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절망에서 핀 꽃
Part 3. Glory Yeonggwang
2011년 06월호 지면기사  / 글│한 상 민 기자 <han@autoelectronics.co.kr>



저속 EV의 가능성

일반적으로 전기차의 대중화 조건에는 내연기관에 근접한 성능, 사양 확보가 들어간다. 그러나 AD모터스의 저속전기차를 타고 영광군청을 출발해 백제불교 도래지, 법성포, 백수해안도로, 해상풍력발전 예정지를 지나 영광군을 일주하는 동안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적하고 아담한 영광의 시가지를 빠져나와 평화로운 시골풍경을 감상하며 제한속도 60 km/h의 도로 위를 40 km/h로 달렸다.
롤란트 베르거의 안토니오 베네치 파트너의 말처럼 전기차 전문 OEM들은 차량 성능, 글로벌라이제이션, 비용의 시너지, 규모의 경제, 막대한 R&D 투자 등 기존 자동차 산업의 거대한 장벽에 부딪치고 있다. 그런데 일반 자동차시장, 도시인의 시각에서 벗어나 전기차의 가능성을 찾아본다면 전기차 전문 OEM의 장래성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대다수 메이저 OEM들조차도 유럽에서 도시의 이동성과 CO2 배출 규제에 대응하며 르노의 트위지(Twizy ZE), 타타의 픽셀(Pixel)과 같은 사이즈의, 전기 파워트레인을 이용하는 새로운 Sub-A클래스를 탄생시키는 상황이다.
영광의 환경은 전기차에게 최적화 돼 있다. 동서 간 거리가 35.8 km, 남북 간은 28.5 km로 넓지 않다. 서쪽은 서해바다를 접하고 있는데 인근에는 62개의 섬이 존재하며 지형은 동쪽으로는 산간지대, 서쪽은 리아스식 해안을 낀 간척 농경지를 비롯한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60%가 평지다. 
영광군청의 신광근 투자유치팀장은 “전기차가 다니기에 영광의 지형은 매우 적합하다. 또한 전기차는 영광굴비, 태양초 고추, 천일염, 쌀 등 지역의 친환경 이미지에도 잘 어울린다”며 “예를 들어 근거리 농수산물 유통에 이용되는 노후한 운반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한다면 이미지는 더욱 강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광군은 행정지도·단속, 복지지원 등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기관의 차량, 백수해안도로나 불갑사 등 주요 관광지 투어용 렌터카, 도서지역·공장 내 운행 차량, 각종 지역축제 행사 지원, 우체국 및 택배, 근거리 출퇴근, 관내 대중교통에 저속전기차를 투입할 계획이다.
신 팀장은 “유럽 4개국을 방문해 전기차 실증단지 등을 돌아보며 마티즈같은 사이즈의 전기차로 유럽을 공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 등과 달리 메이저 OEM을 보유하지 않은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에서는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며 “또 저속전기차 업체에게는 거대한 전기 바이크 시장은 물론 ATV(4륜형 2륜)나 삼륜차 같은 시장도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용도에서 메이저 OEM이 만든 고속전기차나 도시민의 니즈에 대응된 120 km/h의 속도, 200 km의 항속거리, 첨단 인테리어 등의 성능과 사양의 값 비싼 차는 요구되지는 않는다. 저속전기차 업체들은 이동 경로가 고정돼 있고, 특정 시간대에 그리 길지 않은 거리를 운행하는 플릿마켓을 겨낭한다. 플릿마켓은 초기 전기차 시장에서 보급률을 늘리고 대중에게 전기차를 알리는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전라남도 경제산업국 신성장 동력과 민일기 주무관은 “예를 들어 SK와이번스는 친환경스포츠를 모토로 내세우며 투수 교체 시에 전기차를 이용한다”며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축제, 다양한 국제행사 등에 투입될 수 있는 잠정적인 전기차 수만 따져 봐도 2,100대나 된다. 또 전기 파워트레인은 농기계 등 다양한 분야에도 이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약속의 땅

영광군청의 윤영주 투자유치 과장은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그린카 4대 강국이란 목표 달성은 메이저 OEM에게만 기대해서는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신형차 개발에 4,000억 원이 투여되는데 과연 몇 대를 팔아야 손익분기점을 넘겠는가. 이들이 전기차 개발에 활발히 나서고는 있지만 시장 활성화를 바라지는 않는다”며 “모닝이나 마티즈 같은 사이즈의 저속전기차부터 필요한 부문에 보급해 공장을 짓고 생산·판매해 기업 매출을 발생시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점진적인 e모빌리티 추진, 기후변화와 에너지안보 대응, 신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전기차 전문 OEM을 위한 생태조성이 중요하다. 영광의 환경부 전기차 거점도시 육성사업 선정은 이런 이유에서 전기차 전문 OEM들에게 ‘절망 속에 핀 꽃’과 같다.
민 주무관은 “그동안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미미했고, 저속전기차 관련 법제도, 지원정책은 제대로 마련돼지 않았다”며 “관련 업계, 전라도 등 지자체들의 노력으로 저속전기차도 구매 보조금을 받게 됐지만 정책은 여전히 대기업에 편중돼 있다”고 말했다.



시티앤티나 레오모터스 등 우리나라의 전기차 파이오니어들은 지지부진한 e모빌리티 추진, 대기업 중심 정책에 쓰러졌다. 영세한 업체들은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연구개발 조차 힘든 상황이다. 예를 들어 충돌 테스트 한 번에 1억 5,000만 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몇 번 실패한다면 수억 원을 까먹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 보급된 저속전기차는 100대가 채 안 되고 충전 인프라는 거의 전무하다. 저속전기차에는 200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고 관련 업체들이 연결된다. 정부가 전기차 수요를 일으키고, 적극 지원해야만 기업이 살아갈 토양이 형성될 것이다.
윤 과장은 “전기차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이 차가 국내에서 얼마나 무의미한 지 알 것이다. 차가 있어도 충전할 곳이 없고, 최고속도가 60 km/h로 제한돼 이동성 제약이 심각하다”며 “고속전기차 블루온에 500억 원이 투입되는 동안 시티앤티, AD모터스 등 중소 개발사에는 거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도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는 제주도나 호남권 등 광역선도사업단을 통해서만 진행된다”고 말했다.



영광은 전기차 거점도시 육성사업을 통해 저속전기차,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을 일으키며 2014년까지 전기차 200대, 충전기 200기를 보급할 계획이다. 대마산업단지에는 전기차 생산 및 부품 제조업체를 유치해 ‘현장 중심형’ 전기차 클러스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윤 과장은 “거점도시 사업 이전에 이미 전기차 전문 OEM 4개사가 대마산업단지에 입주키로 계약했다. 조만간 착공에 들어가면 2013년 이후 생산공장이 준공되고 업체들이 입주할 것이다. 현재는 부품 및 배터리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유치 활동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수륙양용전기차·저속전기차·골프 카트 등을 생산하는 탑알앤디가 105억 원·고용인력 149명·7,000평 규모, 시티앤티가 1,000억 원·500명·1만 평 규모의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인휠모터·모터 제어 시스템과 개조사업의 에코넥스가 800억 원·고용인력 500명·2만 평 규모, 저속·고속전기차·전기보트를 생산하는 AD모터스가 746억 원·646명·2만 평 규모의 투자 계약을 했다.



신 팀장은 “대마산업단지는 저렴한 땅값에 서해안고속도로와 직접 연결되고, 30분 거리 내의 무안·광주공항, 40분 거리의 목포·군산항 등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며 “향후 전기차 실증 및 보급 센터, 정비 센터, PG 공인인증 센터, 인력양성 센터 설립은 물론 기타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해 최적의 환경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대, 200기 보급     

지난 3월 환경부에서 거점도시 육성사업에 대한 지자체의 프레젠테이션이 있던 날 어떤 관계자는 영광이 준비해 온 자료의 두께를 쟀고, 어떤 관계자들은 몇 명이 참석했는지 헤아렸다. 다른 지자체들이 자료를 간단히 스탬플러로 찍어 배포한데 반해 영광은 그 간의 사업추진 관련 뉴스까지 꼼꼼히 스크랩하는 등 150페이지의 책자를 별도로 준비했다. 또 대개 3~4명의 실무 관계자들이 대표로 참석했는데 영광은 무려 15명을 파견했다.
신 팀장은 “거점도시 사업에서 시, 도가 아닌 군 단위의 제안자는 영광이 유일했다. 또 우리는 전기차 도입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고 그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광이 전기차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전 세계가 하이브리드 카와 클린디젤의 연비 우위를 논하던 2008년을 전후로 한다. 2009년 영광군은 탑알앤디, 시티앤티 등 전기차 전문 OEM과 투자협약을 체결했고 2010년 4월 5일에는 전국 최초로 전기차 운행구역 지정 고시, 안내표지판 설치, 관용 전기차 구입 및 운행을 개시했다. 올 2월엔 전남테크노파크 등 관내 유관기관 12개, 전라남도, AD모터스 등과 전기차 거점도시 육성 사업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 밖에도 전기차와 밀접한 관계의 해상풍력발전 등 굵직한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2014년까지 추진되는 영광의 전기차 거점화 프로젝트는 국고 77억 8,200만 원, 지방비 30억 7,700만 원, 민간자본 18억 6,600만 원 등 총 127억 2,500만 원이 투입된다. 올해엔 고속전기차 2대, 저속전기차 35대, 급속충전기 4기, 완속충전기 35기 도입에 대해 18억 4,000만 원(국고 11억 700만 원)이 투입된다. 사업 추진은 전라남도가 재정지원 및 도내 자동차 보급 지원을 맡고 영광군청은 사업총괄, 재정확보, 보급 모델을 선정한다. 영광원자력발전소 등 12개 유관기관은 전기차 구입 및 보급 지원에 나선다. 관내 택시, 버스회사는 보유 차량의 10% 이상을 전기차로 대체하고 모니터링 하며, 전기차 OEM들은 차량 공급, 정비, 모니터링을 맡는다.
한국전력과 LS산전, 시그넷시스템은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며, GS 오토오아시스와 LIG보험은 긴급정비와 보험 업무에 나선다. 조선대, 폴릭텍대학은 인력양성하고 공급한다. 모니터링 시스템의 개발과 운영은 전남테크노파크와 호남광역권선도사업단이 수행한다.
영광군청의 신 팀장은 “차량 보급은 저속전기차가 중심이다. 2012년 하반기부터는 고속전기차와 전기버스의 보급도 개시될 것이다. 개조사업은 2013년부터 추진된다”고 말했다.


실증없는 혁신없다

제안 설명회는 지자체 당 15분 씩 주어졌었다. 타 지자체들이 시간 내에 절차를 마무리했지만 영광은 질의응답이 길어지며 50분 이상 걸렸다.
영광군청의 윤 과장은 “저속전기차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실증하고 문제를 보완하는 것이다. 내연기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조잡한 인테리어의 이 차가 맘에 들 리 없으며, 등판 능력이나 에어컨을 켤 때 주행거리가 크게 저하되는 등의 다양한 성능 문제도 있다. 실증을 통해 개선점을 찾고 끊임없이 제작사에 주문해 업그레이드 해야만 한다”며 “영광은 중소 제작사들과 저속전기차가 도약할 수 있는 거점이 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광군은 납축전지를 장착한 초기의 시티앤티 저속전기차 3대를 모니터링 했었다. 이 차는 연료비 측면에서 운용비용이 월 평균 1만 원 내외로 기존 관용차의 1/20 수준이었지만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1회 충전거리가 늦은 봄에서 초가을까지는 40 km 내외, 이른 봄에서 겨울까지는 15~20 km로 큰 차이를 보였다. 광주를 가려하면 22번 국도를 타야 신속히 갈 수 있었지만 저속차의 최고속도가 60 km/h로 제한 돼 군 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배터리 용량의 한계로 도중에 차가 서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윤 과장은 “구내근린형으로 저속차를 도입하지만, 1회 충전거리가 더 길어지고, 80 km/h는 달릴 수 있는 차가 돼야 상품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거점화 사업에서 실증을 통해 다양한 사업 모델과 저속전기차에 대한 가능성과 개선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광군은 무상 또는 저가의 렌탈 방식으로 전기차 운행 테스터를 모집해 전기차의 크기, 1회 충전 주행거리, 주행속도, 구매 만족도, 충전시간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차종, 용도, 운행 구간별로 모니터링 그룹을 만들고,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 차량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설치해 차량의 운행거리, 충전시간, 배터리 잔량 등을 파악해 전기차의 경제적 효율성과 타당성을 평가할 방침이다.
영광군은 200대의 전기차 보급으로 연간 260톤의 CO2 발생 저감 효과를 볼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에너지 소비 절감 및 에너지 소비효율 증가가 이뤄질 것이다.
신 팀장은 “전기차 1대는 평균적으로 연간 1,200 ℓ 이상의 유류소비를 절감할 것이다. 전기차는 동급 가솔린 차량 대비 운행을 위한 에너지 수입이 약 1/6이고 소비효율은 약 3배다. 전기차 200대는 연간 에너지 수입액을 약 1억 원 절감케 할 것”이라며 “또 전기차 1대 당 유지관리 비용은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1/20 수준이어 가계 수지 개선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충전 인프라 구축으로 전기차 보급 및 산업 활성화는 물론 유관산업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영광군의 문화관광산업, 영광원전과 해상풍력단지를 중심으로 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대마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전기차 산업 육성, 고용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가 기대된다. 기술적으로는 보급 기반 구축 방향에 따라 전기차 업체의 연구개발 투자로 기술 고도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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