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적인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기 위한 이더넷(Ethernet)의 긴 여정은 시작됐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지도나 교통 업데이트와 같은 정보를 제공받거나 또는 단순히 언제나 연결되어 있는 세계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는 자동차와 인터넷 간 네트워킹을 위한 신기술에 목말라 있다.
인터넷과 소프트웨어가 PC의 전유물이었던 때가 있었다. 인터넷 연결은 이제 더 이상 PC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이 확산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인 IoT는 1990년대 중반에 주로 물류나 보안 분야에서 활용되다가 오늘날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를 이끌고 있다. IoT에 의해 자동차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또 다른 차원의 모빌리티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인터넷에 연결되는 자동차
2010년부터 기기들이 네트워크에 본격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자동차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자동차 업계에도 IoT의 거센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커넥티드카(Conneted Car)가 등장하면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IoT를 통한 새로운 가치창출을 모색하고 있다.
2016년 4월, 현대자동차는 미래 커넥티드카 개발을 위해 시스코(cisco)와의 협업을 발표했다. 현대자동차가 구상하는 커넥티드카 콘셉트인 ‘초연결 지능형 자동차’는 정보통신 기술과 차량을 융합시키는 차원을 넘어 자동차 자체가 ‘달리는 고성능 컴퓨터’, 즉 자동차 내부는 물론 자동차와 자동차, 집, 사무실, 나아가 도시까지 하나로 연결하는 개념이다. BMW코리아는 최근 세계최초로 5G 무선통신이 적용된 커넥티드카를 선보였다.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생경할 수 있다. 그만큼 자동차의 경우는 더디 IT 생태계가 접목되는 산업이었다.
커넥티드카의 등장은 완성차 중심의 수직적 가치사슬이 플랫폼 중심의 개방적 생태계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과거에 자동차 제조사들은 점대점(point-to-point) 통신을 사용해 차량 내 전자장치(ECU)를 연결했다. 차량 외부와의 통신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커넥티드카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차는 ‘CAN’으로 통한다
자동차에서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통신 프로토콜은 CAN(Controller Area Network)이다. CAN은 보쉬가 1983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1991년부터 시리즈 자동차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모든 자동차 제조사가 이 프로토콜을 사용한다.
지능화되어 가고 있는 자동차에는 수많은 전자 시스템이 탑재된다. 카오디오, 내비게이션 시스템에서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 등의 운전자 지원 시스템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자동차 전자 시스템은 CAN 통신 프로토콜을 통해 각 시스템의 센서 정보나 연산 결과를 공유한다. 예를 들어 적응형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ACC)의 경우에 CAN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자.
ACC는 ACC 통합 제어 장치, 엔진 제어 장치, 브레이크 제어 장치로 구성된다. 각 장치에는 여러 개의 센서가 탑재돼 있다. 크루즈 컨트롤에서 대표적인 센서는 앞차와의 거리를 측정하는 레이더 센서이다. 엔진 제어는 엔진 회전수와 액셀 개도, 브레이크 제어는 각 타이어의 회전수와 브레이크의 조작량 등이 센서에 의해 측정된다. 센서 정보는 CAN을 통해 각 장치 간에 공유된다.
ACC 통합 제어 장치는 CAN을 통해 송신되는 정보로부터 최적의 차량 속도, 차간 거리 등을 계산하고, 그것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엔진 출력과 브레이크 작동량을 계산한다. 그리고 다시 CAN을 통해 계산 결과를 지령 값으로 엔진 제어 장치와 브레이크 제어 장치에 전송한다.
CAN의 등장으로 단독으로 존재했던 제어 시스템의 연계가 가능해지고 새로운 기능을 개발할 수 있었다. 자동차 내부만의 세계에서 본다면, 이미 ‘커넥티드’ 관계가 CAN을 중심으로 구축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 폐쇄적인 자동차
자동차 네트워크의 폐쇄성은 기술정보의 유출 방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측면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기술은 각 자동차 제조사가 반드시 특허를 취득한 후 그 기술을 양산차에 탑재한다. 그러나 특허는 기술의 개요에 관한 기재는 있어도 상세한 정보는 없다. 특허기술은 어디까지나 특허이며, 그것을 양산차에 적용하려면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실제로 CAN은 그 노하우를 알아내기 위한 좋은 통로가 될 수 있다. 만약에 CAN에서 공유되는 정보를 다른 제조사가 해독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순식간에 리버스 엔지니어링의 대상이 되어 노하우가 유출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 제조사는 CAN 신호의 사양(신호 ID, 비트 할당)은 공개하지 않고, 보안 순위가 높은 정보로 관리하고 있다. 다만 OBD라는 차량 고장 진단에 사용되는 시스템에 한해서는 오류 및 고장 정보에 액세스 할 수 있다. 또한 일부 차량 정보(차량 속도 신호 등)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CAN에 포함된 전체 정보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사실상 CAN은 극단적으로 액세스가 제한된 네트워크이다.
차량용 이더넷
자동차는 이미 많은 부분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자동차 내부의 기능이 더 지능적이고 복잡해짐에 따라 네트워킹 분야의 개선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는 추세다. ECU의 증가로 인해 방대한 정보가 여전히 CAN을 통해 공유되고 있음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하지만 CAN을 통한 정보 전달은 이미 한계를 맞고 있다. 이 때문에 보쉬는 통신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 이더넷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인터넷이 이더넷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더넷을 자동차에 전용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존의 프로토콜을 사용하기 때문에 통신 속도의 압도적인 향상과 더불어 인터넷에 쉽게 액세스 할 수 있다. “커넥티드카”에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더넷이 개발된 이래 40여 년이 지난 2013년, 차량용 이더넷이 탑재된 BMW X5가 발표됐다. 이더넷의 도입으로 예상되는 장점은 ECU의 원격 업데이트를 들 수 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리콜이 발생하면, 운전자는 차를 서비스센터로 몰고 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 할 수 있으므로 운전자는 소프트웨어 송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지금까지 패쇄적이었던 차량 네트워크가 인터넷과 연결됨으로써 지금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놀라운 기능이 실현된다. 그럼 이더넷 도입에 따른 걸림돌은 없을까?
무엇보다도 ‘보안의 확보’가 관건이다. 보안은 이더넷 도입을 주창하는 보쉬도 깊이 공감하는 문제이다. 보안은 악의적인 해킹으로부터 자동차를 보호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가 해킹되었을 경우, 주행 중에 자동차가 갑자기 가속이 되거나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사이버 테러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운전 중 차량 해킹은 인명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므로, 자동차 제조사뿐 아니라 IT 업계가 함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는 자동차 제조사가 인터넷 보안 회사와 긴밀한 협력 하에 협업해야할 것이다.
장점과 기회
오랫동안 외부에 닫혀 있던 자동차 통신 네트워크이지만, 앞으론 자율주행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자동차는 눈부신 속도로 네트워크화가 진행될 것이다. 자동차와 자동차, 자동차와 도로, 자동차와 집 혹은 건물 등, 도시 전체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시대의 도래도 멀지 않았다. 하지만 해킹이나 악성 사이버 테러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측면도 있다. 자동차의 IoT화는 자동차 기술의 패러다임 시프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PC나 휴대폰과 달리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충분한 보안 대책과 세심한 운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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