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업계의 ‘빅 3(Big 3)’로 불리는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장래가 불투명한 가운데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합의파산(Chapter 11)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 GM과 크라이슬러(빅 2)는 수천만 달러의 지원을 워싱턴에 요구했고 발등에 떨어진 불은 가까스로 진화했다. 하지만 이들의 시장점유율이 안방인 북미 시장에서조차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다 경제 불황까지 지속돼 대책 없는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3월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인터넷을 활용해 국민과 직접 소통을 시도하는 ‘e-타운홀 미팅’에서, 빅 3가 현재 사업 수익 모델로는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자동차 산업이 상징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 산업의 기간산업이라는 점을 강조, 의중이 구제쪽에 있음을 암시했다. 이미 미국 정부는 1차로 174억 달러(GM 134억 달러, 크라이슬러 4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 금융을 지원했다. 그러나 빅 2에 대한 파산 우려는 여전하다. 빅 2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와 주변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그럴 것이다. 디트로이트 회사들에게 당장은 구제 금융이 절박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고강도 구조조정과 함께 보다 친환경적이고 연비 효율이 강화된 파워트레인에 의한 미래 지속성장가능성 확보라는 데는 두말 할 여지도 없다.
106년 역사의 포드자동차는 여전히 포드 패밀리가 경영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빅 3 중 재정 형편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GM과 크라이슬러는 정부로부터 긴급 수혈을 받아 부도 위기를 겨우겨우 넘기는 처지라서 신차 개발은 생각도 못하고 생산하던 차종도 정리해야 할 판이다. 반면 포드는 새로운 퓨전 하이브리드(Fusion Hybrid) 자동차를 3종이나 발표하며 불황 이후의 시장 석권을 넘보고 있다.
2008 LA국제오토쇼(Los Angeles Auto Show 2008)에서 처음 선보인 퓨전 하이브리드는 올봄부터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2010년식 중형 퓨전 모델의 하이브리드 버전에 해당한다. 퓨전 하이브리는 배기량 2.5 L의 직렬 4기통 엔진을 아트킨슨 사이클(Atokinson cycle)화하고 기존 이스케이프 하이브리드(Escape Hybrid), 머큐리 마리너 하이브리드(Mercury Mariner Hybrid)와 같은 시리즈/패럴렐 하이브리드 방식을 채택했다. 이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머큐리 밀란(Mercury Milan)에도 탑재된다. 포드는 올해 퓨전과 퓨전 하이브리드 모델을 비롯해 중형 세단 머큐리 밀란과 밀란 하이브리드 모델 출시를 위해 마케팅 예산을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방침이다. 또한 대형 세단인 2010년식 토러스(Taurus), 대형 SUV 링컨 MKT와 함께 에코부스트(EcoBoost) 엔진을 탑재한 신 모델 및 개량 모델을 잇달아 출시할 예정이다.
과거에 포드는 60도 경사각의 듀라텍(Duratec) V6를 포함한 진보된 엔진(올 알루미늄 구조의 DOHC/4-밸브 가솔린 엔진 등)을 GM이나 크라이슬러보다 늘 앞서 적용했다. 포드의 미래 파워트레인 핵심은 보다 작은 엔진 사이즈에 더 높은 출력을 제공하는 가솔린 엔진(V6와 I-4)을 개발하는 것이다. 포드는 직접분사식가솔린엔진(GDI)의 다운사이징과 부스팅을 통해 보다 친환경적이고 연비가 높은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경량화한 DOT 클래스 I 트럭을 위해서는 자체 설계한 소형 디젤 엔진을 선보였다. 또한 마일드 및 풀 하이브리드 카를 비롯해 배터리에 더욱 의존하는 전기자동차(EV)와 PHEV(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 그리고 수소내연기관자동차와 연료전지자동차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진행중이다.
마크 필즈(Mark Fields) 포드 수석 부사장은 지난 LA국제오토쇼에서 앞으로 픽업트럭보다는 승용차에 더 집중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 반증으로 그는 2010년식 머스탱(Mustang)과 퓨전 모델 개발에 상당한 공을 들였음을 강조했다. 포드는 중형차 시장 최다 판매 모델인 토요타 캠리의 경쟁 모델로 퓨전의 성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GM은 오랫동안 다양한 사이즈, 가격대의 대중적인 자동차 생산을 모토로 독특한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확산시켜 왔다. 현재 이 회사는 고강도 구조조정 압력과 맞물려 허머(Hummer), 사브(Saab), 새턴(Saturn), 폰티악(Pontiac) 등 거의 모든 브랜드의 라인 축소 압박을 받고 있다. 소형차를 주로 만드는 새턴 같은 브랜드도 없앨 것을 고려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다. 103년 전통의 올즈모빌(Oldsmobile) 브랜드는 이미 접었다. GM의 대표적인 SUV 브랜드인 허머 또한 새 임자를 만나지 못하면 올드모빌과 같은 운명에 처할 입장이다. 폰티악 브랜드는 G8만 남기고 다 정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렇게 되면 GM은 뷰익과 캐딜락, 시보레(Chevrolet), GMC 등 4개 브랜드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처럼 GM은 모델 정비와 함께 파워트레인 통합도 요구받고 있다.
GM이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시리즈 방식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카 시보레 볼트(Chevy Volt)는 2010년 하반기에 출시될 예정이다. 참고로, 이 회사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혹은 PHEV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EREV(Extended-Ranged Electric Vehicle)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GM의 회계법인 딜로이트앤투시(Deloitte & Touche LLP)는 3월초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08 회계연도 감사보고서를 통해 GM의 지속적인 생존 가능성에 대해 ‘상당한 의구심’을 제기하면서도 GM의 미래 파워트레인 개발 지출 계획이 좋은 거래안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GM은 막대한 금융 지원이 필요한 시보레 볼트 프로그램을 수행해 차를 반드시 시장에 내놓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공장출고가(MSRP)가 3만5,000~4만 달러나 하는 값비싼 럭셔리급 개발 프로그램으로 나올 세단은 대량 판매시장에 어필하기 힘들 전망이다.
GM은 경쟁사보다 뒤늦게 아이들링 스톱 장치를 갖춘 마일드 하이브리드와 2-모드 풀 하이브리드 버전을 통해 하이브리드 카 시장에 뛰어들었다. GM은 2014년이면 적어도 북미 시장에 26종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이고 우려하던 하이브리드 카 핵심 부품인 리튬이온 배터리도 직접 생산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GM은 핵심 기술의 문제뿐 아니라 환경주의자들이 아닌 다수의 소비자들이 럭셔리급 가격의 차를 과연 구매하겠느냐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구매 비용을 몇 년의 운행 경비 절약으로 만회할 수 있다는 경제적 고려 역시도 프로스트앤설리번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불확실한 상황이다. 파워트레인의 프리미엄에 대한 보상은 3년 이후에나 가능하고 해가 갈수록 매력은 더 떨어질 것이란 조사 보고도 있다.
<저작권자 © AEM.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