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전기차에 대한 시장의 반응
Ⅱ. 전기차는 왜 안 팔리는가?
Ⅲ. 전기차 시장의 성장 가능성
Ⅳ. 시사점
주요국 또는 주요 기업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던 전기차에 대한 시장 반응이 매우 냉담하다. 시장 전망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각국의 전기차 정책은 혼선을 빚고 있고, 자동차 기업의 신차 개발 전략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전기차가 팔리지 않는 이유는 너무 비싼 가격 대비 부족한 성능, 안전성에 대한 확신 부족, 그리고 사용자의 불편함에 있다. 이러한 단점을 상쇄할 만한 차별성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자동차 산업 이해관계자의 현실적 선택은 부정적 전망이 만연한 전기차에 대응하기보다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집중하거나 그 연장선상에 놓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 역점을 두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고 전기차에 대한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하고 있다가 전기차 시장의 분위기가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전기차 시장이 의외로 빨리 열린다면 준비가 부족한 자동차 기업들은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시장을 평정해갈 때 준비가 부족했던 글로벌 휴대폰 기업들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다. 전기차 시장이 예상처럼 천천히 형성된다 해도 여유롭게 준비할 만한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발 주기와 제품 수명이 짧은 IT 부품과 달리 자동차 부품은 개발에서 생산까지 이어지는 기간이 매우 길다. 더구나 전기차는 동력 전달, 가속 및 변속, 제동 등에서 기존 자동차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제품이다. 획기적 기술이 등장할 여지도 높지만, 이를 상용화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 전기차 시장이 밝지 않은 가운데서도 많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 또는 부품 기업이 개발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각국 정부의 전기차에 대한 의지도 별로 퇴색되지 않았다.
최근 시장의 움직임을 보면 성능, 가격, 디자인 면에서 생각보다 전기차가 경쟁력을 빠르게 회복할 가능성도 보인다. 테슬러와 아우디 등이 내연자동차과 견줄 수 있는 성능의 전기차에 도전하고 있고 2인승 전기차인 르노의 Twizy, 기어박스를 완전히 제거한 BMW i 시리즈 등 외형에서 풍기는 느낌만으로도 전기차라는 인식을 심어줄 색다른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기차는 기존 자동차와 전혀 다른 제품이다. 절반이 넘는 부품이 제거돼야 하고, 나머지 부품도 새롭게 개발되거나 개선돼야 한다. 내부 구성품이 달라지는 만큼 외관도 달라질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앞서가고 있는 전기차에 국내 기업이 기술적, 그리고 제품적 완성도를 갖추어 대응하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전기차 시장의 움직임이 더디지만 방심하면 미래 자동차 산업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오히려 느리게 진행될 때를 우리의 경쟁력을 갖출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기차는 내연자동차에 비해 차체와 각종 모듈 또는 부품이 독립적으로 결합할 여지가 큰 만큼 관련기업 간 수평적 협력의 필요성도 커 보인다. 전기차 생태계 구성에 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2010년 5월 10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5년까지 100만 대의 전기차를 보급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GM의 파산선고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기차를 통해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되살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성장 동력을 물색하던 주요국들도 앞 다퉈 전기차 육성계획을 발표했다. 주요국 정부가 발표한 수치만 산술적으로 합산해도 최소 500만 대가 넘는, 실로 전기차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1]. 우리 주변에서 전기차를 쉽게 접하는 것도 멀지 않았다고 많은 사람이 믿기 시작했다. 실제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을 좌우하는 GM, 르노닛산, 미쓰비시 등 거대 기업들이 물밀 듯이 전기차 시장에 등장했다.
Ⅰ. 전기차[2]에 대한 시장의 반응
부풀었던 관심
2007년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통해 시장에 처음 공개된 GM의 Volt는 리터당 100 km에 달하는 믿기 어려운 연비를 강조하며 2010년 말부터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3]. 출시 첫해부터 연간 5만 대를 생산하겠다고 장담한 닛산은 2012년까지 연간 5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렌 버핏이 투자하는 회사로 관심을 받던 중국의 BYD는 한번 충전으로 300 km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인 E6를 발표했다.
전기차의 본격 양산 시점에 맞춰 각국 정부는 파격적인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대당 1,000만 원에 가까운 지원금은 물론, 각종 세금 면제, 주차장 할인 등 시선을 끌 만한 지원 방안이 등장했다.
누구도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전기차에 대해 쇄도하는 사전 주문량만으로도 연간 판매 목표를 훨씬 초과하는 수준이었고, 대표적 친환경 산업으로서 전망도 유망했기 때문이었다[4].
전기차의 심장이라 불리는 이차전지에 관한 관심은 더 뜨거웠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던 수많은 기업이 전기차 시장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이차전지에 대한 공격적 투자를 결정한다. 이차전지로 기업들의 투자가 집중됨은 시장의 요구에 답하는 ‘싸고, 좋고, 빨리 충전되는 이차전지’의 출현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암시해 주는 듯 했다.
시장의 냉정한 반응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12년 1분기, 프랑스에서 판매된 자동차 중에서 전기차의 비중은 0.2% 미만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기차의 본격 양산 첫해인 2011년의 실망스러운 글로벌 시장 점유율 0.07%[5]는 아직 본격 성장을 위한 준비운동 단계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전기차를 주도하는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의 실망스러운 실적에 이어 전기차 산업의 마지막 보루로 느껴지던 유럽에서마저 전기차의 성과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의 실정도 다를 바 없다. 글로벌 전기차는 아예 수입조차 되지 않았고, 국내 기업에 의해 개발된 전기차의 본격 출시가 임박했다는 기사만 난무한 채 실제로 운행하는 전기차를 우리 주변에서 보기는 쉽지 않았다. 전기차 전문 기업을 표방하던 국내 중소기업의 파산 위기, 전기차용 이차전지 전문 기업으로 한국에 전략적으로 투자했던 A123의 철수 등 우리나라의 전기차 시장은 펴보지도 못하고 위축될 위기에 처해있다.
불확실한 시장 전망은 자동차 기업의 신차 개발 전략에 영향을 미쳤고, 시장의 냉담한 반응에 당황한 각국 정부의 정책도 혼선을 빚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글로벌 경기불황은 초기 수용자들의 적극적 구매 의지도 꺾어버렸다. 결국, 전기차 성공의 삼각편대인 기업, 정부, 그리고 소비자가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당장 시장성과가 눈에 보이는 하이브리드 카나 클린 디젤 자동차 등이 친환경 자동차의 주역이라 주장하며 득세하게 되었다[6]. 전기차의 명맥은 기존 자동차의 디자인이나 플랫폼을 활용해 개발비용을 최소화한 모델로 이어지면서 외관은 기존 자동차와 유사해 보이는데 성능은 부족하고 가격은 턱없이 비싼 모델이 나타나게 된다[7].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전기차 시장은 이렇게 부진한 것일까?
Ⅱ. 전기차는 왜 안 팔리는가?
광고 매체를 통해 보이는 전기차는 참으로 매력적인 수송수단이다.
‘승용차 운전자의 대다수는 하루에 2시간 미만으로 승용차를 사용합니다. 하루 평균 80 km 미만을 주행하는 운전자는 이제 급등하는 연료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솔깃한 말이다. 하지만 시장에 소개된 지 5년이 되어가고 본격 출시된 지도 3년 차가 되는 전기차의 점유율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아직 0.1% 미만이다. 점유율로만 보면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는 소비자로서는 구매할 만한 가치가 없는 승용차이다.
그렇다면, 전기차는 왜 가치가 없는 자동차라고 인식되었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자. 먼저, 전기차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 보조금을 반영해도 동급 기존 자동차 대비 최소 20%, 최대 2배까지 비싸다. 평균적으로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데 2만여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 전기차에 필요한 부품은 기존 자동차 대비 최소 50%, 최대 80%까지도 줄어든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전체 부품에서 50%가 넘는 부품이 제거되었으니 전체적으로는 가격이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많이 올라갔다. 한 대당 1,000만 원이 넘는 이차전지 때문이다. 가격 인상의 주범인 이차전지의 원가는 기업들의 집중된 투자로 상당 부분 낮아졌고 앞으로도 계속 낮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차전지 원가 개선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8] 나머지 수천개의 부품에 대한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이 더 요구되는 상황이다.
두 번째, 전기차를 가족과 함께 마음 편하게 타기에는 아직 안전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다. 사용 후기도 너무 부족하다. 자동차 사고에 비한다면 발생 빈도는 극히 낮지만, 언론 매체를 통해 일파만파로 확대 해석되는 전기차 사고 소식도 불안감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 이제 시장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기차를 가족과 함께 타기에는 아직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세 번째, 지금까지 사용하던 자동차와 비교해서 매우 불편하다. 전기차는 소음이 없고, 친환경적이라고 해도 자동차로서 기본 성능이 만족스럽지 않을 정도로 제품 완성도가 부족했다. 기존 자동차의 20% 수준에 불과한 주행거리 때문에 장거리 여행에 대한 기대는 일찍이 저버렸다고 해도 최고 속력 수준은 기존 대비 상당히 부족하다. 가끔 도로 상에서 보이는 ‘저속전기차 진입 금지’ 팻말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 몇 분, 길어야 십 여분이면 주유에 이어 자동 세차까지 가능한 기존 주유 습관에 비해 빨라야 몇십 분이고 평균 4시간 이상이 필요한 충전의 불편함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표 1】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차의 부품 비교 |
전기차에서 불필요해지는 부품 | 전기차에 필요한 부품 | |
엔진 | 실린더 블록, 피스톤, 콘로드, 캠, 캠 샤프트, 밸브 |
<모터> |
엔진 주변장치 |
연료계, 흡기계, 배기계, 윤활 계, 충전 및 시동계, 점화장치 |
냉각계(전동화), <인버터>, <구동용 이차전지>, <DC/DC컨버터> |
파워트레인 | 트랜스미션 | 프로펠라 샤프트, 디퍼렌셜 기어, 드라이브 샤프트 |
브레이크 | 유압장치, 배력장치, 마스터 실린더 | 파킹 브레이크, 디스크 브레이크 또는 드럼 브레이크(전동화), ABS |
스티어링 |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 스티어 링 샤프트 |
전동식 파워스티어링, 기어박스, 타이로드 |
서스펜션 | 해당 없음 | 코일 스프링, 쇼크 압소바(전동화), 서스펜션 ARM |
차체 및 타이어 |
모든 부품, 에어컨(전동화) | |
기타 | <고압계 와이어하네스>, <컨텍터> 등 |
주/ < > 표시한 부품은 전기차에서 필요해지는 신규 부품 출처/ 부국증권 |
전기차는 급증하는 온실가스, 그리고 발굴에 한계가 있는 화석 연료에 대한 인류의 고민을 해결하는 궁극적 대안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전기차가 주류 시장에 등장하는 시점’ 이다.
자동차 이해관계자의 현실적 선택은 내연기관
현재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만연하다. 10년 뒤에도 자동차 시장에서 2% 미만을 점유하는 틈새시장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한다. 자동차 산업 이해관계자 입장에서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눈앞에 보이는 시장 상황에 따른 현실적 선택은 기존 자동차인 내연기관 자동차에 집중하거나 내연기관 자동차의 연장선상에 놓인 하이브리드 카 개발에 역점을 두는 전략이다. 현 시점의 전기차는 가격, 완성도, 사용자 만족도 측면에서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기존 자동차에 집중함으로써 종전에 보유한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시장의 최근 흐름도 남다른 디자인이나 차별적 성능보다는 실용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최근 개최되었던 베이징 모터쇼에서 대두된 주요 화두는 ‘고연비’와 ‘소형화’였다. 이는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자동차에 대한 실질 구매력이 감소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지난 몇 년간 ‘매연 제거’를 강조하는 전기차에서 찾던 친환경의 해법을 ‘연비 효율 개선’에서 찾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전반적인 환경보호 의지도 약화되고 있다. 당면한 경기 침체를 헤쳐 나가는 것이 급선무가 되다 보니, 금년 말에 종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기 위한 논의는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되풀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발굴 과정의 환경 유해성 때문에 각광을 받지 못하던 셰일가스 등 비전통 에너지원에 대한 채굴 기술이 발달하면서 화석 에너지 가격도 종전의 우려보다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시장의 발전 가능성은?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고 전기차에 대한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하고 있다가 전기차 시장의 분위기가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 시장의 분위기가 전기차로 짧은 시간에 반전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재발되면서 유가가 급변한다든가 혁신 전지의 등장, 그리고 스마트폰의 애플 같은 특출한 사업자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반전된다면 시장은 생각보다 빠르게 열릴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표 2】자동차 부품의 기능별 분류 |
구분 | 주요 부품 | ||
차체 | 판넬, 도어, 범퍼 | ||
샤시 | 엔진 | 엔진본체, 냉각장치, 연료장치, 흡배기 | |
동력전달장치 | 클러치, 트랜스미션, 액슬, 기어류 | ||
전기장치 | 이차전지, 배선, 모터류, 스위치류, 센서류, 릴레이류, 램프류, 카 오디오 | ||
기타 샤시 |
조향장치 | 스티어링 기어, 칼럼&샤프트, 스티어링 너클, 스티어링 휠 | |
제동장치 | 브레이크 시스템, 브레이크 부품 | ||
현가장치 | 쇼크 압소바, 스태빌라이저 | ||
공조제품, 타이어&휠, 와이퍼, 고무제품, 시트, 필터류, 에어백 |
출처/ 한국 표준산업 분류 |
【표 3】전기차용 부품 개발 |
기업 | 부품 | 특징 |
포스코 | 전기차용 철강차체 |
무게 25% 절감, 안정성은 2015년 국제기준 통과 |
LS산전 | 전기차용 릴레이 |
파워트레인에 전기를 공급하거나 차단하는 제어 부품 |
미쓰비시 전기 |
인버터 일체형 모터 시스템 |
인버터와 모터를 같은 축상으로 일체화 |
일본항공 전자공업 |
회전각 센서 | 구동용 모터에 사용 기존 대비 내환경성 우수,저렴한 원가 |
파나소닉 | 히트펌프식 냉난방 시스템 |
기존 전열히터식 대비 소비전력 30% 저감 |
더디게 열려도 시간 많지 않다
전기차 시장이 예상처럼 천천히 형성된다 해도 여유롭게 준비할 만한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발 주기와 제품 수명이 짧은 IT 부품과 달리 자동차 부품은 개발에서 생산까지 이어지는 기간이 매우 길다.
독일의 자동차 부품 기업인 보쉬는 ABS(Anti-lock Brake System) 개발에 20여 년이 걸렸다. 2015년에는 자동차 부품에서 점유하는 비중이 40%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전장부품[10]에 대한 준비는 1950년대부터 시작했다. 물론 오랜 개발 기간 이상으로 자동차 부품의 수명은 매우 길다. ABS는 30년이 넘도록 보쉬의 대표적인 효자 제품이 되고 있다. 더구나 전기차는 동력 전달, 가속 및 변속, 제동 등에서 기존 자동차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제품이다. 획기적 기술이 등장할 여지도 높지만, 이를 상용화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전기차에 대한 글로벌 기업 및 국가들의 대응
많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 또는 부품 기업이 더딘 시장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리드하기 위해 전기차 개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BMW의 i 시리즈는 전기차 전용으로 디자인되고 설계된 최초의 자동차이다. BMW의 기술 담당 매니저는 “i 시리즈는 전기차에 대한 포괄적 접근법을 활용해 신소재부터, 주요 기능, 디자인, 생산 공정까지 일괄적으로 개발한 자동차로 출발 자체가 전기차”라고 강조했다.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있지만, 고효율 친환경 자동차로서 기존 자동차와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을 가진 전기차에 대해 새로운 관점의 접근을 시도했다는 것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1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렸던 전기차인 로드스터를 개발한 미국의 테슬라는 가격을 30%에서 50% 낮춘 차기 모델 S를 통해 전기차 성능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테슬라의 CEO는 ‘모델 S는 닛산의 LEAF 같은 자동차가 아닌 포르쉐 자동차보다 가속도가 뛰어나고 코너링에도 압도적 성적을 보이는 전기차’라고 강조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부품을 주로 사용한 모델 S는 주행거리도 300마일에 달하는, 기존 자동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전기차로 보인다. 또한 테슬라는 자사의 경쟁 기업은 GM이 아닌 애플이라고 강조하면서, 판매점도 유명 의류 판매점 바로 옆에 위치시켜 새로운 가치를 찾는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지금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지 않으면 영원히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전기차 개발의 당위성을 설명한 카를로스 곤이 CEO로 있는 르노는 지난해 말부터 4종의 전기차를 차례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 르노는 이차전지 팩을 임대해 판매 가격을 낮추는 사업 모델, 이차전지 팩을 교환해 충전에 필요한 시간을 최소화하는 충전 모델 등을 개발하며 전기차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표 4】자동차 모델별 가격비교 |
모델 | 년식 | 가격(USD) | 운항방식 | 미국 시장 판매량 (2011년) |
닛산 LEAF | 2011년 | 32,870 (보조금 미반영*) |
EV | 9,674대 |
토요타 Prius | 2011년 | 23,520 | HEV | 136,463대 |
토요타 orolla | 2011년 | 18,404 | ICE | 240,259대 |
주/ 미국의 보조금은 2011년 7,500달러였으나 2012년부터 10,000달러로 인상 결정 |
【표 5】부품 모듈별 원가 비중 |
내연기관 자동차 | 내연기관 자동차 | |
파워트레인 | 28% | 52%* |
기타부품 | 37% | 25% |
제반비용 | 22% | 15% |
이익 | 13% | 8% |
주/ 이차전지 팩이 차지하는 비중은 파워트레인 원가의 절반 수준 |
출처/ Deutsche Bank, Nomura |
성능, 가격, 디자인에서 전기차의 혁신 가능성
최근의 시장 움직임으로 보면 생각보다 전기차가 경쟁력을 빠르게 획득할 가능성도 보인다.
먼저, 테슬라의 모델 S를 시발점으로 자동차로서 기본인 주행 성능을 확보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독일의 아우디가 금년 말에 출시 예정인 전기스포츠카 ‘R8 e트론’은 최고 속도가 시속 250 km까지 가능하고 주행거리도 215 km에 달한다.
두 번째, 전기차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시점도 당겨질 수 있다. 딜로이트가 2011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자동차 구매자의 8%는 3,000달러 미만의 가격 격차면 전기차를
구매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보조금 상승으로 미국 시장에서 닛산의 LEAF와 기존 자동차 모델인 토요타 Corolla와의 가격 격차는 4,300달러다.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지만, 주 정부의 지원금까지 고려하면 3,000달러 미만의 격차도 가능하며, 이 차이는 토요타의 Prius와의 차이보다 더 적다.
지금은 이차전지 위주로 원가 절감에 몰입하지만, 파워트레인에 필요한 부품 그리고 기타 부품까지도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한 범위에 포함된다. 이차전지 위주로 형성된 전기차 부품 생태계가 점차 범위를 넓혀간다면 현재 전기차 가격의 절반 수준인 전기차도 가능할 것이다. 무리하게 설정된 이차전지의 원가 하락 목표를 현실적으로 수정하고, 다른 부품도 함께 노력한다면 50% 수준의 원가 절감도 가능할 수 있다. 전기차에서 이차전지의 원가 비중은 25%이고, 이를 80% 절감하면 원가 비중은 5%로 낮아지는 반면 나머지 부품의 원가 개선이 어려워 원가 비중의 점유율이 75%로 동일하다면 결국 전기차의 원가 하락 수준은 20%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든 부품의 원가를 50% 낮춘다면 현재 가격의 절반 수준도 가능하다.
세 번째, 차별적 디자인에 대한 실마리도 풀리고 있다. 2인승 전기차인 르노의 Twizy, 기어박스를 완전히 제거한 BMW i 시리즈 등 외형에서 풍기는 느낌만으로도 전기차라는 인식을 심어줄 색다른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Ⅳ. 시사점
가격 경쟁력보다 제품 완성도에 집중해야
많은 전기차 관련 기업들이 이차전지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차전지는 전기차 성능 및 가격 수준에 매우 중요한 부품이다.
하지만 전기차의 경쟁력을 올리는 실마리가 이차전지에만 달린 건 아니다. 전기차 같은 수많은 부품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조립 제품의 개선은 한두 개 부품만의 혁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차전지 가격이 낮아지면 전기차는 팔리기 시작한다는 단편적 생각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기차 제품 자체의 완성도 개선’이라는 과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전기차의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시장 분위기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전기차는 기존 자동차와 전혀 다른 제품이다. 절반이 넘는 부품이 제거돼야 하고, 나머지 부품도 새롭게 개발되거나 개선돼야 한다. 내부 구성품이 달라지는 만큼 외관도 달라질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대응하고 있는 전기차에 국내 기업이 기술적, 그리고 제품적 완성도를 갖추어 대응하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세계 5위권 안에 들어갈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은 국내 자동차 업계도 기존 자동차에서의 역량을 믿고 준비를 소홀히 할 때는 아니다. 시장을 만들어가고 경쟁 구도를 주도하려면 가격을 낮추기보다 제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준비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시너지 높일 수 있는 부품 생태계 고민해야
조립 제품의 완성도를 향상시키려면 부품 간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연결고리가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부품 생태계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상호 보완하는 관계 속에 제품력이 좋아지면 제품 전체적인 관점에서 원가구조의 개선도 더불어 발생하고, 전기차의 비싼 가격에도 해결 기미가 보일 수 있다.
특히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기업 간에 수평적인 협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 기업 간의 지속적인 협업으로 협력 수준도 높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 자동차는 엔진을 변경하면 차체 전반적인 설계 변경이 수반되었지만, 전기차는 차체와 각종 모듈 또는 부품이 독립적으로 결합할 여지가 크다. 부품 변경이 독립적으로 가능하기에 부품의 모듈화 수준이 기존 자동차보다 훨씬 높다. 전기차에서는 기존 자동차 산업에서 볼 수 있는 ‘완성차 기업이 주도하고 부품 협력 기업이 따라오는 방식’이 아닌 ‘수평적 분업 관계로 모듈을 구성하는 방식’에 기반을 두고 설계 단계부터 개방적으로 이견을 조율하는 대등한 관계 형성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전기차 시장은 느리게 움직이고 있지만 방심하고 있으면 미래 자동차 산업 경쟁에서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준비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전기차 관련 기업들과 정부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 고
[1] 1911년 당시 뉴욕타임스는 전기차가 오랫동안 사용될 것이라 평가함. 실제로 미국 각 지역에는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되기도 했음.
[2] 본고에서는 모터를 주동력 원으로 사용하는 EV와 PHEV를 전기차로 칭함.
[3] 순수 전기모드의 최대 주행거리(80km)와 휘발유 1리터를 사용한 주행거리(15km)의 합산.
[4] 시판 6개월 전에 시작된 닛산 LEAF에 대한 사전 주문은 두 달 만에 2만 대를 돌파함.
[5] 2011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 수량은 4만 3,237대(Bloomberg, 2012년 4월).
[6] 2012년 1분기의 토요타 하이브리드 모델의 판매량은 2011년 글로벌 하이브리드 판매량 전체의 68% 수준.
[7] 외관상 전기차라는 것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 부진의 원인으로 드러난 포드 포커스 일렉트릭은 2011년 12월 출시 이후 두 달간 총 10대 판매에 그침. 가격은 동급 대비 2.2배인 $39,995
[8] Bloomberg New Energy Finance는 2012년 4월에 2012년 1분기 리튬이온전지 팩 가격이 2009년 대비 30% 낮아졌다고 발표함. 2030년 목표는 2009년 대비 80% 수준 하락임.
[9] 환경부가 실시한 평가 결과에 의하면 기아자동차의 레이 EV는 1회 충전으로 상온에서 126km, 저온에서는 68km 주행 가능.
[10] 자동차에 사용되는 전기 및 전자장치 부품으로 디스플레이 장치, 모터, 센서, 스위치 등을 의미함.
[11] 2011년 7월 9일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2020년까지 신에너지 자동차(전기차,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생산 및 판매 목표는 200만 대 이상, 누적으로 500만 대 이상 목표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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