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 양산에 다가가는 일본
정부-소비자-기업 3자 결의로 순항
2009년 12월호 지면기사  / 글│김 영 호 부장<kim@kpx.or.kr> 전력거래소 국제정보통계팀

왜 전기자동차가 필요한가? 우선 피할 수 없는 배경으로 지구온난화와 석유자원의 고갈 문제가 있다. 사실상 이 두 가지 문제가 자동차 산업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연기관 자동차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차세대 자동차)로서 전기자동차(Electric Vehicle, EV)가 떠올랐고, 이에 따라 자동차를 생산, 판매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카 메이커와 이를 감독하는 정부들은 차세대 자동차 개발을 촉진시키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과연 전기차가 화석연료의 고갈을 지연시키고 지구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일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기존 화석연료(가스)를 사용하는 차량과 전기차의 효율을 비교해 봄으로써 달리 설명하지 않아도 답을 얻을 수 있다(그림 1 참조). 전기차는 기존의 가솔린차에 비해 에너지 변환 효율이 약 4배 이상 높다. 따라서 전기차의 보급과 이용 증대는 ‘스마트그리드(Smart Gird)’의 실현이나 CO2 저감 문제뿐만 아니라, 고갈돼 가는 화석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다수의 전문가들은 하이브리드 카보다 전기차가 주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유는 전기차가 하이브리드 카보다 효율이 좋고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하이브리드 카에 비해 CO2 배출량이 적고 연료비(충전 전기세)도 싸다. 또 구조도 심플하다. 문제가 있다면 전지 성능과 전체 생산 비용이다. 그러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다면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시간 문제다.
또 다른 이유 중에는 현재 하이브리드 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일부 제작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후발주자들이 기술적인 부문에서 하이브리드 카 개발보다 전기차 개발에 달려들기 용이하다는 점이다. 하이브리드 카는 내연기관과 전기 모터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부품수가 많고 작동원리와 구조가 복잡하다. 따라서 막대한 개발 자금이 필요하고 기술력이 요구된다. 또 10년 이상 앞서 하이브리드 카를 개발한 토요타와 혼다의 특허망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점도 있다.
전기차는 간단히 말해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미니완구와 큰 차이가 없다. 고성능이나 고기능, 고부가가치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제조는 용이하다. 물론 연간 1만 대 이상 생산한다면 모터, 인버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터리의 성능과 신뢰성을 확보해 코스트 다운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기차가 하이브리드 카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이지만 문제도 있다. 현재의 배터리 성능은 1회 충전으로 전기차를 대략 200 km 이동시킬 수 있는 수준에 있다. 즉 현재 전기차의 최대 단점은 대단히 비싼 가격과 주행가능 거리로, 이 두 가지를 개선하지 않으면 하이브리드 카와 경쟁할 수 없는 것이다.
선진국 중 일본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카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일본의 전기차 관련 기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는 게이오 대학 전기차연구실에서 개발한 바퀴 8개의 엘리카(Eliica)란 차를 들 수 있다. 이 차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거의 비슷한 사이즈의 차인데 보급중인 일반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카와 달리 바퀴에 직접 모터를 연결(인휠)해 강력한 힘을 발휘하도록 설계됐다. 총 8개의 모터가 8개의 바퀴를 직접 구동시킨다. 모터 한 개 당 출력은 100마력으로 차량 총 출력은 800마력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전기차에 대한 잘못된 이해, 즉 성능이 낮아 실용적이지 않다는 편견을 불식시킬 수 있는 차인 셈이다.


3자 결의된 일본

차세대 자동차는 매우 고가의 차량임에   틀림없다. 일반인이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저렴해져야만 하며 이를 위해 양산 체제가 갖춰져야만 하는 실정이다. 양산을 가능케 하려면 소비자들이 대량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이를 위해서는 전기차의 보급 촉진과 충전설비 확충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 논쟁에서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자동차 메이커는 대량생산을 결의해야 하고 소비자는 다소 가격이 높더라도 구입할 결의를 해야 한다. 또 정부는 보조금을 통해 자동차 메이커와 소비자를 지원할 결의를 해 순환구조를 형성시켜야 한다.
적어도 일본의 경우엔 메이커, 소비자, 정부가 일체가 돼 차세대 차량의 보급을 목전에 둔 3자의 결의가 굳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의 일부 메이커들은 오래 전부터 하이브리드 카를 개발해 발매해 왔다. 대표주자들은 토요타와 혼다다. 양사의 프리어스와 인사이트는 양산 체제를 통해 코스트 다운을 이뤄내며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다. 또 미쓰비시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 최초로 전기차의 양산(가까운 시일 내에 연간 2만 대)을 결의했고, 닛산 역시 가까운 장래에 연산 2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양산을 목표하고 있다. 이들 회사가 생산하는 전기차는 가솔린차와 거의 동등한 가격에 발매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상기 언급한 3자의 암묵적인 결의를 통해 차세대 자동차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키로 했다. 예를 들어 현행 토요타 프리어스에 최대 20만 엔, 미쓰비시자동차의 i-MiEV에 130만 엔이 보조금으로 지급된다. 가나가와 현 경우엔 전기차에 65만 엔을 추가해 총 195만 엔 정도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일본의 소비자들은 언론에 보도됐듯이 신형 프리어스가 판매되기도 전에 이미 1주 만에 1만 대의 예약 주문이 밀려들 정도로 관심이 높다. 3자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소비자의 결의가 이행될 준비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상황은 어떨까? EU에서는 2012년부터 모든 차량의 평균 CO2 배출량을 130 g/km로 규제키로 했고 이 조치는 자동차 메이커의 차세대 차량 개발을 크게 전진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고연비 차량 인센티브 제공이 시작됐고, 미국은 GM과 크라이슬러 파산 이후 실추된 위상과 명예 회복을 위해 전기차로 대표되는 차세대 차량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미국 오바마 정부는 ‘그린 뉴딜’ 정책을 통해 그린카 개발을 독려하며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과연 디트로이트 빅 3가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는 현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EV 점찍은 메이커들

토요타는 전기차에 좀 더 가까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카 500대를 연말 시판할 계획이다. 토요타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내놓은 까닭은 결국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토요타는 5~10년 내에 내연기관 자동차의 부속품인 라디에이터, 머플러, 촉매, 연료탱크 등의 가격이 전기차용 배터리 가격과 같게 돼 전기차가 유리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미쓰비시의 전기차 i-MiEV에 이어, 후지중공업(스바루)도 전기차 플러그인 스텔라를 발표했고 7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판매 가격은 i-MiEV가 460만 엔, 플러그인 스테라가 473만 엔이다.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두 모델 모두 정부와 지자체의 약 200만 엔의 보조를 받는다. 차는 여전히 250만 엔 이상의 고가지만 에너지 절약과 지구환경 보존에 동참하겠다는 소비자들의 의지를 통해 보급 확대가 그리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동시에 지금까지 전기차는 수제작에 가까운 형태로 생산됐지만 i-MiEV와 플러그인 스텔라는 양산체제에서 제작돼 보급 여부와 배터리 기술의 진전에 따라 가격이 대폭 내려갈 전망이다.
i-MiEV는 올해 1,400대를 사업자 전용(대부분이 전력회사 및 관용 차량)으로, 내년부터는 대수를 늘려 일반인에게도 판매한다. 미쓰비시자동차에 따르면 2012년에 5,000대를 생산하고, 2020년에는 자사 총 생산대수의 20%를 전기차로 생산할 계획이다. i-MiEV 수주 현황을 보면 7월 현재 사업자로부터 2,900대를 수주했다. 플러그인 스텔라의 생산대수는 올해 170대로 알려졌으나 후지중공업이 토요타와의 자본제휴 뒤 경자동차 생산 부문에서 철수하면서 플러그인 스텔라에 집중될 전망이다.
i-MiEV의 모터 최고 출력은 47 kW(64마력)로 일본 내 경자동차(600 cc급 이하)와 같지만, 토크(회전력)가 경자동차의 약 3배로 출발은 어떤 경자동차에도 뒤지지 않으며 다른 소형차와의 승부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경자동차의 힘 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전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문제는 충전설비와 주행거리다. 현재 1회 충전으로 약 160 km를 달릴 수 있으나, 에어컨을 사용할 경우 항속거리가 15~30% 짧아진다. 이 때문에 동하절기의 실제 항속거리는 충전 이후 약 110 km 정도이다. 현재 충전설비는 가나가와 현 일부를 제외한 다른 지역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전력회사가 주도적으로 충전설비를 설치해 나갈 계획이어 해소될 전망이다.
하이브리드 카 개발에 뒤진 마쯔다는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토요타의 기술력을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유럽과 미국의 연비 규제를 통과하기 위해 전기차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하이브리드 카를 적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연비 개선은 메이커에게 생명선과 같다. 이와 관련 이토 다카시 혼다 신임 사장은 “내연기관의 개량만으로는 연비 규제에 대응하기가 불가능하고 모터를 탑재하지 않으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며 하이브리드 카와 전기차의 필요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닛산자동차는 전기차 리프(LEAF)를 내년부터 양산키로 했다. 리프의 가격은 출시 시점에 공개될 예정이나 중형 차량(C-세그먼트)의 범주에 있는 가솔린 차량과 경쟁하기에 손색없는 가격으로 2010년 후반에 미국, 일본, 유럽 일부 지역에 출시하고, 2012년부터는 20만 대 생산 체제로 전 세계에 출시할 계획이다.
이미 판매가 시작된 i-MiEV와 리프의 가장 큰 차이점은 i-MiEV가 ‘i’라고 하는 가솔린 경자동차를 전기차로 개조한 것인 데 반해, 리프는 전용으로 개발된 바디를 기반으로 한 5인승 소형차라는 점이다(후지중공업의 플러그인 스텔라 역시 경차를 개량한 전기차이다). 판매 규모 면에서도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i-MiEV가 내년 5,000대를 판매하고 2011년부터 1만 5,000대로 판매량을 늘릴 계획인 반면, 리프는 내년 5만 대 규모, 2012년부터는 20만 대로 생산량을 늘린다. 또 i-MiEV가 주로 일본 내수용을 목표로 하고 있는 데 반해 리프는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가격도 i-MiEV가 460만 엔인 데 반해 리프는 핵심 부품인 고가의 배터리를 리스 방식으로 운용해 가솔린차와 비슷한 수준에서 대중화를 가속화할 방침이다.
리프는 i-MiEV보다 바디가 훨씬 크고 모터 출력도 높고 전지 탑재량도 많다. i-MiEV와 달리 리프는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목표로 개발됐다. 리프는 일본에서는 가나가와 현 요코스카 시의 옷파마 공장, 미국에서는 테네시 주에서 생산된다. 전지는 가나가와 현 자마시의 자마공장 이외에 미국, 영국, 포르투갈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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