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기차 산업 리더를 자처했던 서울시가 2014년까지 3만 대의 전기차를 보급하겠다던 목표를 6월 들어 1만 대로 축소 수정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만 대’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또 이즈음 내년도 정부의 전기차 보급 예산이 올해의 1/5이 될 것이라는 뉴스가 업계를 긴장시켰습니다.
지난해 초부터 이미 업계에서는 정권 교체기가 가까워지면서 우리나라 전기차 정책의 연속성이 끊기는 것 아닌가를 걱정하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일본 대지진, 유럽 경제위기 등으로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으며 근심은 더 심화됐습니다. 새로운 전기차 모델 출시를 앞다퉈 소개하고 지지부진한 한국의 전기이동성 추진 현황을 꼬집던 언론도 최근에는 ‘주행거리’와 ‘가격’ 등 배터리 관련 문제점을 들어 전기차를 내연기관과 비교할 때 상업성이 없고, ‘well to wheel(WTW)’에서 친환경성도 없기 때문에 ‘미래가 없는 차’로 몰아가는 분위기입니다.
서울의 목표는 민간시장까지 감안한 수치였다고는 하지만 다른 글로벌 도시들과 비교할 경우에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숫자를 따지기 보다는 시의 적극적 ‘의지’를 반영했다는데 의미를 두는 게 맞습니다. 물론 하향 수정된 1만 대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우리 정부 또한 세계 4대 그린카 강국을 목표로 설정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했었습니다.
서울시의 목표치는 대폭 내려갈 전망입니다. 그리고, 다른 스테이크홀더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 시의 부족한 예산, 위축된 글로벌 경제와 시장상황 등을 고려해 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하겠다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밖으로 표출된 명분에 “과연 전기차가 친환경차인가”란 의문이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는 전기차가 과연 친환경차인가”란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서울시장은 곧바로 “화석연료의 70%가 소요되는 등 전기차는 친환경 차량으로 부적합하다”며 보급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것입니다.
서울시장의 말대로라면 전 세계의 정부, 각각의 시정부, 관련 연구소, 카 메이커와 기타 스테이크홀더들은 수십 년 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왔고 여전히 허튼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 트렌드를 본다면 전기차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메가트렌드입니다. 그리고 그 강력한 동인은 ‘환경에 대한 우려’입니다. 전기차의 전체 탄소발자국(footprint)은 전기발전의 유형에 달려있지만, 당장만 해도 테일파이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가스가 없어 도시의 공해문제를 완화해 시민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전기차의 친환경성이 WTW로 인해 문제가 된다는 데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그들에게 전기차는 인류의 장기적 미래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전체 에너지 시스템의 탈탄소화가 요구되고 있으며, 전력 부문의 노력이 성취된다면 전기차는 실제로 거대한 잠재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전기이동성을 봐야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나라는 2011년 말에 국가 전체 전기차 등록대수가 344대였고 올 3월 현재 382대입니다. 이중 서울시의 전기차 보급대수는 올 6월 말 현재 81대로 9대가 전기버스, 33대가 저속전기차, 39대가 고속전기차입니다.
다른 나라, 다른 도시는 어떨까요? 심지어 동유럽의 오스트리아도 지난해까지 1,000대의 전기차를 보급했습니다. 각 도시별로는 초여름 IEA가 공개한 "EV CITY CASEBOOK"를 보면 잘 나타납니다. 암스테르담이 750대, 로테르담 1,000대, 브라방쉬타트 755대, 베를린 350대, 함부르크 350대, 바르셀로나 280대, 헬싱키 120대, 더햄·타인위어·티사이드 등 노스이스트 잉글랜드 150대, 스톡홀름 100대, 가나가와 2,446대, 고토 155대, 상하이 1,614대, 로스앤젤레스 2,000대, 뉴욕 238대, 포틀랜드 1,300대, 노스캐롤라이나 2만 5,408대 등입니다.
독일에 있는 한 친구는 “여기서는 전기차 투자 규모를 축소하거나 친환경성을 의심하는 말은 전혀없다. 경제상황이 어려워도 더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현지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는 독일 뿐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가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늘리고 각종 지원 혜택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뭔가 해보려다가 원점으로 돌아가려 하는 데 반해 그들은 차분하고 단계적으로 전기이동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기차는 정말 안 팔릴까요? 모델 수도 얼마 안 되는 순수 전기차만 고려한 것은 아닌가요? OEM들은 하이브리드와 FCEV만을 미래로 볼까요? 전문가들은 토요타 프리어스가 처음 론칭됐을 때와 현재를 비교하며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볼트의 차값은 3만 9,145달러부터입니다. 닛산 리프는 3만 5,200달러입니다. 이 차들은 7,500달러의 연방 세제혜택을 받아 각각 3만 달러 초반, 2만 달러 후반대의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제공됩니다. 2,500달러의 혜택을 받는 플러그인 프리어스 기본 모델은 3만 2,000달러입니다. 또 최근에는 월 389달러에 리스하는 혼다의 첫 번째 전기차 핏(Fit EV)이 캘리포니아와 오레곤에 론칭됐습니다. 다른 유럽 OEM의 전기차도 속속 론칭될 것입니다.
GM 볼트는 올 6월에 총 1,760대가 팔려 연초보다 3배 이상 팔려나가며 2012년 상반기에만 총 8,817대를 팔아치웠습니다. 토요타는 플러그인 프리어스를 6월 한 달 간 695대를 팔아 3월 론칭 이후 4개월 간 4,347대를 팔아치웠답니다. 닛산의 리프는 3,148대가 팔렸습니다. GM의 볼트는 토요타의 플러그인 프리어스와 닛산 리프를 따돌리고 충전하는 차 중 올 상반기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지난해 충돌 테스트 이후 배터리팩 화제로 판매가 급감했던 볼트는 보증 제도를 수정 보강하고 정부의 지원으로 “전용차선(carpool lane) 이용” 등의 지원이 확대되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리프의 닛산은 고객들에게 신속하게 차를 제공하기 위해 3월부터 전통적인 딜러 방식으로 전환을 꾀하는 한편, 주정부에 도시 내는 물론 도시 간 고속도로 충전 네트워크 확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기차란 미래 시스템 산업에서는 카 메이커, 컴포넌트 및 배터리 서플라이어, 인프라 프로바이더, 서비스 인테그레이터, 정부, 소비자 등이 관계됩니다. 전 세계 전문가들은 이중 카 메이커와 컴포넌트 및 배터리 서플라이어의 역할이 현재 가장 잘 정의 내려졌고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미, 서유럽, 동유럽, 일본, 아시아 각지에는 새로운 전기차가 론칭되고 있고, 대지진으로 주춤했던 공급 및 판매량은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역행하는 듯한 EV Korea를 바라보는 저의 시각이 너무 조급한 것일까요? 아니면 옹졸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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