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도쿄서 개최된 Automotive World 2017 전시회의 컨퍼런스 기조강연에서 토요타의 이세 기요타카 전무는 자율주행에 대한 토요타의 해석, 접근방식을 설명했다. 토요타답게 강연 제목은 “자동차가 사랑받는 제품으로 남으려면…”이었다. 이세 전무의 강연을 정리했다.
토요타에 입사한 후 기술부에 소속됐고 2007년에 상무이사가 됐다. 그동안 렉서스 개발을 담당했었고 지금은 기술부문장으로서 자율주행,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번 강연의 제목은 ‘자동차가 사랑(愛)이란 수식어가 붙는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다. 본래 Automotive World 주최 측에서는 자율주행, 인공지능(AI)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런데 자율주행, AI에 대한 정보는 넘쳐난다. 따라서 물론 이를 곁들일 것이지만 이보다는 좀 더 토요타스러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자동차에 대해 말할 때 ‘사랑스러운 차(愛車)’라고 ‘愛’가 붙을 수 있는 이유,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추억을 만드는 차
35년 전 내 차는 토요타 스프린터 트레노였다. 1,600 cc, 수동 트랜스미션 차량이었다. 당시엔 포그 램프를 다는 것이 유행이어서 그렇게 했었는데 돈이 좀 부족해 하나만 사서 직접 달았었다.
세상에는 ‘愛’를 붙일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애견, 애사, 애처와 같은 것이 있다. 그러면 왜 자동차에는 愛를 붙일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해보면 자동차는 함께 고락을 나눴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으며, 때로는 뜻밖의 기쁨을 주기도 하는 등 사람과 유대감을 갖고 시간을 보내고 사랑도 싹트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하면 차는 단순한 기능적 제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토요타는 연말 코롤라(Corola)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우리 직원은 물론 여러 차주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모아봤다. 예를 들어 한 사원은 아버지를 따라 이부키야마 산에 드라이브를 간 가족사진을 보면서 뒷좌석의 누나와 다퉈 부모님께 꾸지람을 들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다른 한 사원은 신혼 때 집 앞에서 코롤라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냈다. 아내는 이미 고인이 됐지만 이 차를 타고 아내와 테니스를 치러 다니고 스키장을 가는 등 젊은 날의 즐거운 때를 그렸다. 이처럼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 이를 거듭하면서 생겨난 추억을 통해 차는 단순한 공업제품에서 愛를 붙일 수 있는 것이 된 것 같다.
고기술·자동화의 문제
사람과 자동차 간 관계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1970년대 자동차는 값비싼 동경의 제품이었다. 옛날 자동차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기능이나 성능 측면에서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엔진의 소리, 액셀러레이터의 반응을 통해 차의 상태를 파악하고 운전을 했다. 또 어떤 면에서는 손이 많이 가는 존재였다. 그렇지만 이런 차를 잘 운전함으로써 사람과 차는 서로 소통하는 즐거운 관계를 구축했다. 여기에 추억이 어우러지면서 차는 타면 탈수록 애착이 가는 존재가 됐다.
동경의 제품이었던 시절이 지나고 보급화되면서 차는 사람과 매우 가까운 존재가 됐다. 일본의 자동차 보급대수 추이를 보면 1960년대부터 급속히 증가해 2000년대에 이르러 5,800만 대 수준이 됐다. 토요타의 경우엔 국내 보급의 증가와 함께 생산대수가 서서히 늘어나다가 해외수요의 급격한 확대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7년까지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생산이 급격히 늘었다.
이와 같은 보급기를 맞아 토요타는 보다 나은 성능, 기능을 빠르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성능과 기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됐고 고장은 줄어들었으며 자동화는 곳곳에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사람은 차의 상태를 살피거나 이것저것 조작하는 것이 줄었다. 예를 들어 지금은 버튼만 누르면 시동이 걸린다. 과거의 카브레터 엔진에서는 겨울철에 시동을 걸 때 초크 밸브를 당겨 액셀을 조절하면서 시동을 걸었던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저렴한 가격, 기능적으로 손이 덜 가는 것을 추구하고, 차가 오래되면 바꾸게 하는 것만 추구한다면 차는 단순 소비재로 변할 것이다. 토요타는 이처럼 차가 단순 소비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愛를 위한 3가지 방법
그러면 지속적으로 愛를 붙일 수 있고 더욱 사랑받는 차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어떤 차를 개발해야할까. 지금까지처럼 편리함을 추구하는 동안에 사람과 차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 방법은 무엇일까. 토요타는 이를 위해 현재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대한 토요타의 기본은 ‘고객들이 더 갖고 싶고 타고 싶은 차를 만드는 것’이다. 토요타 뉴 글로벌 아키텍처(TNGA)가 바로 그런 것이다. 4세대로 돌아온 신형 프리어스를 시작으로 완전히 새로운 제품 개발 및 생산 체계를 도입했다. 파워트레인 플랫폼을 쇄신하고 일체적으로 개발하며 차의 기본 성능과 상품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면서 차를 갖는 즐거움과 설레임을 저절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차를 갖는 즐거움, 달리는 즐거움, 대화하는 즐거움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토요타 가주 레이싱(GAZOO Racing)’이란 것이 있다. 모터 스포츠 레이스에 출전하고 이에 대한 고객 관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직접 고객이 레슨을 받고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차를 사랑하는 팬을 모으고 즐기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참여형 모터스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사람과 차의 새로운 관계 구축을 지향하는 노력이다. 이 새로운 관계 구축은 자율주행의 일환이기도 하다.
자율주행과 새로운 관계
토요타의 한 프로모 영상은 연령, 고독 때문에 운전을 주저했던 노신사에게 어느 날 아들 부부가 자율주행차를 선물하면서 달라지는 차와 노신사의 관계,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담고 있다. 스티어링 휠을 다시 잡은 그의 표정을 보면 운전하는 것을 정말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노신사는 이동하는 자유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자극을 받아 젊었을 때처럼 다시 핸들을 잡는다. 또 마지막 장면에서는 낚시를 하러 간다.
요즘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는 큰 사회적 이슈인데 자율주행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동하고 싶다는 의욕을 지원함으로써 이동 연령을 늘릴 것이다. 다수의 연구결과처럼 운전은 치매예방에도 일조할 것이다.
노신사는 스스로 휠을 잡고 운전을 즐기고 있지만, 실은 자율주행차가 뒤에서 자연스럽게 운전자를 지원하면서 안전운전을 이끈다. 이것이 토요타가 생각하는 자율주행의 모습이다.
자율주행을 차가 자동으로 A에서 B로 이동시켜 주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점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토요타가 생각하는 자율주행과 다르다. 토요타는 2015년 10월 자율주행 콘셉트인 ‘모빌리티 팀 메이트(Mobility Teammate)라는 콘셉트를 발표했다. 사람과 차가 같은 목적지를 지향하고, 마음이 통해 친구와 같은 관계를 가지면서, 어떤 때는 지켜봐주고, 또 어떤 때는 도와주는 것이다.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3가지의 지능화에 있다. 첫 번째는 운전의 지능화다. 자기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안전하게 주행하면서 요구하는 최적의 루트를 찾는 기술이다. 그 다음의 지능화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도로교통 정보 등 교통 관련 대용량 정보를 통신을 통해 주고 받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사람과 자동차 간 협조의 지능화다. 운전, 교통의 지능화는 모든 카 메이커는 물론 미국, 유럽, 일본 등 국가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사람과 자동차 간 협조의 지능화는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돕고 성장하기 위한 기술이다. 차가 운전자에게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운전자는 상황에 따라 운전을 하고 싶은 날, 그렇지 않은 날이 있고 이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가디안 모드(Guardian Mode)’는 차가 뒤에서 운전자를 지원하는 것이다. 운전자가 직접 휠을 잡고 운전 본연의 기쁨을 누리는 동안 차는 사람과 자동차 간 협조 기술을 통해 더 나은 드라이빙을 지원한다. 운전대행 모드는 자율주행 기술만으로 이뤄진다.
운전의 즐거움이란
토요타는 인간 중심의 제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휴먼 연구에 중점을 둬 왔다. 의학, 인지심리, 뇌신경 과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 일류의 연구기관들과 일하고 있다. 토요타는 1990년대부터 자율주행 연구를 시작했는데 여기서 휴먼에 대한 연구와 지식이 필요했다.
그러면 휴먼 연구의 관점에서 운전의 기쁨이란 무엇일까?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운전을 배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운전을 이해하게 되면 사람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교통환경, 차량의 동작에 맞춰 스스로 스티어링 휠, 액셀러레이터,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해 차를 적절히 조작하게 된다. 익숙해지면 차를 몸의 일부로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운전하게 된다. 이를 ‘신체성의 확장’이라고 부른다. 즉, 인간의 뇌 속에 자동차가 반영된 내부 모델이 형성되고 사람과 자동차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인식된다.
다양한 길을 달린다는 것은 다중 환경에 대한 내부 모델을 획득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길과 대화하는 것이다. 운전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다가 보면 도구를 활용하는 단계에 접어든다. 뇌 내부 모델을 통해 설명하면, 예측 정확도가 올라가고 자동차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이에 필요한 조작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러 주행 상황에서 자신의 예측과 실제 감각 정보가 일치하게 되면서 운전자는 차를 완전히 컨트롤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운전의 주체감’으로서 운전자가 차와 대화하는 것이고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 협조 시스템
자율주행에서 사람과 자동차가 협조하는 가디안 모드가 구현되게 되면 양자 간에는 어떤 관계가 형성될까?
자율주행 시스템은 운전자의 운전을 평가, 예측하는 딥 머신러닝을 할 것이고 그결과 운전자의 스타일에 맞춘 지원을 할 것이다. 또 HMI를 경유해 운전자의 팀 메이트가 될 것이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안전 시스템이 보다 주도적으로 지원을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운전자는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고 다양한 혜택을 받게 된다.
토요타의 연구사례를 보면, AI를 활용한 협조 시스템이란 운전자의 운전을 기계가 학습을 하고, 차량, 환경, 운전자 상태, 추측과 추정을 통해 운전자의 목표를 결정하고 이에 맞는 모델을 획득한다. 이 모델의 궤적, 속도를 산출해 운전자의 기대에 맞는 주행을 보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숙련된 운전자는 잠재적인 위험 속에서도 부드럽고 빠르게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지나친 지원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므로 시스템은 적극적인 지원을 아낀다.
AI를 활용한 협조 시스템의 목적은 직감으로 자동차와 소통할 수 있는 즐거움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것을 뇌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하면, 시스템이 내부 모델 형성을 지원해 모든 사람이 운전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시스템 측이 운전자의 운전을 머신러닝하는 한편, 운전자에게 의욕이 있다면 운전자의 운전학습을 촉진한다. 이것이 잘 되게 되면 내부 모델의 정확도가 올라가고 직감적인 운전이 가능해진다.
시스템이 사람을 지원하고 사람은 자기 능력에 대해 적절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과제를 갖게 되고, 이에 열중하고 성장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한 걸음 한 걸음 걷게 되면서 자기 운전 스타일, 운전 능력에 맞춰진 자기만의 愛차가 되가는 것이다. AI를 활용한 협조 시스템은 고령운전자 지원에도 도움이 된다. 운전기술을 상실한 고령자에게 적절한 지원을 통해 운전의 즐거움을 계속할 수 있게 한다.
운전자가 운전에 관여하지 않는 운전대행 모드는 교통사고를 줄이고, 정체를 완화 해소하고, 새로운 이동공간, 시간가치 창조와 같은 다양한 이점을 줄 것이다. 반면 운전자가 운전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 능력이 저하되거나 시스템 의존도가 높아지는 등 자동차에 대한 애착에는 부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싱귤래리티(Singularity)는 AI가 인류의 지능을 초월해 스스로 진화해 가는 기점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2040년이면 AI가 인간을 초월할 것이란 말도 있다. 그러나 동경대학교의 나카지마 교수는 “본래 싱귤래리티는 인류의 진화곡선이 무한대가 되는 것으로, 인간이 AI와 하나가 돼 더 대단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라며 “주체는 AI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했다.
토요타의 자율주행도 이와 같다.
동료가 되는 HMI
지능형 기술, 기능이 고도화되고 사람과 자동차 융합이 더 진화하기 위해서는 고차원적인 HMI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토요타가 판매하는 ‘키로보 미니(KIROBO mini)’는 사람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운전자를 지원하기 위한 파트너다. 사물과 사람 간 새로운 소통의 도전인 것이다.
토요타는 사람과 자동차 간 관계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개발체제를 구축했다. 대표적인 것이 차량 지능화를 위한 토요타 리서치 인스티튜드(TRI)와 커넥티드 인텔리전스를 위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토요타 커넥티드 설립이다. 토요타 커넥티드는 빅데이터 센터를 운영해 데이터의 집약, 분석, 활용 촉진을 위한 연구개발을 한다. TRI는 토요타의 기존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구애받지 않고 신속히 의사결정하기 위해 지난해 미국에 설립됐다. 5년 간 10억 달러를 출자해 운전자의 지능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곳의 CEO인 길 플랫 박사의 신조는 ‘기술이 운전의 주역인 운전자의 의지를 억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토요타는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로서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이같은 콘셉트 카를 이번 CES 2017에 출품했다. 그리고 수년 내에 그 일부 기능들을 공도에서 테스트하고 실현할 것이다.
자율주행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통신기술을 이용한 메이저 혁신이다. 이를 통해 사람과 자동차 간 관계, 보행자 등 다른 사용자들과의 관계가 변할 것이다. 교통사고, 고령화와 이동성, 도시문제에 도전할 것이다. 토요타는 그룹의 총력을 결집해 새로운 가치, 새로운 관계, 언제까지나 사랑받는 자동차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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