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표준 大戰: 닛산의 고립과 패배
PLC에 발목 잡힌 한국의 e모빌리티와 충전산업
2013년 09월호 지면기사  / 글│한 상 민 기자 <han@autoelectronics.co.kr>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3년 7월 현재 차데모 직류 급속충전기는 전 세계적으로 2,703기가 설치돼 있다. 일본이 1716기, 유럽이 815기, 미국이 160기, 그 밖에 나라가 12기다. 그리고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차데모의 미련에도 불구, 전기차 급속충전 표준 전쟁은 미 SAE의 콤보 채택과 함께 사실상 종결됐다. 다가오는 유럽연합의 표준 결정은 완벽한 종전선언이 될 것이다.

종전을 알린 5월 회동

2012년 5월 22일에 개최된 차데모(CHAdeMO) 협의회 2차 총회 직후 회장을 맡고 있는 닛산의 토시유키 시가(Toshiyuki Shiga) COO는 기자회견에서 “전기차 보급의 활성화가 우선인 만큼 콤보(Combined Charging System, CCS) 방식과의 규격 분쟁을 피하고, 차데모와 CCS의 기술 호환성 확보에 나서겠다”며 “차데모는 그동안 다양한 실증 실험을 통해 많은 실패를 경험했는데, 세계 각 지역에 전기차를 보급하는데 있어 같은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5월 3일 미국과 독일의 카 메이커인 포드, GM, 크라이슬러, BMW, 다임러,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셰 등 8개사가 ‘CCS로 가겠다고 발표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다. 닛산과 미쓰비시가 이끈 차데모는 최초의 글로벌 전기차 시장과 인프라 보급의 선봉에 섰지만, 미국과 유럽의 CCS 연합으로 인해 그 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돼 버렸다.
그로부터 수개월 후, 미국의 표준결정 기관인 SAE 인터내셔널은 CCS를 미국의 급속충전 표준으로 채택했다. 이렇게 차데모 대 CCS의 급속충전 표준 전쟁은 싱겁게 막을 내렸다.
SAE의 앤드류 스마트(Andrew Smart) 이사는 “이 결정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전기차의 엔지니어링을 포함한 CCS의 기술적 우위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내비간트(Navigant)의 존 가트너(John Gartner) 애널리스트는 “북미와 유럽은 명백하게 장기적 충전 솔루션을 CCS로 가져갈 것이다. 닛산이 미국에서 향후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차데모를 제공하겠지만 다른 카 메이커들은 CCS로 갈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급속충전기 보급에서 CCS가 지배적인 지위에 오르면 닛산도 미국에서만큼은 표준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OEM은 자국에서는 차데모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아직 표준을 정하지 않았지만 관련 업체들이 다른 세계시장에 CCS 솔루션을 공급하려 하고 있고, CCS의 대량생산 가능성은 결국 중국 국내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럽의 미래도 결정됐다. 올 연초부터 유럽위원회는 ‘교통부문의 청정에너지 전략(Clean Power for Transport, CPT)’이란 정책서를 펴내며 CCS 지지를 명확히 했다. 정책서는 다양한 대체연료에 대한 전략과 함께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일원화에 대한 권고사항이 포함되며 사실상 차데모 배제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차데모 협회는 “기술-중립적 접근은 시장의 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콤보/차데모의 멀티 급속충전기의 보급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이는 이미 어느 정도 인프라 투자를 집행한 국가의 보다 빠른 무배출 교통 네트워크 확대를 가능케 할 것”이라며 유럽위원회에 아쉬움과 유감을 표했다. 





8월 현재 유럽의회는 2018년을 끝으로 차데모를 뺀 CCS로 표준을 단일화하는 법률 입안을 진행 중이다. 차데모 관련 안건은 역시 에탄올과 같은 다른 대체연료에 대한 고려사항이 함께 포함된 “대체연료 인프라의 개발에 대한 유럽회의와 의회의 지침(a directive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on the deployment of alternative fuels infrastructure)”의 일부분으로 제안될 예정이다. 이 법안에는 ‘전기차를 위한 DC 급속충전 포인트는 대안으로 2018년 12월 31일 종료되는 과도기 동안에 차데모 방식 커넥터를 장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바꿔 말하면, 2019년부터 차데모를 배제하는 것이다.  
현재 시장에는 적어도 3~4개의 DC 급속충전 표준안이 존재한다. 주로 일본 메이커와 현대·기아자동차가 사용해 온 차데모, 미국 테슬라의 수퍼차저(Supercharger), BMW와 GM 등의 CCS가 있다. ZOE와 SM3 Z.E. 등의 르노와 다임러의 스마트 EV는 AC 레벨3 충전을 채택하고 있다.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고속 AC 충전(22.7 kW) 구축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럽의 DC 급속충전의 수요를 낮출 수 있지만, CCS는 유럽에서도 미래의 충전 표준”이라고 말했다.

의미 없는 과거 데이터  

DC 급속충전 표준 전쟁은 닛산의 고립과 완패다.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토요타와 같은 OEM은 이 전쟁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은 순수 전기차 공급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고, 미래의 전략 포커스도 지속적으로 연료전지차에 있을 것”이라며 “테슬라는 광범위한 네트워크 사용에 대한 고객의 요구로 CCS와 차데모 어댑터 제공을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브랜드 차별화 정책에 따라 그들만의 충전 솔루션을 유지할 것이고, 르노는 고속 AC 충전을 가능한 오랫동안 고수하면서 향후 고객의 의견에 따라 CCS로 전환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CS는 하나의 충전구에서 저속충전까지 같이 하는 것이 불가능해 플러그를 더 필요로 하는 차데모의 약점을 지적한다. 차데모는 기본적으로 CCS나 수퍼차저에 비해 부피가 크고 충전도 느려 불편하다. CCS가 보는 차데모의 강점은 단지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문제점을 바로잡아온 안전성뿐이다. CCS는 저속충전과 급속충전 모두를 1개의 충전구로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부품, 유지보수 비용이 낮다. 또 100 kW에 맞게 디자인됐지만 50 kW에 대응하는 차데모에 비해 기본 디자인이 170 kW로 돼 있고 현재 50 kW, 85~90 kW에 대응하고 있어 충전도 빠르다.  
차데모 협회는 현재까지의 현황으로 볼 때 CCS는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공식 통계가 사실상 없는 CCS 충전기나, 6월 현재 130여대 판매에 그치고 있는 CCS 방식의 첫 전기차인 쉐보레 스파크의 실적을 문제 삼는다. 차데모는 2000년대 중반 일본 자동차 산업에 의해 개발되고 전 세계적으로 적용되며 2,700개 이상의 충전기를 구축하면서 초기 전기차 시장을 이끌었다. 일본에 1,716, 유럽에 815, 미국에 160기가 설치돼 있다. 관련 전기차 누적 판매량도 닛산 리프와 미쓰비시의 i-MiEV가 절대적이다. 이같은 차데모의 데이터적 우위는 유럽의 법안에도 잘 드러난다.
‘현재 CCS는 완벽히 준비돼 있지 않고 유럽에 이미 650기 이상의 차데모 충전기가 설치돼 있는 데다, 2013년까지 1,000기 이상이 보급될 것이어서 최종적으로 하나의 표준을 설정하라는 위원회의 제안에 따르려면 두 가지 시스템 모두 보급될 수 있는 과도기간의 제한적 설정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돼 있다.    
이 때문에 차데모를 이끄는 닛산은 미국과 유럽의 표준이 CCS라고 해서 당장 충전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반면 CCS 진영은 미국과 유럽 등 최근의 전 세계적 추세를 볼 때 차데모는 이미 표준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올 상반기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가 르노의 조이, 독일의 베스트셀러가 스마트 EV이고, 전체 유럽 차원의 베스트셀러도 르노의 트위지와 캉구이기 때문에 CCS에 대한 차데모의 반박과 데이터는 단지 과거일 뿐이라고 했다. 노르웨이만이 차데모 방식의 리프가 베스트셀러인데, 노르웨이는 유럽연합과도 전혀 관계없는 나라다. 
BMW와 GM의 엔지니어들은 다양한 서플라이어들이 개발한 쉐보레 스파크 EV, BMW i3 시험차량을 위한 CCS 충전소 구축이 이미 상당 수준에 올라와 있고, 예를 들어 ABB, 에이커 웨이드(Aker Wade), 이튼(Eaton), IES 등을 포함한 제조사들과 CCS 보급 확대를 위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 적용, 테스트, 보급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올 연말부터 내년 이후 출시되는 거의 전부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모델이 CCS 방식이다. 스파크 EV를 시작으로 쉐보레 볼트, 캐딜락 ELR, 포드 포커스 일렉트릭, 포드 C-MAX, 포드 퓨전 에너지, 링컨 MKZ 에너지, 토요타 프리어스 플러그인, 폭스바겐 e-UP, e골프, BMW i3, 아우디 A3 E-tron, 포르쉐 파나메라 S E-Hybrid, 미쓰비시 아웃랜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이 CCS로 론칭된다. 닛산의 E-NV200 밴만이 차데모 방식이다.  
BMW의 모리츠 클린키쉬(Moritz Klinkisch) 매니저는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57%가 콤보 방식이고, 차데모 방식은 38%, AC 방식은 5%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방어냐, 전기이동성이냐 

차데모가 말한 CCS와의 호환성 확보에서 최대 난점은 전기차와 급속충전기 통신 네트워크 차이의 극복이다. 차데모는 일반적인 차량 통신 네트워크인 CAN을 사용하지만, CCS는 전력선통신(PLC)을 채용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CCS의 PLC 사용이 우리나라에서는 차데모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환경부의 박광칠 팀장은 “환경부 등 국내 주요 전기차 관련 기관, 기업, 관계자들이 CCS가 세계적 트렌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CCS 방식의 새 전기차 모델이 국내에서도 론칭되려 하는 시점에서 PLC 문제가 터져 상황이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스파크 EV, BMW i3, 폭스바겐의 e모션 등 CCS 방식 전기차의 국내 진출이 예정돼 있지만, 한국전력이 구축하고 있는 원격검침 인프라(AMI)와 CCS 간의 통신 간섭 문제로 CCS의 국내 표준 채택이 불가한 상황이다. 기술표준원에 따르면, 통신 간섭으로 기기 오작동, 통계 오류 등 중대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어 CCS를 표준으로 수용할 수 없다.
한국전기연구원의 임근희 박사는 “현대ㆍ기아자동차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수출이고 국내시장 방어를 위해 CCS를 바라지 않겠지만 전기이동성 발전 측면에서 CCS 표준이 추진될 것으로 본다”며 “대부분 전기차 충전은 완속으로 이뤄지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급속충전이 운전자의 주행불안증 완화 측면에서 의미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CCS 진영 OEM들은 “세계 전기차 시장이 CCS로 일원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을 위해서만 차량 설계를 다시 할 수는 없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고, 충전장비 업체들은 국내와 국제시장에 이원화된 대응을 해야하는 부담과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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