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라디오 러시
1996년 유럽 DAB(Digital Audio Broad-casting)로부터 세계 디지털 라디오 방송의 역사는 시작됐다. 이후 2001년 북미의 위성 디지털 라디오 방송, 2002년 북미 지상파 디지털 음성방송, 2004년 10월부터는 위성을 이용한 모바일 방송도 시작되었다. 이처럼 라디오 세계에서도 10년 넘게 디지털화가 착실히 진행되어 왔다.
세계적으로 디지털 라디오 방송은 크게 4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 유럽을 중심으로 한 DAB(Eureka147) 방식
△ 북미의 IBOC(In-Band On-Channel) 방식
△ 일본의 ISDB-T 방식
△ 위성 디지털 방식
유럽의 DAB는 1996년부터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순으로 방송이 개시되었다. 북미에서의 지상파 디지털 음성방송은 라디오 방송국이 사용하고 있는 기존의 AM/FM 주파수를 사용한다. 아날로그 방송파와 동시에 디지털 신호도 흘릴 수 있다. 이 방식은 아이비퀴티 디지털(iBiquity Digital) 사가 개발한 IBOC(In-Band On-Channel) 기술의 명칭으로, 위성 라디오와의 경쟁을 의식해 ‘HD라디오(High Definition Radio)’라는 상표로 2002년 10월부터 일반에 선보였다. FCC에서는 2002년 4월 HD라디오를 풀타임 FM 방송으로 인가했다.
HD라디오 기술은 디지털 오디오와 데이터를 기존의 AM과 FM 아날로그 신호와 함께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HD라디오 수신기를 갖춘 청취자들은 아날로그 방송에 종종 따르는 정지상태나 잡음소리 같은 현상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에서 CD 수준의 사운드 품질과 다양한 부가 기능을 즐길 수 있다.
HD라디오 방송국 수는 수년 내에 3,000곳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HD라디오 방송은 1년 전 이미 전국 커버리지 80%를 넘겼다(그림 1). 미국 지상파 디지털 라디오 전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HD디지털라디오연합(HD Digital Radio Alliance)에 따르면, 지난해 5월 HD 멀티캐스팅을 하는 주요 지역이 100곳을 돌파했다.
현재 미국에서 1,500곳 이상의 라디오 방송국이 HD 디지털 라디오 방송을 내보내고 있으며 HD라디오 청취자들에게 700곳 이상이 HD2 멀티캐스트 채널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마케팅 캠페인에는 200만 달러 이상이 투입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미국 이외에 브라질, 필리핀, 독일, 스위스, 뉴질랜드, 캐나다, 멕시코, 중국 등이 서비스 혹은 시험 중에 있다. 브라질에서는 지난 3년간 정부와 방송사 주도로 기존 아날로그 라디오 방송을 HD라디오로 전환, 4월 현재 메이저 3개 도시를 비롯해 중소 도시 300여 방송국에서 디지털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중국에선 상해라디오가 중국 최초로 작년 11월말 디지털 라디오 서비스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상해문광 미디어 그룹에 따르면, 상해 라디오는 시행 기간 동안 중앙인민방송국의 ‘중국의 목소리’, 상해인민방송국의 뉴스 프로그램, 교통 프로그램 등을 방송한다.
HD라디오 확산을 위한 최대 타깃은 디지털 위성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켜준 자동차 업계다. 자동차 산업의 파이오니어를 자부하는 BMW는 지난해 1월 HD라디오를 전차종 공장 출고 옵션으로 제공키로 했다. 세계 최초다. 뒤이어 재규어와 현대자동차도 프리미엄 세단에 HD라디오를 채택했다. 2005년 전세계에서 가장 앞서 전차종 XM 위성 라디오 기본 옵션을 발표했고 세계 최초 XM, 시리우스(Sirius) 듀얼 위성을 장착했던 현대차는 BMW에 한발 늦은 4월 새 후륜구동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에 옵션으로 더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차의 발표가 있던 날 재규어도 새롭게 디자인된 XJ 차종에 HD라디오를 옵션으로 채택키로 했으며 뒤이어 6월 미니(MINI)가 가세했다. 9월엔 미국 포드자동차가 2008년형 포드, 링컨, 머큐리 거의 전 모델에 옵션으로 HD 디지털 라디오 수신기를 탑재키로 했다. 작년 11월에는 보스턴 국제 오토쇼에서 볼보 역시 거의 전 모델에 디지털 HD라디오 기술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의 북미 법인은 올 가을부터 S40 T5, V50 T5, C30, C70, S80, V70, XC70, XC90 모델에 HD라디오 수신기를 표준 또는 옵션으로 장착해 출고할 계획이다.
RBC캐피털의 데이비드 뱅크(David Bank) 애널리스트는 “자동차 업계의 잇단 채택으로 HD라디오의 시장 확산에 가속이 붙고 있다. 아날로그 라디오처럼 기본 장착이 아닌 옵션인 점이 아쉬울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 업계의 HD라디오 채택이 크게 늘면서 알파인, 하만/베커(Harman/Becker), 클레리언(Clarion), 대우전자, 델파이, 후지쯔, 현대오토넷, 미쓰비시, 파나소닉, 파이오니어, 산요, 지멘스 VDO(콘티넨탈에 인수됨), 비스테온 등 OEM 시장도 점차 활기를 띄고 있다. 지난해 20개 사에 불과했던 제조사는 올해 60개 사로 늘었다. 2005년 말 처음 소개된 HD라디오 수신기 모델은 가정용, 차량용 모델로 60여 종이 넘게 나오고 있다. 이 중 차량용 시장에만 13개 OEM 사가 70여 차종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표 1). 애프터마켓에서는 소니, JVC, 젠슨(Jensen), 알파인 등이 100~400달러에 HD라디오 수신기를 판매하고 있다.
HD라디오를 통해 제공되는 정보 서비스도 크게 늘고 있다. 미국 최대 라디오 네트워크인 Clear Channel Radio의 Total Traffic Network에 의하면, Clear Channel이 작년 말 미국에서 48개 도시 지역에서 HD라디오를 통해 교통정보 방송을 개시했다. 이것은 HD라디오로 송신되는 최초의 상용 데이터 서비스가 된다. Clear Channel의 Total Traffic Network에서는 RDS-TMC(Radio Data System Traffic Message Channel)에서 실시간 교통 데이터의 송신을 새롭게 19개 시장으로 확대했다. 차량 항법장치 및 위치기반 솔루션을 위한 전자지도 데이터 제공업체 나브텍(Navteq)은 실시간 교통정보 서비스 프로바이더인 BTC(Broadcaster Traffic Consortium)와 함께 PND(Portable Navigation Devices)와 자동차의 인대시(in-dash) 타입 시스템용으로 HD라디오 기술을 통해 교통량이나 POI 정보 서비스를 제공한다. BTC의 설립 멤버로는 Beasley Broadcast Group, Bonneville International Corporation, Cox Radio, Emmis Communications Corp., Entercom Communications Corp, Greater Media, NPR, Radio One 등이 있다. BTC는 나브텍의 콘텐츠와 무료 무선 시스템을 사용해 Broadcasters의 HD 대역을 요금 서비스화 할 수 있고 저가격의 전국 데이터 송신 채널 대상으로 원스톱 숍을 제공하고 있다.
문제 안되는 가격
아이비퀴티 디지털과 HD디지털라디오연합은 HD라디오가 디지털 라디오 시장 경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 수신기 공급업체인 기륭전자 해외사업부의 김남걸 과장은 “아이비퀴티나 HD디지털라디오연합이 마케팅을 강화하고 리테일 마켓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시장은 잠잠하다. 가장 큰 문제는 비싼 가격”이라며, “현재로서는 자동차 업계와 관련한 모듈 회사들의 기대가 더 클 것”이라고 했다. 10~20달러면 살 수 있는 아날로그 라디오가 디지털화하면서 최소 100달러를 훌쩍 넘어서니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 힘든 것이다. 수신기 공급업체 입장에서는 수요가 없는 데다 누구나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오픈 마켓’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현재 HD라디오 확산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그룹은 자동차 업계다. HD라디오는 자동차 신기술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자동차 혁신의 한 부분’이며, 최고의 서라운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또 하나의 ‘옵션 콘텐츠’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운전자들이 첨단 기술 구매에 적극적이고, 특히 새로운 음향 시스템 구비에 인색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소비자만족도 조사기관인 J.D. Power and Associates의 프리미엄 서라운드 시스템 관련 구입 용의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80%가 현재 서라운드 시스템 브랜드의 시장가격보다 두 배 더 지불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소비자들은 1,000달러를 브랜드 시스템에 지불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현 시장가인 500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액수다. 일반적으로 오디오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60% 가량은 멀티 오디오 포맷 장착을 원하고, 이 중 절반은 100달러를 지불하고 USB인터페이스를, 43%는 150달러를 아이팟 인터페이스를 위해 쓰겠다고 답했다. 소비층 경계도 사라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값비싼 차량용 전자기기에 대한 주 소비층이 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연령별 선호도 차이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19종의 자동차 신기술과 관련한 선호도 조사에서 HD라디오는 최초 관심도에서 하위권이었지만, 가격이 공개된 후엔 상위권에 포함됐다. 특히 매달 수신료를 내야하는 위성 라디오보다 높은 선호도를 나타냈다(그림 2).
선점된 시장
한국에서 위성DMB와 지상파DMB 간 대결처럼, 빠르면 2년 안에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도 디지털 라디오를 둘러싼 승부는 결판이 날 듯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상파DMB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차량용 비중이 41%인 410만 명이다. 위성의 경우엔 전체 가입자가 130만 명 수준이다. 한국 자동차 시장은 사실상 지상파DMB가 장악했다.
국내에는 디지털 라디오가 없는데, TV의 전면 디지털 전환 시점인 2012년까지는 전환이 불가능한 상태다. 디지털라디오추진위원회의 KBS 김혜경 라디오 국장은 “여전히 라디오 디지털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HD라디오의 IBOC이냐 DMB 방식이냐가 결정되거나 테스트 되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HD라디오 입장에서는 먼저 출발한 위성 라디오의 포지션이 가장 큰 위협이다. 디지털 위성 라디오 XM과 시리우스는 한국의 유료 방송 위성DMB가 맥을 못추는 것과 대조적으로 2006년 1월 가입자 1,000만 명 유치에 성공하며 시장에 안착했다. 현재 XM이 860만 명, 시리우스가 77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위성 라디오는 차량, 보트, 가정, 직장 등에 고음질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성 라디오 가입자는 라디오를 듣는 미국인의 약 10%에 달하며 운전자의 7% 수준이다. 가입자들은 월 12달러가량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반면, HD라디오는 무료다. 미국 전역을 커버하는 위성과 달리 지역 사회의 정보, 교통상황, 날씨 등을 전해주는 로컬 형식이 최대 강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관론자들은 HD라디오가 광고에 자유롭지 못하고, 특히 라이선스 등 콘텐츠 경쟁력을 지적한다.
위성의 성공요인은 막대한 콘텐츠 투자였다. 위성 라디오 사업자들은 콘텐츠 수집자이자 배급자란 점에서 인터넷, 라디오, 모바일 등 각종 라이선스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다. 예컨대 음반 저작권은 물론 이미 하워드 스턴, 마샤 스튜어트, 오프라 윈프리 등의 킬러 콘텐츠를 조정하고 있다. 반면, HD라디오의 아이비퀴티는 방송사업자도 콘텐츠 사업자도 아닌 기술 제공자일 뿐이다. 콘텐츠 생산과 경쟁력은 라디오 방송사들의 집합체인 HD디지털라디오연합이 좌우한다. 최근 위성 회사들의 합병 소식은 HD라디오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XM과 시리우스의 합병 관련 반독점 심사에서 미 법무부는 “합병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경쟁이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며, 소비자들이 여전히 다른 서비스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따라 양사의 합병은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최종 승인을 남겨 놓고 있다. HD라디오나 다른 디지털 라디오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지만, 합병이 된다면 위성 회사들의 막대한 콘텐츠 투자비용을 줄여줘 경영적자를 만회하고 나아가 가격 인하도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미국 디지털 라디오 시장은 위성 라디오 회사인 시리우스와 XM의 합병, iPod과 MP3 관련업체들의 급성장, 유력한 옵션으로 빠르게 채택되고 있는 인터넷 라디오 등 춘추시대를 맞고 있다. 하지만 결국은 HD라디오로 귀결될 것이란 의견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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