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30 / 09월호 지면기사
/ 윤범진 기자_bjyun@autoelectronics.co.kr
지난 18일 공개된 온세미의 임베디드 파워 플랫폼(Embedded Power Platform, EPP)은 단순히 전력 반도체를 새로운 패키지에 넣는 기술과는 접근방식이 다르다. 핵심은 실리콘 웨이퍼 자체를 전력 시스템 설계의 일부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임병철 온세미 수석 엔지니어(Principle FAE)는 30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EPP에 대해 “개발 초기 단계부터 전기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기계적인 특성과 열 설계를 통합해 개발을 시작한다”며 “시스템 차원에서의 접근”이라고 소개했다.
EPP는 12인치 실리콘 웨이퍼를 기반으로 한다. 웨이퍼 내부에 실리콘(Si), 실리콘 카바이드(SiC), 질화갈륨(GaN) 같은 전력 다이를 내장하고, 다이 사이를 재배선층(Redistribution Layer, RDL)으로 연결한다. 드라이버와 컨트롤러도 같은 웨이퍼에 내장할 수 있다. 임 수석 엔지니어는 향후 패시브(수동) 부품도 내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기존 전력 모듈의 구조와 대비된다. 전통적인 고전력 모듈에서는 전력 다이를 DBC(Direct Bonding Copper)와 같은 기판에 배치하고 와이어 본딩이나 클립 본딩(Clip Bonding) 등을 이용해 연결한다. EPP는 반도체 제조 공정(팹)에서 사용하는 RDL을 전력 소자의 연결에 활용함으로써 기존 패키지 구조에서 발생하는 전기적·열적 제약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와이어 본딩 대신 RDL
EPP의 핵심은 와이어 본딩을 제거한 전력 경로다. 본딩 와이어는 전력 소자 사이의 연결 과정에서 기생 인덕턴스를 발생시키며, 고속 스위칭 환경에서는 서지 전압과 손실에 영향을 미친다. EPP는 웨이퍼 레벨에서 형성되는 RDL을 이용해 전력 다이 사이를 연결함으로써 이러한 기생 인덕턴스를 낮추는 구조를 구현한다.
임 수석 엔지니어는 '본딩 와이어가 곧 기생 인덕턴스'라며, RDL이 이를 크게 낮춘다고 설명했다. 기생 인덕턴스가 낮으면 전력 소자의 스위칭 특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소자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패키지와 배선의 기생 인덕턴스가 크면 서지 전압과 링잉(Ringing) 때문에 속도를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위칭 속도가 빠른 GaN 소자는 di/dt와 dv/dt가 매우 커 이러한 연결 구조의 영향이 특히 크다.
임 수석 엔지니어는 “EPP는 서지 전압을 낮게 유지하는 만큼 게이트 저항(Rg)을 줄여 스위칭 속도를 높일 수 있고, 그 결과 고주파 동작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드라이버와 컨트롤러를 전력 소자 바로 옆에 두는 구조도 같은 맥락이다. 외부에 별도로 연결하던 드라이버는 배선 인덕턴스 때문에 노이즈가 생기는데, 이를 패키지 안으로 끌어들이면 제어 성능이 좋아지고 외부 결선이 줄어 시스템이 단순해진다.
EPP의 또 다른 핵심은 열 관리다. 기존 전력 모듈은 구리층 사이에 세라믹 절연층을 끼운 DBC 기판을 쓰는데, 고전압을 절연해야 하는 세라믹층이 열저항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EPP는 반도체 팹 공정으로 절연층을 웨이퍼 내에 직접 구현한다. 임 수석 엔지니어는 얇은 막으로 고전압 절연이 가능해 외부에 별도의 절연층이 필요 없고, 그만큼 모듈 전체의 열저항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PP는 패키지의 전체 면적을 방열 경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전력 다이에서 발생한 열이 실리콘을 통해 패키지 전체로 전달되며, 이를 통해 열저항을 낮출 수 있다.
EPP의 전력 밀도는 단순히 다이를 작게 만드는 것만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전력 소자의 집적, 전기적 연결, 절연, 열 방출을 기계적 구조와 함께 하나의 패키지 안에서 동시에 설계하는 구조가 높은 전력 밀도를 가능하게 한다. 온세미는 애플리케이션에 따라 기존 전력 모듈 대비 3~5배 높은 전력 밀도를 구현할 수 있으며, 전기차 트랙션 인버터에서는 최대 4배 높은 전력 밀도를 구현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하나의 플랫폼, 여러 개의 다이 조합
EPP의 확장성은 내부에 어떤 다이를 내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동차 트랙션 인버터에서는 SiC가 주요 후보가 될 수 있지만, 요구 전력이 낮거나 비용이 민감한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실리콘(Si)을 선택할 수 있다. 반대로 높은 성능과 스위칭 특성이 필요한 고출력 시스템에서는 SiC 또는 온세미의 버티컬 GaN(vGaN)을 적용할 수 있다.
임 수석 엔지니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HEV)처럼 상대적으로 낮은 전력이 요구되는 경우 실리콘을 적용할 수 있고, 300kW급 고성능 시스템에서는 SiC나 버티컬 GaN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애플리케이션별 최적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EPP는 특정 전력 반도체를 위한 단일 제품이라기보다 전력 소자와 드라이버, 컨트롤러를 애플리케이션 요구에 맞춰 조합할 수 있는 패키지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자동차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 HEV부터 고출력 배터리 전기차(BEV)에 이르기까지 차량마다 요구되는 인버터 출력이 다르지만, 공통 EPP 플랫폼을 기반으로 내부 다이와 구성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수석 엔지니어는 EPP 기반 설계를 적용했을 때 기존 방식 대비 전기차 트랙션 인버터의 전력 손실이 15% 낮은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패키지에서 팹으로
온세미가 EPP에서 강조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반도체 제조 인프라의 활용이다. EPP는 온세미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12인치 실리콘 웨이퍼 제조 인프라와 반도체 공정 기술이 적용된다. 본딩 와이어를 대체하는 RDL과 절연 구조 역시 웨이퍼 공정 단계에서 구현된다.
이 접근 방식은 설계 단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온세미는 전기적·열적·기계적 특성을 함께 고려하는 시뮬레이션과 디지털 트윈 환경을 활용해 실제 제작 전에 설계상의 문제를 파악하는 방식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시뮬레이션 결과와 실제 제품 사이의 차이를 줄이고 개발 사이클을 단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존 전력 모듈이 전기, 열, 기계 설계를 따로 진행한 뒤 조정하는 방식이었다면, EPP는 처음부터 세 영역을 하나의 설계 문제로 다루는 것이다.
이 때문에 EPP의 경쟁력은 패키지 구조와 함께 반도체 설계·공정·시뮬레이션을 전력 시스템 개발에 연결하는 개발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에서 AI 전력 인프라로
EPP가 당장 자동차 양산 모듈을 대체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임 수석 엔지니어에 따르면, 온세미는 현재 스바루 등 일부 완성차 업체와 EPP 적용을 논의 중이거나 샘플을 제공해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일정 기간의 검증 결과를 확보한 뒤 애플리케이션별 모델 전개 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다.
이번에 EPP의 구체적인 양산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는 Si, SiC, GaN과 제어 소자를 하나의 플랫폼에 통합하고 전기·열 특성을 함께 최적화할 수 있는 구조를 확보했지만, 자동차에서는 실제 차량 환경에서의 신뢰성 검증과 고객 평가, 양산 승인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온세미가 밝힌 EPP 접근 방식을 통한 개발 기간 단축 폭은 4개월이다. 또한, 온세미가 12인치 실리콘 웨이퍼를 4년간 양산에 적용해 왔기 때문에 공정 제어 기술은 이미 검증됐고 양산성도 양호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웨이퍼 공정 인프라에 대한 이야기다. EPP가 자동차 환경에서 장기간 견딜 수 있는지는 별개의 검증 대상이다.
EPP가 자동차 애플리케이션에서 실제 양산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신뢰성 검증과 고객 평가라는 중요한 관문이 남아 있다. 자동차 양산 관점에서 넘어야 할 문턱은 분명하다. 첫째, 내장 다이와 RDL, 절연층이 열 사이클과 진동 같은 자동차 환경을 견디는 신뢰성 데이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전력 다이와 드라이버, 컨트롤러가 단일 패키지에 내장되는 구조에 어떤 규격 체계를 적용할지 고객과 정리가 되어야 한다. 셋째, 열저항과 절연 성능, 스위칭 특성을 담은 데이터시트와 주문 가능한 부품 번호가 준비돼야 한다. 따라서 EPP의 다음 단계는 이런 검증 자료로 확장성과 양산성을 입증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에, 자동차보다 800V 구조를 채택하는 AI 데이터센터가 상대적으로 EPP룰 빠르게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랙당 전력이 높아질수록 전력 공급과 변환 과정에서 더 높은 전력 밀도를 요구한다. EPP는 이런 환경에서 여러 전력 소자와 제어 기능을 하나의 패키지에 통합해 시스템을 소형화하고, 전력 소자와 제어 기능을 가까이 배치해 전력 경로를 단축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온세미는 초기 EPP 기반 솔리드 스테이트 회로 차단기(SSCB) 설계가 기존 설계보다 크기가 약 50% 작고 온도는 20% 낮았다고 소개했다. 이 밖에 고속 충전기,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전력망용 전력 변환 등도 적용 후보로 거론된다.
EV와 AI 데이터센터가 800V라는 공통 전압을 사용하는 만큼, AI 인프라에서 쌓은 실적이 자동차 분야 진입을 뒷받침할 가능성도 예상해 볼 수 있다.
AEM(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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