비스는 에너지 관리, 충전 인프라, 동력 계통, 이동성 등 다양한 부문으로 나타나고 시스템화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주차사업을 하고 있는 GS칼텍스는 주차장에 충전 포인트를 구축하고 전기차의 리스, 주차, 충전 사업을 동시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이브리드 카는 2010년을 지나며 고유가 시대의 고연비 차량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며 일반 승용차 시장에 편입됐고, 과거의 지위를 전기차에 내줬다. 그러나 아직은 전기차에 가장 열정적인 공급자이자 얼리 어댑터는 시정부들이다. 예를 들어 최근까지 서울을 운행하는 시내버스 전량을 CNG로 교체한 시는 전기버스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고, 승용 EV 보급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 모델을 테스트 중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고준호 박사는 “각국 정부, 시정부가 클린디젤이나 하이브리드 카에 비해 전기차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기차는 여전히 기술적 제약으로 상품성이 제한적이지만 환경, 에너지에 대한 인식 변화, 미래의 이동성에 대응할 때 ‘하지 않을 수 없는 차’로 인식되고 있다. 그 필요성은 갈수록 커가고 있다. 기업들의 적극적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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