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없는 볼트, 이미지도 글쎄?
동급 말리부 대비 차값 회수에 15년
2009년 06월호 지면기사  / 

신기술의 성패 여부에서 기술의 우월성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시장과 소비자의 선택 또한 결정적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신기술 동향 분석 과정에서 시장성 평가는 필수적이다.
시장성이라는 것은 움직이는 표적과도 같아서 시장의 지역적 조건과 시기적 여건에 따라 변동이 극심하며 관련 변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각 변수들의 정량화가 용이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정확한 시장 예측이 매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차세대 자동차용 동력장치의 변화 추이 예측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량적인 시장동향 예측은 기업의 상품 개발과 투자 결정을 위한 기본 자료로 사용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제품의 라이프사이클, 개발 기간이 길고 투자비용이 막대한 자동차산업의 경우엔 시장 예측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최근 고효율 동력장치의 개발 필요성 증대에 따른 차세대 동력장치의 시장성 평가 및 동향 예측이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인 점을 감안해 필자는 본 기고를 통해 GM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lug In Hybrid Electric Vehicle, PHEV) 방식을 채택한 시보레 볼트(Chevrolet Volt)의 양산 계획과 맞물려 높은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PHEV의 시장성’과 ‘볼트의 개발 배경’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PHEV에 대한 기술적 논의는 과월호의 여러 기고에서 이미 상세하게 논의된 바 있기 때문에 본 기고에서는 이를 지양하기로 하고 기술 외적인 요인들에 초점을 맞췄다.


돌아온 전기 파워트레인

차세대 자동차의 동력장치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자동차 동력장치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실제로 자동차에 적용돼 왔던 동력장치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는 영국의 산업혁명 기반 기술이었던 증기기관을 마차에 설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프랑스의 니콜라스 퀴뇨(Nicholas Cugnot)가 1769년에 개발한 증기차는 3.6 km를 약 20분에 주파할 수 있었다. 이후 근대 내연기관의 모태인 오토 사이클(Otto Cycle)이라 불리는 실용적인 4행정기관 엔진은 대략 한 세기 후인 1876년경 독일 엔지니어 니콜라스 오토(Nikolaus Otto)가 고트립 다임러(Gottlieb Daimler), 빌헬름 마흐바흐(Wilhelm Maybach)와 함께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젤엔진은 이보다 10여년 뒤인 1893년에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에게 특허가 주어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면 전기자동차의 개발 역사는 언제쯤으로 보아야 할까? 첫 번째 실용적인 전기자동차는 오토 사이클이 개발되기 약 40년 전인 1835년에 미국의 토마스 데이븐포트(Thomas Davenport)가 개발한 소형 전기 기관차로 보는 견해가 우월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19세기에는 내연기관이 전기자동차에 비해 신기술이었던 셈이다. 당시에는 1회용 전지가 사용되었고, 재충전용 배터리는 1859년에 가스통 플랑테(Gaston Plante)에 의해 충전 가능한 납축전지(lead-acid) 배터리가 발명된다. 이 또한 내연기관 발명보다 앞서 일어난 일이다. 1895년에는 미국 최초의 자동차 경기가 개최되었는데, 이 경기에서 전기자동차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독일의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는 1898년에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카(Hybrid Electric Vehicle, HEV)를 개발한다. 이 차에서는 소위 직렬 하이브리드(Series Hybrid) 방식이 사용되었는데, 엔진이 발전기를 구동시키고 차륜 허브에 장착된 전동 모터에 전기를 송전하도록 돼 있었다. 당시 HEV의 개발 동기는 현재의 연비나 효율 문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내연기관이 개발되고 자동차용 구동/변속장치가 개발되기 이전의 기술적 과도기에서 당시에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효과적인 동력 전달 방법이었기 때문에 동력 전달장치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 이 차의 경우 배터리만을 사용해 약 40마일(64 km)을 주행할 수 있었다. 우연하게도 GM 볼트의 배터리 용량도 주행거리 40마일을 설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현재 95% 이상의 자동차가 내연기관을 동력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 그러면 100년 전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1900년도에 생산된 차량의 약 3분의 1은 증기 자동차였고, 3분의 1은 가솔린 자동차,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전기자동차였다. 확실히 전기자동차는 역사적으로는 구기술(?)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세기 전 전기자동차의 전성기는 정체된 배터리 기술과 꾸준한 내연기관 및 구동장치의 발달로 증기 자동차와 함께 급격한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친환경 신기술의 기본 개념들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사용된 기술을 기초로 하고 있다.
각 기술의 성장과 쇠퇴는 어느 한 기술의 절대적 우월성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는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기술들과의 상대적 우위와 당시의 시장성에 의해서 결정되기 마련이다. 100여년 전에 쇠퇴를 경험했던 전기 및 HEV의 개념이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따라서 중흥의 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PHEV는 전기차(Pure Electric Vehicle)와 HEV의 중간 정도의 성격을 갖는다. 기술적 측면이나 구동방식에서 보면 PHEV와 직렬 방식 하이브리드는 큰 차이점이 없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엔진은 발전기와 직결로 연결돼 있어서 배터리의 충전상태와 차량의 운전조건에 따라서 발전을 하고 전동 모터가 발전기 혹은 배터리로부터 전기를 공급받아 차량을 구동한다. 100여년 전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하이브리드와도 개념적으로 별로 다르지 않다. 두 가지 사양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배터리의 용량과 파워 매니지먼트(Power Management) 방식이다. PHEV의 경우 상대적으로 큰 용량의 배터리를 장착해 외부 전원으로 충전한 후에 배터리의 방전 한계까지는 엔진을 작동시키지 않는 것이 주목적이고 방전 한계 이후의 작동은 직렬 방식 하이브리드와 큰 차이가 없다. 병렬 방식 하이브리드(parallel hybrid)에 플러그인 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구동장치의 비용 상승분을 고려하면 직렬 방식을 기초로 한 PHEV가 유리한 편이다.
볼트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된 상태에서 40마일까지 배터리로 주행이 가능하고 이후에는 엔진을 작동시켜서 계속 주행한다. GM의 조사에 의하면, 약 75%의 운전자가 하루에 40마일 이내에서 운전을 한다. 이 경우에 운전자는 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차량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가 전혀 없다. 이점이 GM에서 주장하는 PHEV의 가장 큰 장점이다. 표면적으로는 최소한 40마일까지는 무공해 자동차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미국의 발전에 사용되는 에너지원으로 아직도 화석연료가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에 따라서는 웨스트버지니아의 경우처럼 전력 발전의 대부분을 석탄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전기자동차가 무공해 자동차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반면 프랑스는 발전에 사용되는 화석연료가 10% 미만이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다. PHEV가 무공해 자동차에 근접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상업성 없는 차

기존 차량과 비교했을 때 PHEV의 가장 큰 장점은 전기를 사용한다는 것이고 가장 큰 단점도 전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시보레 볼트의 경우 120 V의 전원(미국의 가정용 전원은 한국과 달리 120 V임)으로 충전시 매일 8시간 정도 충전을 해야 한다. 매일 전원을 연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소비자의 선택에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지도 큰 변수지만 주차지에서 차량에 연결할 수 있는 전원 설비가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선결돼야 한다. 이에 따라 PHEV의 잠재 소비자군은 기존 차량에 비해서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우선 소비자가 배터리 재충전이 용이한 주거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단독 주택의 비율이 높고, 단독 주택의 경우에 차고가 있거나 집 외벽에 전기 아웃레트(outlet)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보다 유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약 52%의 소비자들만이 재충전이 가능한 집에서 살고 있다. 한 설문조사 기관에 의하면 잠재 신차 소비자들 중 PHEV를 구매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 비율은 49% 가량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두 가지만 고려해도 신차 고객 중 약 25% 만이 PHEV의 잠재 고객이 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은 차량 가격이다. HEV의 경우에는 15% 내외의 신기술 프리미엄이 차량 가격에 더해지고 있는데, PHEV의 경우는 그 비율이 훨씬 높다. 시보레 볼트의 예상 차량 가격은 사양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략 4만 달러로 추정된다. 상대적으로 비싼 차량 가격의 상당 부분은 리튬이온 배터리 관련 비용 상승분이다. 한편 시보레의 대표적인 중형 세단 중 하나인 말리부(Malibu)의 경우 차량 가격이 2만4,000달러 정도임을 감안하면 가격차가 매우 큰 편이다. 이에 따라 이 차를 구매할 수 있는 구매층은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소비자들로 더욱 제한된다. 뿐만 아니라 가격에서 고급 브랜드의 차종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시보레의 브랜드 이미지가 고급 차종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상대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초기 차량 프리미엄을 연료비 절감분을 통해서 충분히 보상 받을 수 있을까? 미국 평균 가정용 전기료는 1 kWh 당 11센트(0.11달러, 2008년 12월 기준)이다. 시보레 볼트의 배터리 용량은 16 kWh 정도로 알려져 있다. 배터리의 기술적 특성상 100% 완전 충/방전을 발복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 충전시 사용 용량은 이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실제 사용 용량은 배터리 용량의 약 60%(9.6 kWh)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충전 장치의 효율을 평균 90% 로 가정하면 1회 충전시 10.7 kWh가 필요하고 1달러 17센트의 전기료가 소요된다. 이 액수는 미국에서 대략 1/2 갤런의 휘발유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2009년 5월 4일 기준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 2.07 달러/갤런).
GM의 보도자료대로 배터리만으로 40마일을 운행할 수 있다면 소비자 체감 연비는 갤런 당 80마일이 된다. 40마일 이후 엔진 작동시 예상 연비는 갤런 당 30마일로 알려져 있다. 시보레 말리부의 경우 평균 연비는 갤런 당 26마일이다. 말리부로 매일 40마일을 운전한다면 3달러 18센트를 휘발유 구입에 써야 한다. 볼트를 운전할 경우 말리부와 비교했을 때 매일 2달러 8센트를 기름값에서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면 몇 년 후에 두 차종의 가격차인 1만6,000달러를 연료비 절약분에서 되돌려 받을 수 있을까? 이자 비용을 고려하지 않아도 15년 이상이 걸린다. 일일 주행거리가 40마일 미만이거나 이상이면 이보다 더 오래 걸리게 된다. 원유 가격의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연료비 절약이 소비자의 절대적 구매 동기가 되기는 어렵다. 물론 미국 정부에서는 이를 감안해 볼트 구입자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줄 것이다.


이미지를 산다

지금까지 설명을 정리하면, 배터리 재충전이 비교적 용이한 미국에서도 PHEV는 잠재 신차 구매 소비자들 중 제한된 소비자들만이 구매가 가능하고 비싼 차량 가격의 초기 투자를 연료비 절감을 통해서 차량의 라이프사이클 내에 회수할 수 있는 가능성도 미미하다.
이 두 가지 큰 요인으로만 봐도 현재 시보레 볼트는 시장성이 불투명한 제품일 뿐만 아니라 상업적 성공도 보장되지 않는 제품이라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그렇다고 시장성 확보를 위해서 내부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전략적으로 저가 정책을 펴기에는 GM의 사정이 그리 여유롭지 않다. 물론 필자가 언급한 이러한 문제점들을 GM이 사전에 검토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면 GM은 과연 무슨 이유로 이 차를 개발해서 내년부터 시판할 계획을 세웠을까?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결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GM의 결정에는 시장성이나 사업 경제성 이외의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GM의 볼트 개발 배경을 이해하려면, 지난 10여년 간의 자동차 회사 간의 신기술 개발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 토요타와 혼다는 양산을 목표로 한 본격적인 HEV 개발을 시작했고, 혼다는 1999년 말에 세계 최초로 양산 개념의 HEV인 인사이트(Insight)를 시판하게 된다. 토요타도 곧이어 2000년에 프리어스(Prius)의 시판을 개시한다. 혼다 인사이트는 작은 차체와 2인승이라는 단점으로 기존 차량에 근접한 프리어스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판매량을 보인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지구온난화, 환경파괴에 대한 위기의식과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한 대체 에너지 개발, 에너지 효율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프리어스가 지속적인 HEV 판매를 주도하는 동안 GM은 HEV 개발보다는 연료전지 차량 개발에 큰 비중을 두고 연구개발 투자를 한다. 2002년 GM은 Hy-wire라는 연료전지 차량용 범용 플랫폼을 공개하면서 큰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연료전지 차량의 경우 여러 가지 산적한 기술적, 상업적, 사회적 기반시설 등의 문제들로 양산 계획이 불투명했고 소비자들의 관심 유도 또한 실패한다. 반면 토요타는 프리어스의 성공으로 소비자들에게 신기술 선두주자, 친환경 자동차 회사라는 매우 상징적인 인식을 심어주게 되고 액수로 환산할 수 없는 기업 이미지 상승효과를 톡톡히 보게 된다. 뒤이어 혼다가 2002년 소형 인기 승용차인 시빅(Civic)과, 2004년 어코드(Accord)의 하이브리드 사양을 선보인다. GM도 2005년 새턴(Saturn)의 소형 SUV인 뷰(Vue)에 하이브리드 사양을 추가하는 등 많은 회사에서 HEV 양산을 시작하지만 토요타의 시장 선점에 대적해 시장 점유율을 바꾸는 데는 실패한다.
지난해 미국 HEV 시장 점유율을 보면 토요타가 압도적으로 75%의 점유율을 확보했고 나머지를 GM, 포드, 닛산 등 다른 회사들이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유의해야 할 사실이 있다. 필자는 토요타의 성공 뒤에는 시장 선점이라는 어드밴티지 이외에 마케팅 전략에서의 차별화가 주요했다고 생각한다. 토요타는 프리어스 이외에도 중형 승용차인 캠리(Camry)와 하이랜더(Highlander)라는 SUV에도 하이브리드 사양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토요타의 HEV 판매의 70% 가량은 프리어스다. 즉 하이브리드 시장에서 토요타의 성공은 토요타의 성공으로 부르기 보다는 프리어스의 성공으로 불려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는 20여종이 넘는 HEV가 시판됐다. 이들 중에서 프리어스 만이 유일한 HEV 전용 차량이었고 다른 차종들은 기존 엔진 사양과 차체, 상표를 공유했다. 따라서 ‘프리어스=하이브리드’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반면, 다른 차량들의 경우 외관상으로 볼 때 하이브리드인지 아닌지 거의 구분이 안 된다.
프리어스의 성공은 브랜드의 차별화가 고객의 구매 욕구와 맞물려 상승효과를 만들어낸 사례라 할 수 있다. HEV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신기술 또는 신제품에 대한 구매 욕구가 높은 소위 얼리 어댑터(early adopter)들이다. 이들이 프리어스를 사는 이유는 그야말로 프리어스가 하이브리드이기 때문이다. 한 소비자 설문조사에 의하면 프리어스의 구매 동기는 우선적으로 좋은 연비이기도 하지만, 친환경 제품이라는 것이 중요한 구매 동기로 조사됐다. 즉 소비자들은 프리어스를 운전함으로써 자신이 친환경주의자 또는 환경을 염려하는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차들의 경우 기존 엔진 사양과 차체를 공유해 이러한 가치를 충분히 제공할 수 없다. 이같은 이유로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차종 중에서도 프리어스가 압도적으로 많이 팔린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혼다가 올해부터 인사이트라는 브랜드로 다시 HEV를 시판하기로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시보레 볼트의 개발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하자. GM의 입장에서는 볼트 기획 당시 세계 제일의 자동차 생산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연료전지 차량 개발로 의도했던 기술 선진 기업 이미지 구축에 실패하고 뒤늦은 HEV 개발로는 자존심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GM은 단기간의 획기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기술적으로 볼 때 PHEV는 기존 하이브리드와 큰 차이가 없고 구동장치가 간단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개발이 용이한 면이 있다. 뿐만 아니라 연료전지차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기술을 PHEV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결국 GM의 입장에서 PHEV 개발은 대규모의 신규 투자나 장기간의 개발 기간이 필요 없는 대안이었다. GM은 우선 제품의 차별화를 위해 볼트라는 별도의 브랜드를 내세웠고 기존 하이브리드와의 기술 차별화를 위해서 PHEV라는 보편적인 용어 대신 Extended-Range 전기차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획기적인 연비와 친환경성을 무기로 새로운 기술적 패러다임을 창조하려는 GM의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 처해 있는 경제적 위기와 자동차시장의 위축, 불확실한 상품성으로 볼 때 과연 GM의 이러한 노력이 상업적 성공의 뒷받침 없이 얼마나 효과적일 것인가 하는 데에는 우려와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의 시장 여건은 미국과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미국의 시장상황을 한국의 경우에 직접적으로 대비할 수는 없다. 간단히 살펴보더라도 여러 차이점을 지적할 수 있다.


미국보다 나은 한국

우선 몇 가지 측면에서 PHEV는 한국시장에서 더 유리한 점을 갖고 있다. 세제구조상 휘발유 가격이 미국보다 대략 두 배가량 비싸기 때문에 차량 가격 프리미엄의 회수 기간이 짧아질 수 있다. 한국 소비자의 일일 평균 주행거리도 미국의 경우보다 짧기 때문에 한국시장용 차량의 경우 배터리 용량을 줄일 수 있고, 이는 차량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상대적으로 비싼 휘발유 가격과 싼 차량 가격은 소비자 입장에서 초기 투자비용 회수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고 제조사 입자에서는 PHEV의 경제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판매 전략이 가능하다. 또 한국 소비자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신기술 선호도도 시장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의 건실한 배터리 기반 산업도 큰 장점이다. 반면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재충전 설비의 확보에 있다. 주차 자체가 문제가 되고 지정 주차가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은 실정에서 재충전 설비 설치 가능성과 비용 투자의 문제는 다각적인 연구분석을 필요로 한다. 이 문제는 자동차 제조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에너지 정책, 세제 혜택, 사회적 기반 시설과 관련해 정부의 적극적인 사회 경제적 연구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에너지 위기와 대체 에너지 기술 개발은 단지 자동차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끝으로 국내 배터리 관련 기업의 획기적인 기술 개발과 원가절감을 간절히 기대하면서 자동차 관련 업종에 종사하시는 모든 엔지니어들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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