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 Yunwoo Jeong 유니스트 정연우 교수
‘자동차의 디지털화와 미니멀리즘’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꺼낸 카드가 UNIST 디자인학과 정연우 교수다. 그의 경험과 혜안이 담긴 솔직한 자동차이야기를 들으면 즐겁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 교수와의 인터뷰를 옮겼다.
글 | 한상민 기자_han@autoelectronics.co.kr
정연우 교수
GM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 아우디폭스바겐그룹 벤틀리 익스테리어 디자이너를 거쳐 현대자동차그룹 중대형승용차 외장디자인 그룹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를 졸업하고 석박사 과정을 거쳤으며, 영국왕립예술대학원(RCA)에서 자동차디자인을 전공했다. 현재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로 재임 중이다.
“교수님! 그냥 앉아 계시면 몇 장 찍고 시작할게요.”
여기저기 놓인 책자, 상패, 그 위의 조그만 다이캐스트들. 벽면에 무수히 붙은 명함과 스케치. 익살스런 테디베어와 분홍빛 미스터빈, 그 위의 사막과 원색 모델. 잠시 후 빨강 스메그 냉장고 뒤편으로 무심하게 외투가 던져졌다.
‘자동차의 디지털화와 미니멀리즘’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꺼낸 카드가 UNIST 디자인학과 정연우 교수였다. 5년 전부터 그를 만나고 발자취를 따르다 보면, 이곳의 숨겨진 질서와 의미를 묻고 싶어지고, 경험과 혜안이 담긴 솔직한 자동차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즐겁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동차의 디지털 전환은 사용자의 쓰임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느냐로 봐야 한다. 전화에서 애플이 이룬 것처럼 테슬라가 불씨가 됐다.
한. 자동차 인테리어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는데, 디지털화와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죄송하게 이게 준비한 질문의 전부에요. (웃음)
정. 음. 전자제품은 20년 전 아날로그 대 디지털 전쟁이 있었고 모두 디지털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예를 들어 음원을 재생하는 매체와 읽는 방식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었죠. 그 다음은 TV도 그렇지만 소리나 영상신호를 출력하는 프로세스가 디지털로 바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호를 받아들이고 분석하고 보내고 증폭하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었습니다. 인터페이스 관점에서는 핸드폰에서 보듯 프라다나 블랙베리처럼 디지털 화면에 아날로그식 키보드가 있는 구조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엔 입력방식이 터치스크린 화면으로 흡수되며 모든 아나로그식 버튼이 디지털화됐습니다. 제가 보기에 자동차는 디지털 변환이 2020년이 지난 이제야 시작되고 있습니다.
한. 이제요? 2020년이요?
정. 네. 왜냐면 기술이 아닌 사용자 관점에서 보면, 차가 전기로 움직이든 휘발유로 움직이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전화기도 보면 기계식 버튼을 누르던 전자식 버튼을 누르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용자의 쓰임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느냐, 전화가 주용도냐, 전화 너머 다른 용도가 됐느냐는 것입니다. 지금도 스마트‘폰’이라 부르지만, 전화가 주목적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같이 X세대 이상 (웃음) 나이 든 사람들만 음성통화가 편하지 대부분 사용자는 전화보다 SNS 소통에 쓰고, 멀티미디어와 카메라를 즐기는 이동형 스마트기기, 즉 전화 기능을 가진 모바일 컴퓨터입니다.
이것을 애플이 이뤄냈고 자동차에서는 테슬라가 깬 것입니다. 테슬라의 시작이 굉장히 미미했기 때문에, 사람들과 업계는 탄생과 발전과정을 크게 보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보려 하지 않는 시각도 있었고, 실제로 잘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흔히 착각하는데,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바뀌는 것이 자동차의 디지털화가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그냥 제조사의 관점입니다. 엔진이든 모터든, 휘발유든 전기든 차가 움직이는 것은 사용자에게 똑같습니다. 제가 말하는 자동차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점은 ‘자율주행’입니다.
그래서 자율주행이 되면 인테리어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인테리어와 미니멀리즘에 대해 물으셨는데, 자율주행 레벨 3 이하에는 운전을 보조-지원해주는 수준이니까 기존 차량과 큰 차이가 없지만, 레벨 4부터는 운전을 하지 않는 시퀀스가 베이스입니다. 그때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것이 인테리어의 변화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조사, 제조사의 디자이너들, 개발자들은 이 시퀀스를 반영하는 방법을 만드는데, 제가 판단하기에는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한. 잠깐 끊으면, 2020년을 자동차의 디지털화 시작으로 찍은 것은 비록 테슬라가 자율주행은 아니더라도 그런 철학을 갖고 먼저 시작하긴 했지만, 우리가 아는 전통적인 제조사들의 레벨 3 이상 자율주행이 지금부터 시작되기 때문인가요?
정. 그렇죠. 레거시 메이커들의 자율주행기술 적용이 이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브랜드에서는 사용자의 특정 활동을 어시스트해줄 수 있는, 예를 들어 휴식이라면, 더 편안하게 쉴 수 있게 해주는 방향으로 인테리어를 개발하고, 이를 보여주려는 시도를 합니다. 다른 브랜드에서는 특정 활동에 대한 선택권을 사용자 자율에 맡기려고 합니다. 즉 유틸리티로서의 인테리어 활용 자율권을 사용자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다목적 유틸리티의 개념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율주행차의 실내공간은 단순히 시트를 넣고 편안하게 쉬게 해주는 것이 아닌, 어떤 활동이든 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것은 전부 없애는 것입니다.
‘바보’ 같은 인테리어라면, 자동차의 인테리어 요소를 더 스마트하고 첨단으로 이끌겠다는 목적으로, 예를 들어 센터 콘솔을 움직이게 한다거나 거기에 뭔가 기능이 들어가게 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것조차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예를 들어, 차에 뭔가를 넣는 것보다는 탑승자가 랩톱을 들고 타고 그것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제공하자는 것이죠?
정. 네. 맞습니다. 이미 사용자는 모바일 형태로 사용 편의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2010년대에서 2020년으로 넘어오는 사이 고급차에 헤드레스트 모니터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고, 이 모니터가 얼마나 큰지, 몇 개인지가 척도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용자들은 이게 굉장히 거추장스럽고 제어하는 컨트롤러의 사용도 불편하고 작동도 잘 안 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들의 디스플레이를 꺼내 보는 게 더 낫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카 메이커들은 헤드레스트 모니터를 웬만하면 달지 않습니다. 이처럼 차에서 더 많은 거추장스러운 요소들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미니멀리즘이 붙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 레거시 메이커들은 이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뭔가 자율주행과 함께 더 고급스럽고 부가가치가 높은 것이 어딘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레거시 메이커들의 자율주행기술 적용은 이제 시작됐고, 인테리어 디자인은 혼란에 빠져 있다.
한. 첨단, 편의, 특히 안전을 핑계로 온갖 것을 더 넣고 싶어한다는 거죠?
정. 네. 어떻게 보면 그냥 움직이는 거실을 가져다 놓으면 됩니다. 사실, 주거공간의 거실, 소파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떡볶이를 먹으면서 영화를 볼 수 있고, 전화를 받을 수 있고, 잠시 잘 수 있고, 책을 볼 수 있고, 무릎에 랩톱을 올려놓고 일할 수 있는, 궁극적인 유틸리티로서의 공간, 사용자가 이동하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 되는 것입니다. 시트가 뒤로 넘어가고, 기기가 어디에선가 튀어 올라오고, 온갖 컨트롤러가 있는 이런 것들은 그 회사들의 바램일 뿐입니다. 이런 것들은 궁극적으로 주가 될 수 없어요.
한. 레벨 2 ADAS가 대중화되는 현재에도 이것이 맞을까요?
정. 앞으로 갈수록 이것이 맞아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레벨 2까지는 사용자가 특별히 다른 활동을 할 수 없지만, 단계가 높아질수록 기존의 많은 구성장치가 거추장스럽게 됩니다.
한. 최근의 몇몇 모델을 보면 센터 콘솔의 수납공간도 없애면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던데요.
정. 그럴 수 있습니다. 수납공간을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의 공간에 넣는다는 것은 예전에는 좋은 아이디어였고, 그것이 옳은 방향으로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래봤자 결국 사용자는 거기에 온갖 사물을 쑤셔 넣고, 까먹고, 잊어버리고, 안 찾게 되거든요. (웃음) 예를 들어 글로브박스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요? 그렇지 않나요?
한. 그렇죠. 그런데 저는 10여년 전에는 카 메이커에게 CD를 빼라고 조언했던 사람인데 다시 물리적인 음반을 사기 시작했고 글로브박스에 CD를 넣고 다녀요. (웃음) X세대쟎아요.
정. 그것도 좋습니다. (웃음) 그래도 수납공간은 더 없어질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사용자가 휴대하는 크고 작은 가방이 이미 수납을 담당하고, 폰 정도만 단지 올려놓을 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한. 미니멀리즘을 지원할 수 있는 첨단기술들의 도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 미니멀리즘을 종교처럼 생각하고, 이것을 향해 달려간다기보다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궁극을 찾으면 미니멀리즘이 보이는 것입니다. 더 편리하고 심리스하게 사용될 수 있다면 어떤 기술이든 들어올 수 있습니다. 뭔가를 자꾸 부가하는 것이 아니라, 밀어내고 없애는 것입니다. 어딘가 숨어있던 디스플레이가 올라오고 의자가 펼쳐지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윈도가 스크린이 되고 실내 바닥을 요가 공간으로 쓰는 식입니다.
2010년대 초반 테슬라의 인테리어를 처음 본 사람들은 “이게 뭐야, 왜 이렇게 휑해!”라고 생각했지만, 테슬라는 이미 앞섰던 겁니다. 물리적인 버튼이 필요 없다는 것도 테슬라를 통해 입증된 것이고요. 아직도 어떤 사람은 “나는 물리적인 버튼이 편해”라고 말하지만, 그조차 터치스크린뿐인 스마트폰을 쓰고 있어요.
테슬라 모델 3의 대시보드는 “너희들아, 너희가 보던 인테리어는 이제 유물이야. 지금부터는 이런 거야!”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한. 저도 모델 3를 봤을 때 “와, 이게 맞아! 하지만 운전자 앞에 속도계 정도는 있어야 하는거 아냐?”라고 말했던 게 생각나요. 딱지 안 떼려면 속도를 지켜야 하고 기름은 얼마나 있는지 봐야하고, 카 메이커나 교통당국에서는 안전과 법규정을 지켜야 하고요. 예전에 교수님이 자율주행 셔틀을 디자인했을 때도 이런 레거시들을 배제하고 자율주행 철학에 맞춰 디자인하고 라이트와 같은 요소도 빼버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정. (웃음) 그런 면도 있죠. 테슬라는 자율주행이 베이스(방향성)니까 “속도 알아서 뭐 하게요?”라는 겁니다. 아직까지 레거시 메이커들은 에어벤트나 공조장치 등 여러 곳에 아날로그 버튼을 계속 쓰고, 손맛이 어쩌니 하면서 말뚝 같은 기어 레버를 고집하기도 합니다. 억지 부리지만 사실은 그런 게 다 무의미한 겁니다. 그런 상태로 미니멀리즘은 불가능합니다. 자기모순이 생긴 것이죠. 요즘 집에서도 오토메이션인데, 차에 타서 온도든 풍향이든 송풍구 갯수, 위치나 열선까지 사용자 손으로 직접 조작하는 게 유효할까요? 모터 변속이 없는데 왜 변속 레버를 만들어 붙일까요?
이미 스스로의 시스템이 모두 전자식이며 디지털 방식인데 굳이 장식 같은 물리적 스위치와 버튼을 덕지덕지 붙이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더 슬픈 것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 거죠. 메르세데스 벤츠 신형 S클래스나 EQS를 보면, 조수석 대시보드에 스크린이 뜨쟎아요. 블링블링한 온갖 귀찮은 버튼과 장식까지 너무 화려해요. 이런 것들이 레거시 메이커들이 하는 것입니다.
한. 혹시 전자업체들이 바람을 넣는 것은 아닐까요? (웃음) 보조석 앞 대시보드에 굳이 디스플레이가 있어야 하냐는 생각도 들어요. 조작하기도 불편할 텐데요.
정. 그것을 시각화하는 것이 디자이너들의 일인데, 통찰을 모르거나 기존 방식을 반복하는 느낌입니다. 뭔가 새로운 기술을 넣어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올려야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헤매는 겁니다. 결국 신기술이라는 미명하에 편리와 불편을 동시에 넣고 있어요.
한. 교수님이 생각하는 베스트 모델과 워스트 모델이 있다면요?
정. (웃음) 워스트들은 벤츠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제 눈에 보이는 거에요. 베스트는 테슬라의 모델입니다.
한. 간단하네요. 많은 분이 동의할까요?
정. 뭐, 디자이너들은 제각각 다르게 생각할 수 있어요. 디자인은 흔히 얘기하듯이 답이 없으니까요. 입시미술을 공부하는 방식부터 대학에서 배우는 스타일, 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쉽게 얘기해서 어떤 대학은 굉장히 유희적인 선 긋기, 면 나누기를 좋아하고 그렇게 가르치고 배웁니다. 또 어떤 대학은 그렇게 하면 찢어버립니다. 시원한 면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구성에 따라 어떤 메이커들은 계속해서 면 쪼개기를 하는 것입니다. 고급 모델일수록 더 잘게 쪼개는 겁니다. (웃음) 그런데 저는 디자인에는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 그래서 어떤 차들의 익스테리어는 시원하고, 어떤 차들은 크롬이나 Z라인 등 복잡한 것이 들어가고 그러는군요. 그럼 앞으로 자동차 인테리어에 영향을 줄 외부요인이 자율주행 외에 무엇이 있을까요?
정. 여러 자율주행 연구를 하다 보니 센서의 방식, 크기, 장착 위치도 자동차의 형태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센싱이나 모니터링이 완벽할수록 밖을 보는 투명창의 면적이나 위치의 제약이 줄어듭니다. 레벨 4나 5에서는 사이드윈도나 리어윈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미래 컨셉카를 보면 창문이 없습니다. 지금은 모니터링 기술의 불확실성 때문에 법적으로 창문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게 사이드미러가 디지털미러로 바뀐 것처럼, 그냥 인테리어 한 부분이 디스플레이가 될 것입니다. 왜냐면 탑승자가 영화를 보던, 일하던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길 원할 것이고, 필요하면 실내 어디든 밖을 디스플레이해주면 되기 때문이에요.
결국은 모든 변화가 자율주행으로 귀결됩니다. 지금은 인테리어에서 콕핏 디자인이 우선이지만 자율주행 기술이 보편화 될수록 콕핏은 없어질 거에요. 크러시패드(대시보드)가 인테리어 디자인의 핵심이고 스티어링 휠, 시트, 도어트림 등입니다만, 나중에는 각각의 요소가 아니라 인테리어 전체 공간을 어떤 주제로 디자인하느냐가 중요해질 거에요. 그리고 센터 콘솔을 얘기했지만, 이런 것들은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겁니다. 앞을 보며 가다 뒤돌아 앉을 때 회전하는 데 방해만 되죠.
레벨 4 자율주행차는 운전을 하지 않는 시퀀스가 베이스다. 그때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이 인테리어의 변화 이유다. 이동하는 거실이 돼 가고 있다.
현대 SEVEN 컨셉의 인테리어
한. 이런 미래 컨셉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정. 르노가 몇 년 전 발표한 이지 얼티모(EZ ULTIMO)가 있어요. 이 모델을 보면 우리가 말한 것들이 보여요. 초록색 인테리어의 이동하는 거실이죠. 근데 이 느낌이 현대자동차의 IONIQ 7 컨셉과도 비슷합니다.
런던의 블랙캡을 보면 실내 리어시트가 트렁크 공간까지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트렁크 자리를 실내로 들인 덕분에 레그룸이 매우 넓어 승객이 다리 쭉 뻗고 앉을 수 있습니다. 혹시 승객이 더 탄다면 앞쪽의 힌지 시트를 내려서 마주 보고 탈 수 있습니다. 이런 포맷이 거꾸로 더 미니멀리즘이며 미래 컨셉일 수 있습니다.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트렁크 공간을 들여와 실내공간을 하나로 크게 쓰는 것이죠.
한. 독일 메이커들이 오래된 모델을 꺼내와 인테리어를 단순화해 보여주기도 하던데요.
정. 그런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분히 헤리티지를 강조하는 이미지메이킹입니다. 왜냐하면 테슬라는 신생업체고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런 것을 만들어 왔어!”라고 보여주고 싶은 것이죠.
한. 미니멀리즘이란 것이 익스테리어에서도 일어나고 있나요?
정. 약간 혼재하고 있긴 하지만, 익스테리어는 전혀 미니멀리즘이 아닙니다. (웃음) 예전보다 훨씬 더 복잡해 보이지 않아요? 더 복잡합니다. 테슬라 같은 몇몇 회사의 익스테리어는 점점 더 요소를 없애면서 우주선 느낌이 듭니다. 프론트의 페이스 그래픽이 굉장히 명확합니다. 그런데 레거시 메이커의 익스테리어는 자꾸 반대로 가려는 느낌입니다. 어떤 것들은 몇 가지 얼굴이 하나의 페이스에서 보여요. (웃음)
한. 만일 교수님이 디자인한다면요? 테슬라 디자인은 마음에 드시나요?
정. 제가 디자인한다면 더 미니멀한 익스테리어가 반영되지 않을까요? 모델 S의 경우 나온 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 그래도 지금 나오는 EQS나 아우디 e-Tron보다 앞섰습니다. 특히 e-Tron은 무슨 변신 로봇이나 철가면 같지 않나요? 군용 느낌도 나요.
한. 와! 맞아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웃음) 또 요즘 많은 모델들이 영화 ‘휴가대소동(National Lampoon's Vacation)’에 나오는 괴상한 스테이션 웨건같거든요.
정. 모델 S는 매우 퓨어한 스포츠카 형태이고 굉장히 잘 다듬어진 덩어리입니다. 오래전 현대자동차에서 일할 때 미국 출장을 가 주차돼 있는 모델 S를 봤을 때, ‘어 이거 뭐지?’란 느낌으로 한 시간 동안 그 차를 떠날 수 없었어요. 그릴은 없고, 사이드 프로파일이 정말 근사하게 잘 빠졌고, 도어핸들도 없고, 뭐랄까 우주선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근데 그때는 인테리어를 쳐다 볼 생각도 못했지만, 하여튼 차가 너무 다른 거에요.
요즘의 SUV의 프론트를 보면서 ‘휴가대소동’의 괴상한 웨건을 떠올리는 동안, 정 교수는 익스테리어는 미니멀리즘이 아니라며 변신 로봇, 철가면 등을 언급했다.
한. 테슬라 말이 나와서 그런데, 아까도 잠깐 언급했지만, 모델 3의 센터 디스플레이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비욘드 HMI의 피터 뢰스거 박사 경우엔 “모델 3에서 최소화된 HMI는 특정 매력을 갖고는 있지만, 너무 축소됐고, 정보의 위치가 최선이 아니며, 스크린은 과부하”라고 말했거든요.
정. 저는 그것이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들아, 너희가 보던 인테리어는 이제 유물이야. 지금부터는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겁니다. 테슬라의 디자이너들이 바보라서 랩톱 같은 것을 떡하고 붙여 놓았을까요? 시인성 같은 요소는 뢰스거 박사 말이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개선하면 됩니다. 업그레이드, 업데이트하면 됩니다.
“어제까지는 열선 시트가 2단인데 오늘부터는 5단입니다”와 같은 OTA가 저는 너무 멋있습니다. 처음에는 조작 버튼이 두 개였는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버튼이 늘어난 것입니다. 포르쉐가 타이칸을 출시하면서 모든 버튼을 풀 터치스크린으로 바꿨는데, 이것은 테슬라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그냥 있던 자리에 있던 버튼들을 터치스크린으로 바꾼 것입니다. 테슬라가 터치스크린으로 바꾼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거에요. 테슬라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고려한 것으로, 내일 아침에 레이아웃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열선 스위치가 있던 곳이 에어컨 스위치가 될 수 있는데, 포르쉐는 폐차할 때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이럴 거면 그냥 물리 버튼을 넣는 게 나아요.
한. 이제 근황 토크를 좀 해보죠. (웃음) 불과 10년 전만 해도 IF, 레드닷, IDEA, 스파크 등에서 수상하는 한국 디자이너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교수님은 왜 이렇게 많이 수상하는 거에요? 해마다 수차례씩 받으시는데, 다른 유명 디자이너들도 다 그런가요? 최근 수상작 좀 소개해주세요.
정. 저보다 더 많이 받는 분들도 많아요. 이렇게 받아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웃음)
최근의 모빌리티 관련 수상작은 작년(2020년)에 받은 구조 드론이에요. 누군가 조난을 당하면 구조대원들이 들것을 가져가 조난자나 환자를 태워 오는데, 그러면 대원이나 환자 모두 힘들어요. 흔들려 위험하고요. 저희가 개발한 것은 유인 드론으로 들것 위에 프로펠러를 8개 단 형태이지요. 근데, 단순히 이렇게 말하면 ‘우웅하고 날아가는 들것이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에요. 그렇게 날아가면 환자는 혹 잘못될 수 있으니 기절초풍할 일이죠. (웃음) 이런 드론은 기술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힘듭니다. 우리 드론의 기능은 그냥 지상 1 m 상공에 평행으로 떠 있는 거에요.
한. 아! 개념은 백투더퓨처에 나오는 공중에 살짝 떠 있는 호버보드같은 거네요.
정. 네 맞아요. 이 드론(들것)은 응급구조대원의 배낭에 유선으로 연결돼 환자를 태워요. 그러니까 구조대원이 그냥 뛰어 내려오기만 하면 들것이 따라 내려오는 겁니다.
<저작권자 © AEM.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