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크루즈
몇 년 전 미국출장을 갔다가 라스베가스에서 로스엔젤레스를 우회해 샌프란시스코까지 10시간 넘게 운전해 간 적 있었다. 사막을 관통하게 되었는데, 그 광경은 마치 지구의 표면을 그대로 닦아 놓은 듯한 도로와 지평선의 연속이었다.
당시 차에는 ‘cruise’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운전을 하다가 어느 속도에서 cruise를 세팅하면 엑셀과 브레이크를 조작하지 않아도 차가 정해놓은 속도로 운행하는 기능이었다.
Cruise Control은 이처럼 프리웨이와 같은 고속도로에서 운행을 할 때 운전자의 과속운행을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단지 휠에 대한 조향에만 신경을 쓸 수 있도록 해 매우 편안한 운전을 돕는다. 물론 운전자가 전방의 차를 발견하는 등의 이유로 속도를 줄이려 브레이크나 엑셀을 밟는 경우 cruise는 해제되고 매뉴얼 기능으로 복귀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땅이 넓다 보니 이같은 기능이 필요하겠지만, 땅이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쓰임새가 없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의 전환을 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cruise’ 기능이 넓고 차량이 별로 없는 도로에서만 필요한 것일까? 차가 전방의 차량이나 장애물을 감지해 스스로 알아서 속도를 줄여주고, 다시 전방 운전환경이 호전되면 일정 속도까지 높여 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자율주행으로…
차들이 꼬리를 물고 가는 심각한 교통체증의 출퇴근 시간에 차가 알아서 전방 차량과의 거리를 감지해 Stop & Go를 반복해준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심지어 차량이 운행을 하다가 차선을 바꾸는 것도 양 측방 뒤의 진행 차량과의 거리와 속도를 고려해 자동으로 할 수 있다면 어떻겠는가.
사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자율주행을 하는 무인자동차일 것이다. 자율주행의 실현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자율주행보다 낮은 눈높이에서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만약 전방 차량 또는 장애물이 감지되면 이를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건 어떠할까. 특히 안개, 비 등 기상 환경의 변화나 야간에도 이같은 기능이 가능하다면 운전자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차선을 바꾸고자 할 때, 차가 양 측방의 진행 차량을 감지해서 운전자에게 알려주고, 후진할 때 후방 물체와의 위치나 거리를 알려줄 수도 있다. 이같은 상상들은 이미 실현되어 차량에 탑재돼 상용화된 것도 있고, 좀더 나은 기능을 위해 개발이 진행 중인 것들도 있다.
레이더로 실현
최근 조사에 의하면 자동차 사고의 대부분은 운전자의 판단 착오(16%)와 사고인자 발견 지연(50%)이라는 통계가 있다. 즉, ‘자율주행’이라는 미래형 자동차의 실현에 앞서, ‘능동형 안전(Active Safety)’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하다. 이는 운전자에게 주위 상황을 쉽게 인지하도록 해 교통사고로 인한 인적, 물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핵심기술이다.
보다 안전한 자동차 실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행 환경을 인식하는 기술이다. 인간의 감각을 대신하는 센서가 차에 장착돼 주행 중 주위 환경을 인식하고 운전자의 안전 운행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림 1은 지능형 자동차를 위해 개발되어 장착될 다양한 센서들을 보여주고 있다.
능동안전 실현을 위해 외부 환경을 인식하는데 사용하는 센서로는 카메라, LIDAR, 레이더, 초음파 등이 있다. LIDAR 센서는 전방 물체 검지를 위해 가장 상용화가 잘 되어진 센서로 그 정확성이 매우 높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습기가 많거나 비가 오면 성능이 떨어지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초음파는 현재 차량의 후방감지 센서로 활용되고 있지만 검지 거리가 짧아 폭넓은 응용에는 힘들 전망이다. 카메라의 경우엔 차선인식, 전방 물체 검지, 후방 물체 검지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으나 시계가 확보되지 않는 밤, 안개 낀 날 등에는 효과적이지 못한 단점이 있다.
사실 운전자가 안전 시스템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날씨가 맑은 낮이 아니라 야간 또는 비가 오거나 안개가 심한 상황 등 전방 관찰이 힘들 때다. 레이더는 밤낮, 날씨, 습도 등의 영향을 받지 않아 핵심 센서 기술로 부각되고 있다. 실제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차량용 레이더가 상용화되고 있다. 특히 밀리미터파(Millimeter-wave)를 이용한 차량용 전파 레이더는 응용의 특성상 여러 가지 기상 조건에서도 비교적 오류가 적고 사용이 용이하다는 특성을 갖고 있어 현재 가장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기술과 코스트
그림 2는 차량용 레이더의 개념도를 나타내고 있다. 레이더를 탑재한 차량이 전파를 발사하면 전방 혹은 측후방 물체로부터 반사되어진 신호를 수신해 그 물체와의 거리와 속도를 구한다. 현재 해외 유수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미 차량용 77 GHz 대역의 레이더 장착을 제공하고 있다. 그 응용은 단순한 경고 수준을 넘어 차량 제어까지 이르고 있다.
대부분의 차량용 레이더가 FMCW 변조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FMCW 방식이 다른 변조 방식에 비해 제작이 비교적 용이하고 가까운 거리에서도 거리 및 속도 분해능이 높기 때문이다.
차량용 레이더 기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RF 설계기술이고 또 하나는 신호처리 기술이다. RF 설계기술에는 송수신단 설계기술, 안테나 설계기술, VCO 설계기술, 관련 부품 및 칩 설계기술 등이 있다. 신호처리 기술에는 고해상도 거리 및 속도 추출기술, 다중 타깃 검지기술, 다중 레이더 간섭 제거기술, 멀티패스에 의한 클러터 제거기술, RF 비선형 제거기술 등이 있다.
차량용 레이더의 성능은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실시간성과 신뢰성이 매우 중요시 된다. 즉 아무리 장애물을 검지하는 신뢰성이 뛰어나도 실시간성이 확보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고, 실시간성이 뛰어나더라도 장애 물체를 검지할 때 에러가 자주 발생한다면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가격도 고려해야 한다. 2,000만 원하는 차량에 레이더 가격이 200만 원 정도 한다면 누가 구입하겠냐는 것이다.
RF 모듈 성능이 대체로 가격과 비례한다고 본다면, 저가형 레이더를 제작할 경우 RF 성능의 부족함을 신호처리에서 채워 줄 수 밖에 없다. 신호처리부 역시 최고 사양의 DSP 칩을 사용하는 경우 신뢰성과 실시간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겠지만, 이 경우 가격을 고려한다면 최적의 사양을 선택하는 것이 숙제일 것이다.
상용화 동향
자동차 ‘안전’의 핵심인 센서는 센서 간 융합, 시스템 간의 상호연동을 통해 보다 다양한 능동안전 시스템을 가능케 한다. 사전충돌방지(Pre-Crash Safety, PCS) 시스템은 레이더 뿐 아니라 카메라 융합을 통해 전방의 차량이나 장애물을 감지한 후, 거리와 상대속도 등을 고려하여 판단해 충돌 가능성이 있는 경우 운전자에게 경고하고, 안전벨트 등의 전개를 제어하는 방법으로 충돌 및 피해를 방지하는 시스템이다(그림 3). 이미 활발하게 상용화가 추진되고 있으며 일본 메이커들의 차량과 벤츠 등에서 상용화됐다.
충돌방지(Collision Avoidance System, CAS) 시스템 역시 카메라와의 융합을 통해 전방 차량의 상대 속도를 검지하고 사고 가능성이 있을 경우 엑셀, 브레이크, 조향 장치 등을 전기적으로 조정해 사고를 미리 방지한다(그림 4).
지능형 순항제어(Advanced Cruise Control, ACC)는 전방의 레이더를 이용해 앞 차량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긴급상황 시 비상 제동을 하는 시스템이다. 즉, 차량의 정속 주행은 물론 전방 차량과의 거리를 자동으로 조절함으로써 차량 주행의 안전성, 운전자의 편의성, 그리고 교통의 효율성을 높인다(그림 5). 몇 가지 실제 응용 사례를 살펴본 바와 같이 ASV의 핵심은 레이더 센서 기술이고, ASV의 확대를 위해 고성능 저가형 레이더 센서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전세계 자동차 센서 시장 중 레이더 센서 성장률은 2010년까지 38%로 고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그림 6). 레이더와 LIDAR 센서의 시장규모를 살펴보면 77 GHz 대역의 레이더 센서 시장이 가장 성장률이 높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특히 향후 모든 차량에 레이더 기반의 ACC가 장착될 것으로 보여 77 GHz 대역 FCMW 차량용 레이더 시장은 매우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그림 7).
전세계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의 기술개발 현황을 살펴보면 표 1과 같다. 국내 레이더 센서 시장규모는 50%의 고성장이 예상되고 있으나, 아직 차량용 레이더 센서 개발 기술력은 매우 낮은 상태다.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나 쌍용자동차의 체어맨이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차량용 레이더 생산 업체는 LIG, 넥스원, 센싱테크 등이 있으나 아직 국내용 레이더가 제품화된 경우는 없다.
융합기술
지금까지 ASV의 개념, 차량용 레이더 센서의 응용분야, 그리고 국내외 동향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봤다. 미래형 고안전 자동차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센서 기술이 핵심이며, 그 중 차량용 레이더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우리의 차량용 레이더 개발 기술은 세계 기술에 비해 매우 낮은 상태로 향후 고성장이 예상되는 시장성을 볼 때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또 자동차의 특수성으로 볼 때 센서 신호처리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설계 역시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 한다. 레이더 센서의 경우 차량의 외부에 설치되면 온도의 차이에 따라 레이더 센서 동작 특성이 달라질 것이고, 이에 따른 보상 역시 고려해야 한다. 센서 시스템이 오동작 할 경우 오히려 안전을 위협할 수가 있으므로 보다 신뢰성 있고 안정적인 기능을 가지는 센서 개발이 필요하게 된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각종 센서들은 특성, 활용도가 다양하다. 이러한 센서 신호들의 융합을 통해 각 센서의 단점을 보완함으로써 보다 정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센서 융합 기술의 학술적인 방법은 논문 등을 통해 소개되고 있으나, 아직 검증되고 실제 적용된 사례는 없다. 이를 우리가 해결해 차량용 센서 기술 국산화와 세계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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