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Lane: Chevrolet’s Treasure Box and Casserole
Memory Lane: 쉐보레의 보물상자와 캐서롤
한상민 기자_han@autoelectronics.co.kr
연말은 자동차 산업에서도 늘 결산의 시간이다. 전동화의 진척,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 로드맵, 다음 해를 향한 기술 선언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한 해의 끝에서,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잠시 돌아보는 일도 필요하다. 자동차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왜 함께 타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질문 말이다. 그래서 기술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고 쉐보레의 한 편의 광고를 다시 들여다본다. 광고 보고 오시죠!
‘자동차’를 정의하는 방식
크리스마스 광고는 늘 과잉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눈, 음악, 가족, 추억. 조금만 방심하면 그 감정은 억지스럽거나 식상하거나, 잘 되더라도 쉽게 솜사탕처럼 녹아버립니다. 그럼에도 쉐보레와 같은 몇몇 카 메이커는 매년 이 위험한 장르를 반복합니다. 2025년을 마무리할 때, 그들의 ‘Memory Lane’ 광고는 그 반복이 습관이 아니라, 브랜드의 태도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또 한 번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당연하게도 광고에는 SDV와 관련된 기술 요소도 전기차 전환에 대한 선언도 없습니다. 대신 한 가족이 한 대의 차 안에서 지나온 시간만이 있습니다. 쉐보레는 무엇을 탔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그저 어떻게 함께 지나왔는가를 보여줍니다.
차란 배경과 주인공인 시간
광고는 노부부가 집을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낡은 클로짓에서 쿠키 틴(어린 시절 딸 아이의 보물상자)을 시작으로 잡다한 모든 것을 챙긴 뒤에도, 아내는 마지막으로 “캐서롤 그릇은?”(크리스마스 같은 가족 모임에 늘 챙기는 오븐용 그릇) 하고 묻습니다. 이 사소한 소품들은 반복해 등장하는데, 이야기하려는 것이 사건이 아니라 가족, 그들의 일상과 추억(memory lane)임을 암시합니다.
부부, 그리고 가족이 타고 있는 차는 쉐보레 서버번입니다. 넓고 오래된, 그리고 늘 무언가를 더 실어야 했던 차지만, 광고는 차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차가 출발하면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농장, 아이스하키장, 작은 휴게소, 흙길, 폐가가 된 헛간. 목적지가 아닙니다. 모두 지나친 장소들입니다. 그래서 차는 어딘가로 데려가는 도구가 아니라, 기억을 호출하는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마치 광고에 등장하는 이정표처럼, 현재와 과거, 그리고 더 과거를 오고 갑니다.
추억은 선택이 아니라 우회에서
광고의 핵심은 ‘계획되지 않은 순간’들입니다.
아이들이 조르는 바람에 들른 헛간, 지나친 상점과 상징적 표지판, 찢어진 시트와 뒷좌석에 던져진 스케이트. 찢어진 시트는 수리되지 않습니다. 그저 남은 흔적일 뿐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기억들은 늘 의도와 무관하게 생긴다는 사실을 광고는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잠시 들른 헛간 장면은 결정적입니다. 아이들이 뛰어 들어간 뒤 돌아올 때, 그들은 이미 청년이 돼 있습니다. 성장이라는 거대한 변화는 단 하나의 컷으로 처리됩니다. 부모에게 그 시간은 파편화돼 있고, 아이들은 그 사이 다 자랐습니다.
빈 좌석과, 사라진 개
엔딩으로 갈수록 더 절제됩니다.
차에 앉아 뒤를 돌아보는 아내의 시선, 그리고 빈 좌석. 아이들은 떠났고 자리는 남았습니다.
집 앞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막내 아들과 그의 아이, 그리고 새로운 개 웨일런입니다. 옛날 아이들과 함께 차에 뛰어오르던 개 윌리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말해지지 않지만, 대체되지 않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만을 남깁니다. 이런 침묵은 과장된 눈물보다 훨씬 정직합니다.
쉽지 않았지’라는 문장의 무게
광고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화가 나옵니다.
“쉽지 않았지.”
“쉬웠으면 좋겠어?”
“아니, 그냥 그대로였으면 좋겠어.”
이건 살아온 시간을 받아들이는 어른의 언어입니다. 쉐보레는 인생을 더 쉽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시간에 함께 했음을 말합니다. 자동차는 여전히 ‘함께 있음’을 담는 보물상자이자 캐서롤입니다.
광고는 다시 모인 크리스마스에서 ‘The great journey is the one we take together’라는 문구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쉐보레 로고가 등장합니다. 로고는 이야기 아래에 남긴 서명일 뿐입니다.
기술이 말하지 않은 것
‘Memory Lane’은 자동차 광고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실은 자동차란 존재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동수단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질문입니다. 쉐보레는 식상할 수 있는 자동차의 한 역할을 다시 꺼내 보이며 동의를 얻고자 합니다.
여행의 과정이 즐거운 것처럼, 위대한 여정은 목적지에 있지 않습니다.
그저, 함께 탄 시간 그 자체입니다. 보물상자와 캐서롤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한쪽은 아이들의 시간을, 다른 한쪽은 가족의 식탁을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