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말, 한국인 최초 벤틀리 외장 디자이너, 제네시스 DH와 EQ900등 현대자동차 고급차 개발 프로젝트 외장디자인그룹장으로 잘 알려진 현 국립울산과학기술원(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정연우 교수를 만났다. 그의 디자인은 갈수록 먼 곳을 향하고 있다. 당장 5년후의 자동차 모델을 디자인하던 것은 UNIST에 오면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10년, 20년, 멀게는 30년후의 세상과 환경을, 그의 후학까지 고려한다면 100년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자동차 디자이너란 꿈을 갖은 소년기부터 마이크로모빌리티, 하이퍼루프 등 미래이동성을 디자인하고 있는 현재까지, 정 교수의 이야기를 전한다.
UNIST Yunwoo Jeong 국립울산과학기술원 정 연 우 교수
Q. 교수님은 언제부터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꾼 것입니까?
A. 부산 연일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시절부터 자동차를 무척 좋아해서 차를 그렸고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는 것을 꿈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사실 미술을 제대로 했던 것은 아니고 일단은 공부를 열심히 하려 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는 정말 간신히 합격했습니다. 저는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려면 기계공학과에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 “이건 디자인과야”라고 알려주셨죠. 사실 이건 학교마다 다른데, KAIST는 산업디자인과가 공과대학 내에 속해 있지만, 서울대학교는 미술대학 내에 있습니다. 백과사전 등을 뒤져가며 자동차에 대한 온갖 정보를 찾아보면서 그것을 그대로 베껴 노트에 그리고 세부사항을 적어 넣어 보기도 하고 나만의 익스테리어, 인테리어 디자인을 만들고 기술 사양들을 추가해 보기도 했습니다.
Q. A형 안개등, C형 안개등, 4WD, 온도 센서…, 아니 이건 통풍시트 아닌가요(정 교수의 노트를 보며)? 초등학교 5학년이 어떻게 이렇게 디테일하게 할 수 있죠?
A. 요즘 유행하는 통풍시트도 제가 5학년 때 이미 아이디어를 냈던 것이네요(웃음). 시트에서 에어컨이 나오면 어떨까 하고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헛소리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 차를 보면 패들 시프트같은 버튼식 변속기도 있습니다. 당시 저는 수퍼호크(Super Hawk)란 회사를 창립하고 스포츠카를 좋아해 저만의 JAS 모델 등 다양한 스포츠 모델들을 만들었습니다.
Q. 그 때면 쏘나타, 그랜저가 나올 때 인데, 직접 스포츠카를 보고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니네요.
A. 네. 당시 스포츠카가 없었습니다.
80년대 초에는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가 포드나 GM(오펠) 등과 손잡고 마크포, 그라나다, 로얄살롱 등을 내놓았고 이후에 대우가 에스페로, 현대가 쏘나타, 그랜저, 스쿠프 등을 출시했었습니다. 전부 책에서 튀어 나온 것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영국으로 갔나요?
A. 아닙니다. 졸업하고 대학원에 갔고 이를 마치면서 서른 직전에 한국GM(당시 GM대우)에 입사하면서 처음으로 자동차 디자인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GM대우는 내부적으로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GM의 첫 글로벌 준중형 세단 개발 프로젝트가 입사 직후 시작됐는데, 한국으로는 라세티 후속 모델, 세계적으로는 C세그먼트의 오펠 아스트라급 세단을 디자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GM의 글로벌 스튜디오가 11개 있었는데, 제가 그린 스케치가 경쟁에서 이기면서 스케일 모델, 풀사이즈 모델을 거쳐 최종적으로 선택됐습니다. 바로 라세티 프리미어, 쉐보레 크루즈입니다.
Q. 교수님의 디자인 안이 왜 선택된 것이었을까요?
A. 글쎄요. 그 때에는 예를 들어 아반떼 HD처럼 몽실몽실한 차가 대세였습니다.
토요타도 그런 스타일이었구요. 이것은 차량 전체의 프로포션보다는 형상과 굴곡의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부분적 디테일보다는 준중형이라는 차급을 고려해 강한 인상을 갖춘 잘빠지고 탄탄한 바디를 만드는 것을 표방했었죠. 구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면, 차의 숄더 면이 대개 불룩하게 포지티브한데 반해 저는 역으로 파이는 네거티브한 서피스를 만들었습니다. 치타의 옆모습을 형상화한 캐릭터 라인과 자세를 넣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었습니다. 또 지금은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마치 눈꼬리가 올라간 것 같은 헤드램프 그래픽을 디자인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강한 인상과 탄탄한 바디를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Q. 그런데 왜 GM을 떠나게 된 것입니까?
A. 얼마 전 퇴임한 GM의 글로벌 디자인 에드 웰번(Ed Welburn) 부사장은 최종 모델 품평 당시 제 모델을 선정하면서 릭 왜고너 회장(Rick Wagoner)에게 “GM은 이런 젊은 디자이너를 육성하고 성장시켜야 한다”고 직접 칭찬해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데이빗 라이언(David Lyon) 아시아태평양디자인 총괄 전무가 “뭘 하고 싶냐”고 묻기에 영국왕립예술학교(RCA)에 가서 유럽의 자동차디자인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2008년 RCA를 졸업하고 미시건GM 본사로 갈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GM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Q. 돌아볼 때, RCA에서의 경험은 얼마나 특별했다고 생각하나요?
A. 굳이 말하자면, RCA는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학부가 없고 석사과정부터이기 때문에 다들 디자인 공부를 하고 왔거나 기업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이어서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프로젝트들을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또 한국에 있다가 곧바로 외국의 기업으로 가는 경우 급격한 환경의 변화로 문화적 충격을 겪을 수도 있지만, RCA 제학 기간을 거치면서 영국 등 유럽 문화에 대해 많이 알게 되면서 적응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동료, 친구, 선후배들도 많아졌습니다. 그 때 동급생들은 지금 저와 비슷한 레벨에서 활발히 일하고 있고, 저보다 빠른 기수들, 예를 들어 PSA의 알렉산더 말발(Alexandre Malval) 총괄이나 포드 인턴십에 저를 뽑아준 크리스 해밀턴(ChrisHamilton)같은 선배들은 디렉터가 돼 기업의 디자인을 이끌고 있습니다. 꼭 RCA를 나와야 할 필요는 없지만, 유럽 자동차 디자인을 주도하는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RCA 출신인 것 같습니다.
Q. RCA를 졸업하면 영국 차의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A. 영국 자동차의 디자인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기 보다는 영국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문화란 것이 자동차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나 블랙캡의 키가 큰 이유, 영국 차들이 고수하는 브리티시 라인 등이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쉐보레 크루즈를 디자인할때는 영국에 가기 전이니까 별 관계가 없지만, 벤틀리에 근무하면서 브리티시 스타일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이 사실이고, 현대자동차에 와서도 제네시스 DH를 디자인하면서 그것이 많이 들어간 것이 맞습니다.
Q. 개인적으로 제네시스 DH의 디자인을 매우 특별하게 생각했었는데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또 제가 예나 지금이나 영국 차 디자인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A. 차를 볼 줄 아시네요(웃음). 제네시스 DH의 디자인에서 스타일링만 했던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초기에 디자인센터를 대표해 PM과 같이 패키지 구성을 진행했습니다.
이전 제네시스와 비교할 때 신형은 ‘프리미엄 라인’을 굉장히 많이 늘렸습니다. 사실 전륜구동 차들은 이 부분이 대단히 짧은데, 이것이 길면 길수록 차가 더욱 고급스럽고 대형차처럼 느껴집니다. 벤틀리를 보더라도 하위 모델을 제외하면 모두 이 프리미엄 라인이 매우 깁니다. 당시 설계 팀은 기존 제네시스 플랫폼을 약간만 수정해 사용하고 싶어 했지만, 저는 쉽지 않은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휠과 액슬을 더 앞쪽으로 당겨야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이를 관철시켰습니다.
지금의 제네시스가 예전 제네시스보다 훨씬 더 스포티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이 비율의 조정, 즉 DNA가 우수한데 있다고 봅니다. 또 자랑스러운 것은 이 프리미엄 라인이 BMW나 벤츠보다도 더 잘 나왔다는 것입니다. 제네시스 DH의 비율은 지금의 BMW 5시리즈나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와 함께 세워 놓아도 전혀 꿀리지 않습니다.
Q. 어떻게 벤틀리에 가게 됐습니까?
A. RCA 졸업 과제로 캐딜락 ‘2023엘도라도 1967’이란 작품을 했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졸업 후 GM으로 돌아가기로 돼 있었는데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진 겁니다. GM이 하루에 500명씩 퇴사시키던 때였는데, 제 미국행을 진행하기 위해 영국에 온 GM의 쉐릴 게럿(Sheryl Garrett)이 어느 날 “우리의 지원으로 미스터 정이 GM에 오는 것이 맞지만 본인이 정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졸업 프로젝트 전시회를 통해 닛산 런던 스튜디오, 재규어, 아우디 등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기 때문에 저로서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지요.
Q. 어떻게 보면 2023 엘도라도 1967 이 정 교수님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네요. 그만큼 이 콘셉트 카가 남달랐다는 것이고요.
A. 2023 엘도라도 1967 콘셉트 카디자인은 지금 이슈와 딱 맞는, 상당히 재미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GM에서 나온 스케이트보드 시스템을 혹시 아세요? 일단 이 차는 스케이트보드처럼 플랫폼 전체가 배터리판으로 된 전기차입니다. 어떻게 보면 GM이 테슬라보다 빨랐던 것입니다. 또 차는 런던과 같은 교통혼잡이 심한 대도시, 미래의 메가시티를 위한 캐딜락입니다. 중요 콘셉트는 2023년이 되면 세단, 스포츠카, SUV등 필요 용도는 다양한 반면 차 2대를 소유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큰 특징 중 하나가 캐빈을 덮고 있는 캐노피가 유리가 아닌 대단히 신축성이 좋은 젤리같은 비닐로 된 일종의 투명 파라솔 같은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데이트, 스포츠 드라이빙, 가족 나들이, 적재공간이 필요한 경우 등 다양한 상황에 따라 인테리어의 조종이 필요할 때 피부밑에 뼈가 있듯이 투명 비닐 아래서 레일을 따라 파라솔과 시트 등 인테리어가 앞뒤로 조정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밖(특히 측면)에서 보면 2023 엘도라도의 익스테리어 형상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Q. 제안해 온 3개 회사를 두고 행복한 고민을 했을 것 같네요.
A. GM에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처음엔 거절했지만 말씀드린 대로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회사들 중엔 재규어도 마음에 들었던 회사입니다. 당시 벤틀리는 새로 디자인됐다고 할 수 있는 모델이 컨티넨탈 GT 정도였지만 재규어는 신형 XF 등이 막 나올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 당시 재규어의 재정상황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포드를 떠나 타타가 인수한 지 얼마안 된 시점이었고요. 게다가 코벤트리로 인터뷰를 가니 재규어의 엔지니어링 센터, 디자인 센터 건물은 공단에서나 볼 수 있는 샌드위치 가건물이었고 이것이 재규어 특유의초록색과 어우러지면서 정말 소박한(?) 인상을 줬습니다. 출입을 위해 문을 열고 닫으면 벽이 흔들렸습니다. 재규어의 디자인 수석은 그때도 이안 칼럼(Ian Callum)이었는데, 재규어 선행디자인 팀장 줄리앙 톰슨(Julian Thomson)은 “당신은 우리가 6년 만에 뽑는 디자이너다. 우리는 지금 무척 흥분돼 있다”며 굉장히 좋아했습니다(웃음). 런던에 스튜디오가 있는 닛산도 고려했었는데, 그럴 바에는 GM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벤틀리의 경우는, 당시 아우디 디자인 디렉터 슈테판 질레프(Stefan Sielaff, 現 아우디 디자인 총괄)가 2023 엘도라도를 보고 와 “널 아우디에 꼭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제가 “미안하지만 영국에 더머물고 싶다”고 하니 “아우디폭스바겐 그룹의 벤틀리가 영국에 있으니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고 다음날 벤틀리 직원이 찾아오면서 입사 일을 잡게 됐습니다.
Q. 벤틀리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까?
A. 벤틀리에 근무하면서 대단히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우선 벤틀리는 흔히 겪어볼 수 없는 럭셔리 브랜드이고, 제가 갔을 때 저는 벤틀리 외장디자인에서 일하는 최초의 한국인이었습니다. ‘이런 럭셔리브랜드에서 일할 수 있는 날이 내 인생에 또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벤틀리에는 차종이 많지 않고 디자이너도 적습니다. 익스테리어 10명, 인테리어 10명, 총 20명이 전부입니다. 때문에 벤틀리의 차는 누구 한 사람의 디자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가족같이 모두가 함께 일하고 디자인하는 분위기입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벤틀리는 수제차이고, 수제차란 프레스티지가 드러나도록 하는 디자인 방법을 많이 배웠다는 것입니다.
Q. 수제차(럭셔리) 디자인이 어떤 것인지 몇 가지 예를 들려주시면요.
A. 일반적인 양산차들은 프론트에서 범퍼가 분리돼 있습니다. ‘쿵’ 받으면 앞 범퍼를 갈아버리면 됩니다. 그런데 수제차는 그렇지 않습니다. 벤틀리의 범퍼 파팅, 피스 자체는 개념적으로 다릅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현대자동차 등은 기본적으로 프레스로 찍어내는 차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마이너스 곡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벤틀리의 차체를 보면 대단히 날카롭거나 이해가 잘 가지 않는 형태의 곡선으로 꺾여 들어가는 부분까지 하나의 판으로 돼 있습니다.
슈퍼 포밍 방식을 이용한 기술입니다. 또 한 가지는, 물론 이번 벤테이가가 나오면서 달라졌지만 리어 램프를 들 수 있습니다. 벤틀리나 롤스로이스의 리어 램프를 보면 거의 주먹 크기입니다. 미니도 그렇고요. 이는 그들이 ‘트렁크는 트렁크이고 램프는 그 곳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붕에서도 양산차들은 필러가 넘어오는 부분과 지붕 사이에 특정 몰딩이 있는데 벤틀리나 재규어는 이것이 없습니다. 알루미늄 용접을 한 것을 장인(할아버지)들이 마스크를 쓰고 일일이 그라인더로 갈아버립니다. 이런것이 바로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제네시스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와 2억~3억 원 이상의 벤틀리, 롤스로이스, 페라리 등 럭셔리 브랜드 간의 차이입니다.
Q. 이제 현대자동차로 갈 차례네요. 벤틀리에 오래 계시지 않았죠? 그리고 요즘 현대자동차에는 외국 디자이너들도 많고 벤틀리 사람이 많은데, 교수님이 그렇게 하자고 한 것 아닌가요?
A. 아, 그건 아닙니다. 벤틀리에서 한참 일하던 2009년에 한국에서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이면 현대자동차일 수 밖에 없는데 끝까지 밝힐 수 없다고 하더군요(웃음). 결국 프랑크푸르트에서 현대자동차의 디자인센터장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차종이 한정돼 있고 프로젝트 기간이 긴 벤틀리에 있으면 거기서 뭘 할지가 뻔합니다. 그때 한참하고 있던 것이 지금의 벤테이가 초기 모델, 신형 컨티넨탈 GT와 플라잉스퍼의 일부분, 앞으로 나올 또 다른 스포츠카 등이었습니다.
Q. 현대에서 처음하신 것이 제네시스 DH죠?
A. 네,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온 EQ900의 초기 모델입니다. 디자인센터의 중대형차를 주로 디자인하는 팀에서 해당 차종의 외장디자인 그룹장을 맡았습니다. 제 조건도 그랬고, 현대에서도 “외국회사에 계속 있으면 디자이너로서 있는 것 아니냐. 한국에 오면 그룹장을 해서 팀을 이끌어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해외에 있던 사람들이 바로 임원으로 오고 있지만, 저 이전에는 해외에서 일하다가 현대차에 책임급으로 온 케이스가 없었습니다.
Q. 어떻게 현대자동차를 나와 UNIST에 오게 된 것인가요?
A. 원래 현대자동차에서 많은 경력을 쌓은 후 후학양성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입사원 선발, 디자인 교육, 연구장학생 강의 등의 대외활동을 여러 차례 맡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와 현대엔지비가 하는 연구장학생 제도가 있는데 여기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의 아웃풋이 확 바뀌어 나오는 것을 보고 ‘아 이것이 가르치는 보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갖춰진 사람들은 뭔가가 융화되고 새로운 것이 나오기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들은 달랐습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요즘 학교들은 영어로만 강의를 하고 몇 군데 강의를 했었는데, 대부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어느 정도 레벨이 돼야만 ‘섬에서 살다 죽는 일은 없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무제 총장(前)께서 신문 등을 통해 보시고서는 저와 같은 자동차 디자이너를 꼭 디자인과로 데리고 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any question?”하고 물으니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40분 간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제가 다른 학교를 갔다면 여러 글로벌 디자인어워드 수상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굉장히 잘합니다.
뭘 해도, 하나만 알려줘도 열을 해냅니다.
Q. 그래서 IF 디자인이나 스파크 등 국제 디자인 어워드를 휩쓸고 계시군요? HUD부터 좀 소개해주시겠습니까?
A. 이 제품은 IF 디자인 어워드 본상을 수상한 애프터마켓용 헤드업 디스플레이 ‘아프로뷰 S2’입니다. HLB라는 회사가 신제품 개발을 의뢰해 진행한 산학 프로젝트입니다. 기존 제품은 설계자 관점에서 만들어 도시락 같이 생겼었습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만 제품 디자인이란 것은 그것이 놓이는 환경, UX란 사용자 경험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합니다. 때문에 어느 대시보드 위에 올려도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표면에 경사를 주고 빗살무늬를 줘 실제 치수와는 다르게 슬림하고 낮게 보이게 하는 한편, 냉각 능력도 더 높여 예전보다 팬을 작게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최근에는 스파크 국제 디자인 어워드에서 파이널리스트 2관왕을 받은 항공기 프로펠러를 단 수상보트 씨캣(Sea Cat)과 우산 머리의 방향이 바람 방향에 따라 바뀌는 ‘고개 숙이는 우산(Tilting Umbrella)’이 있습니다. 씨캣은 물속에 스크류를 둔 보트가 아닌 바람의 힘으로 가는 안전한 2인승 보트인데, 바퀴가 달려 별도의 견인 트레일러 없이도 끌고 갈 수 있는 획기적인 레저 보트입니다. 현재 제품화 단계에 있습니다.
Q. 요즘 미래 이동수단이 큰 이슈가 되고 있는데 교수님도 이에 관여하고 계시죠?
A. 하이퍼루프(Hyperloop)가 전 세계적 이슈이고, UNIST도 초고속 교통 시스템인 하이퍼루프의 핵심 요소기술 개발에 나섰습니다. 상용화를 위한 것입니다. 하이퍼루프는 진공상태에 가까운 아진공의 튜브내에서 캡슐 형태의 폿(pod)이 자기부상으로 떠서 사람이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것입니다. 진공이기 때문에 마찰, 추력저항이 거의 없어 1,200 km/h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일종의 고속열차 시스템입니다.
2013년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이제 하이퍼루프를 할 때이고 기술은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이슈화됐지만, 사실 콘셉트는 1930년대에 이미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모두가 하이퍼루프에 달려든 것은 머스크의 설명처럼 철도 등 다른 운송수단에 비해 건설 등 비용 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본래 자기부상으로 하면 비용이 많이 드는데, 머스크는 폿을 폿 아래 두 곳에서 에어 베어링으로 띄우겠다고 했습니다.
열 역학상 무게가 나가는 폿을 띄우려면 어마어마한 공기를 뿜는 컴프레서가 필요하고 또 발생하는 열을 식히려면 수냉방식을 도입해야 하기 때문에 UNIST는 자기력을 이용해 띄우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비용은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Q. 그럼 여기서 교수님의 디자인은 어디에 반영되나요?
A. 저는 폿과 터미널 디자인을 맡고 있습니다. 하이퍼루프는 퍼스트클래스라면 4명, 일반 좌석이면 8명 정도 타는 폿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제안한 경제성의 근거 중에는 이 폿 하나는 작지만 30초마다 보낼 수 있어 단위 시간 당 수송능력이 KTX를 능가한다는 점이 있는데, 이렇다 보면 터미널의 수용력과 디자인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현재 철도기술연구원 등이 스케일 모델로 시작해 테스트를 마치는 등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관련 플레이어들이 하이퍼루프의 가능성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검토 중입니다. KTX의 이용률이 80% 이상으로 거의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KTX 다음 버전으로 자기부상을 검토하다가 하이퍼루프의 가능성을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하이퍼루프의 타당성이 검증된다면 차세대 KTX는 바로 하이퍼루프로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Q. 특이한 접이형 전기차도 좀 소개해 주시지요.
A.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모빌리티입니다. 저는 전기차가 상용화되면 될수록 미래의 도로는 점점 더 좁아지고 도시 인프라가 다시 보행자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중교통의 이용은 늘어날 것인 반면, 개인 운송수단의 이용은 이를 주차해야 하는 장소와 일하고, 쉬는 사무실, 가정 간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면서 불편해질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이 남은 거리를 이동하는 세그웨이, 나인봇, 전기바이크와 같은 마이크로 모빌리티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포드는 내년부터 마이크로 모빌리티를 착탈할 수 있는 장치를 모든 차에 기본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파악한 이런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단점 중 하나는 교통약자가 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누구나가 날씨에 관계없이 편안하게 탈 수 있는, 서서 또는 앉아서도 탈 수 있는 전기차를 디자인하게 됐습니다. 기존에 나온 접이식 전기차의 디자인은 단순히 주차공간을 줄이기 위해 작게 만든, 철저하게 기술 관점에서만 본 것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하는 것은 사용자 관점과 경험을 통해 제안하는 모빌리티입니다.
Q. 전기차 관련 다른 프로젝트도 있나요?
A. 새로운 개념의 마이크로 모빌리티를 한 기업과 함께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기존의 전기자전거는 페달을 밟는 인간의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자전거와 는 상당히 다른 성격의 운송수단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종의 오토바이라고 볼 수 있지요. 언덕을 올라갈 때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다리 힘이 부족한 사람도 탈 수 있어서 자전거보다 사용자의 폭이 훨씬 넓어 자동차와 보행자, 대중교통 수단을 이어주는 마이크로모빌리티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2륜차이기 때문에 균형 유지와 조향을 수행하는 역량이 충분한 신체 건강한 사람만쓸 수 있고, 노약자 및 장애인, 치마를 입은 여성이 사용하기 어렵고 날씨에 따른 제약도 많이 받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전기자전거를 넘어 휴대가 가능할 정도로 간단하면서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모빌리티를 개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빠르면 내년 후반기에 혁신적인 모빌리티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끝으로, 학교에 와서 보게 된 자동차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A. 기업 안에 있을 때는 자동차의 스타일링에 치중하다 보니까 잘 몰랐는데, 학교에 와서 크게 보는 연구자가 되면서 모빌리티와 관련된 미래의 변화가 어마어마한 크기로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이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저는 올해 제네바모터쇼에서 대형 완성차 브랜드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100개가 넘는 신생 전기차 브랜드들에 놀랐습니다. 완성차들은 애써 자부하고 있지만 전기차로 바뀔수록 그들의 우선권은 사라질 것입니다.
드라이브트레인과 제어방식, 생산방식 등 많은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미래의 자동차 공장 문을 열면 프레스 기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천 대의 3D프린터가 있을 것입니다. 충돌하지 않는 자율주행차의 시대가 오면 지금의 충돌 예방, 충돌 후 상해 경감을 위한 온갖 기술, 컴포넌트들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차는 매우 가벼워지게 될 것이고 1톤도 안 되는 차에 따라 서스펜션과 같은 부분들이 모두 변하게 될 것입니다. 기름을 꽉 채울 때 12만원, 3분이 걸렸던 차가 7,000원, 충전시간 30분으로 되는 전기차가 되면서 주유소(충전)들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사라질 것입니다. 사고가 없으니 유지보수, 정비 서비스가 줄고, 보험의 개념도 바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잘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자기 영역의 배리어 때문에 다른 영역의 큰 변화를 과소평가한다거나 아예 관련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모빌리티와 미래 사회를 그려보기 위해 단서들을 엮어볼수록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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