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성의 발전과 자동차의 미래
2011년 02월호 지면기사  / 글 | 박준영 연구위원(junyoung@hyundai.com)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미래트렌드연구팀

이동수단(mode) 중심의 자동차 경쟁 양상이 최근 들어 이동성(mobility) 전반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동성의 발전은 삶의 질을 크게 개선시켜 왔다. 이동성이 향상되면서 인간은 더욱 먼 거리를 빠른 시간에 여행하게 된 한편, 직업 선택이나 여가 활용, 소비 활동 등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이동 과정에서 환경친화성이나 효율성, 형평성 등 이른바 이동의 사회적 책임이 중시되면서,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이동성(sustainable mobility)의 실현이 교통 부문의 최대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자동차 업계의 미래 전략도 자동차라는 제품 자체가 아닌 전반적인 미래 이동성 향상으로 초점을 맞춰가고 있다. BMW가 2001년 모빌리티 연구센터(Institute for Mobility Research)를 설립한 것이나, 포드가 도심 이동성 향상을 위해 SMART(Sustainable Mobility & Accessibility Research & Transformation)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이동성의 발전 방향

미래 사회의 이동성이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할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최근 나타나고 있는 몇 가지 징후들을 통해 이동성의 구성 요소인 이동수단, 이동 서비스, 이동 인프라의 미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우선,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고령화나 핵가족화, 이민 증가 등 인구학적 변화들, 나날이 심각해지는 도시화와 그로 인한 이동규제 강화, 그리고 탈물질주의 가치관 등은 이동수단의 선택과 자동차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한편, 기후변화나 에너지 부족 등 환경문제와 더불어 기술 발전 역시 이동의 질적 요구수준을 높임과 동시에 인프라 투자 등의 도시정책 변화까지도 유발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징후들을 종합해 볼 때 미래 사회에는 이동수단이 보다 진화되고 이동 서비스가 더욱 고도화되며, 이동 인프라 측면에서도 지속적인 혁신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수단의 진화
이동수단 측면에서 예상되는 첫 번째 변화는 보조 이동수단(para-transit)의 부상이다. 미래 사회에서는 대중교통 교차점(transit point)까지의 근거리 이동을 위한 다양한 보조적 구간 이동수단이 등장해 이동 유연성과 교통 효율성을 제고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존 교통수단이 감당하지 못하는 교통 사각지대가 존재했으나, 도심 내 개인 이동성 향상을 위해 PMD(Personal Mobility Device, 1인용 이동장치)나 전기 이륜차 등 새로운 형태의 보조 이동수단이 개발돼 이를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더불어 또 다른 강력한 대안 교통수단으로 주목 받고 있는 근거리 도심형 철도가 기존 교통 시스템의 취약점을 보완할 전망이다. 특히, 철도교통은 도로교통에 비해 경제적 효용성은 낮지만, 사회적/환경적 측면에서 큰 잠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두 번째로 인간 중심적 이동수단을 추구하려는 움직임 역시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의 이동성 발전 역사에서 이동 주체인 인간은 자동차에 밀려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령화가 심화되고 사회발전에 따른 인간중심적 가치관이 정착되면서 미래에는 도보, 자전거 등 비동력화된(non-motorized) 이동수단에 대한 선호도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서유럽 등 선진권에서 차도를 좁히고 보행자나 자전거 전용도로를 확충하는 등 인간친화적 이동수단에 대한 배려를 강화하는 움직임에서 이러한 예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동 서비스의 고도화
이동 서비스 측면에서는 이동수단 간 상호연계성(inter-modality) 강화를 위한 다양한 이동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다.
증가하는 미래 이동수요를 적절하게 수용하기 위해서는 이동수단 선택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각종 이동수단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현재 유럽 사회에서 확산일로에 있는 카 셰어링(car-shring, 자동차 공동이용제) 서비스나 영국의 저니플래너(journey planner)와 같은 교통정보 시스템(Transport Information System)이 더욱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궁극적으로 미래 이동성은 ‘이동수단에 의한 이동(mobility by vehicle)’에서 ‘시스템에 의한 이동(mobility by system)’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한편, 미래 이동 서비스에 있어 예상되는 또 다른 변화는 이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의 극대화다. 최근 들어 차량에 적용되는 기술과 콘텐츠는 더욱 확대되고 다양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최신 기술의 광범위한 적용을 통해 미래 이동수단은 단순 이동을 위한 기계적 기능에서 벗어나 생활정보나 엔터테인먼트 등 보다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복합적 생활공간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이동 인프라의 혁신
미래 이동성 발전에 있어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변화는 새로운 이동 인프라의 등장이다. 대체 에너지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래 이동수단의 근본적 변화가 가속화될 전망이며, 이는 이동 인프라의 혁신적 변화를 유발할 것이다. 따라서 물리적 도로 증설 중심의 기존 인프라 개발 패턴에서 벗어나 연료 공급, 유지/보수, 도로환경 측면에서 새로운 유형의 고도화된 인프라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자동차 업체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링 업체, IT업체 등 다양한 업체 간 새로운 형태의 인프라 경쟁을 격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기존의 이동 공간을 새롭게 배치함으로써 효율적인 이동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 역시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지난 몇 년간 유럽 사회에서는 도시 스프롤(urban sprawl, 무분별한 도시 확장) 현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도시 공간을 밀집화 함으로써 이동거리 확대로 인한 손실을 줄이려는 콤팩트 시티(compact city)의 구현 노력이 지속돼 왔다. 또 원격근무(telework)나 가상이동(virtual mobility)과 같은 신기술을 통해 물리적 이동 수요를 감소시키고 이동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이처럼 미래 사회에는 기존의 이동 공간을 새롭게 배치하고 재구성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이동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자동차 산업의 향방  

그렇다면 이같은 미래 이동성의 발전에 따라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신차 수요와 차급, 업체 간 경쟁 등 시장구조 측면에서의 변화뿐만 아니라 제품의 형태나 기능 측면에서도 이전과는 차별적인 특징이 나타날 전망이다. 또한 소비자의 차량 이용 및 태도에 있어서도 새로운 변화가 예상된다.

시장의 변화
우선, 자동차 수요의 정체가 불가피하다. 미래 이동성의 발전에 있어 자동차는 여전히 높은 비중과 중요성을 유지할 것이지만, 대안 교통수단의 역할이 커지고 이동수단의 선택 다양성이 확대되면서 선진시장을 중심으로 자동차에 대한 의존율은 점차 완화될 것이다. 또 이동수단 간 상호연계성의 확대, 규제 강화 및 비용 부담 증가로 인해 자동차의 소형화 추세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점쳐진다.
한편, 산업 경쟁 측면에서도 경쟁 범위의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제품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서비스, 인프라 등 이동성 전반으로 경쟁 범위가 확대되면서 외부행위자들의 영향력이 증가할 것이다. 또 자동차 기업 등 민간부문 역시 이동성 향상을 위해 교통 인프라를 비롯한 다양한 공공재(public goods)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민간부문과 공공부문 간의 경계 역시 약화될 전망이다.

제품의 변화
자동차라는 제품과 관련해 기대되는 두드러진 변화는 무엇일까? 우선, 이동수단의 혁신성(소재, 디자인, 연료 등)이 강화되고 도심 친화성, 친환경성 등 새로운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면서 기존의 자동차가 지니는 정형성이 약화되는 동시에 이동수단 간 장점들을 결합한 다양한 복합상품이 등장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세그먼트(segment)를 창출할 가능성이 보인다.
한편, 이동 과정에서의 이용자 경험 극대화를 위해 자동차의 기능적 융합(convergence)이 중시될 것이며, 이에 따라 미래의 자동차는 이동수단으로서의 기계적, 기능적 차별성은 낮아지지만, 멀티미디어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복합적 네트워킹 디바이스(networking device)로서의 의미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차량 디자인이나 기술 측면에서 인간친화성이 중요하게 고려될 것이다. 특히, 고령화 심화로 인해 고령 운전자의 신체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적용 범위 역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의 변화
또 차량 이용으로 인한 시간적 또는 경제적 부담이 증가하는 한편으로, 지속가능성이 사회 보편 가치로 정착함에 따라 자동차 소비자들의 차량 인식에도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전통적인 소유(ownership) 기반의 차량 이용 필요성이 감소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오랜 소유욕이 약화될 전망이다. 특히, 서구 신세대의 경우 최근 들어 모바일 기기와 같이 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는 상징물이 다양하게 등장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저하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미래 자동차 수요 확대에 있어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래 자동차 소비자들은 차량 이용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추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미래 자동차 산업의 경쟁 구도를 차량 운행을 비롯한 이용(usage) 중심의 경쟁에서 이용자 만족 극대화를 위한 경험(experience) 중심의 경쟁으로 변화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에 따라 미래 자동차 산업에서 콘텐츠 및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되고, 이를 위해 이종(異種)산업과의 협력이 보다 중요한 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준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동수단, 이동 서비스, 그리고 이동 인프라 등 미래 이동성의 변화는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련 산업에게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 줄 것이다. 특히, 미래 시장은 제품 중심의 경쟁에서 더 나아가 이동 서비스나 콘텐츠(정보), 그리고 인프라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미래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이동성의 변화에 따른 경쟁 방식의 변화를 이해하고 이에 대한 장기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제품 또는 서비스 측면에서 미래 사회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모빌리티 솔루션에 대한 검토와 실험이 필요하며, 경쟁 다변화에 대비해 이종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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