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와 자동차 HMI
2008년 12월호 지면기사  / 글│손 준 우 책임연구원<json@dgist.ac.kr> 미래산업융합기술연구부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

2005년 가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건천 휴게소를 조금 지난 급커브 지점에서 SUV가 중심을 잃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추월선을 달리던 차는 360도 회전해 갓길에서 가까스로 멈췄다. 다행히 새벽 이른 시간이라 주변에 달리는 차가 없어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SUV는 왜 고속도로 상에서 중심을 잃게 되었을까?
당시 SUV를 직접 운전하고 있던 필자는 앞 유리의 성에를 제거하기 위해 에어컨을 조작하다가 급커브를 뒤늦게 발견하고 급히 조향장치를 조작하면서 이같은 위험한 상황을 경험했다. 이 사고를 통해 자동차 내부의 모든 HMI(Human-Machine Interface) 장치가 단순히 편의장치가 아닌 안전에 보다 깊이 관계된 장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 자동차에서의 HMI 설계는 안전성과 편의성을 균형있게 배분해야만 한다.
요즘 차에는 핸즈프리, 내비게이션 시스템, DVD 플레이어 등의 다양한 차량 정보 엔터테인먼트 장치를 비롯해 운전 보조장치 장착이 늘고 있어 부적절하게 설계된 자동차 HMI로 인한 운전자 안전 위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림 1은 우리나라의 교통사고를 유발 요인별로 분석한 도표이다. 전방 주시 태만, 판단 오류, 발견 지연과 같이 운전자 부주의로 인한 요인이 약 69.1%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차량 내부에서 운전 부주의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요인은 휴대전화 통화와 차량 편의/오락 장치 조작이다.
자동차 HMI는 운전자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동차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시스템으로 입력장치, 출력장치, 제어 로직으로 구성된다. 자동차 HMI가 갖는 주요 특징은 대부분의 기기 조작(오디오, 에어컨, 내비게이션, 핸즈프리 등)이 운전 중에 부가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운전자의 시각적인 주의 집중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운전 중 기기 조작을 위해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2초가 넘지 않도록 설계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LCD를 통해 정보를 제공할 경우엔 한 화면에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입력장치는 버튼, 터치스크린 등 촉각을 통한 제어 방식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음성인식, 비전 등과 같은 다양한 방식이 추가되고 있다.


고령 운전자 친화 설계

특히, 자동차 HMI 기술 개발은 고령운전자 친화형 설계가 필요하다. HMI 기술 개발의 어려움에는 자동차 산업이 갖는 ‘혁신의 역설(Innovation Paradox)’이 있다. 메이커들은 막대한 연구개발(R&D)비를 투입해 HMI를 개발하는데, 기본적으로 자동차에서의 새 기술 도입은 운전자의 목숨과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보수적이다. 또 HMI 신기술들은 비용문제로 고가 차종에 우선적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차종을 구매하는 ‘얼리 어댑터들’은 대부분 50대 전후의 준고령층이다. 이들은 젊은층과 비교해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리며 새로운 변화를 원치 않는다. 예를 들어 2001년 BMW가 iDrive란 신개념의 HMI를 선보였으나 소비자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나타냈다.
전세계는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2025년이 되면 60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유럽의 경우 28.8%, 북미 25%, 아시아 25.3%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우리나라 또한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2000년에 65세 이상 노령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인구의 7.2%에 도달하며 UN이 규정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고, 2019년과 2026년에는 각각 ‘고령 사회’와 ‘초고령 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증 취득 및 운전 비율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61세 이상의 운전자는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의 5.1% 정도였지만, 50대 전후의 운전자가 61세 이상 운전자가 되는 10년 후에는 10% 이상 대폭 증가할 전망이다. 그림 2에 나타난 바와 같이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율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 NHTSA(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의 연령별 교통사고 통계에 의하면, 그림 3과 같이 65세 이상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 치사율이 급격히 증감함을 알 수 있다.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시력, 청력, 운동 기능 등 육체적 능력뿐만 아니라, 단기 기억력, 공간 지각력 등과 같은 인지적 능력도 동시에 떨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고령운전자의 운전 능력, 위급 상황 대처 능력은 젊은 사람에 비해 떨어지고 발생한 사고의 강도는 매우 높아진다.
현재 자동차 업계에서는 노화현상에 따른 능력 저하를 줄여 줄 수 있는 HMI를 설계하기 위해 고령자의 운전 행동 특성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 연구는 특히 차내 정보 시스템과 같은 많은 인지 부하를 요구하는 기기의 HMI를 설계할 때 그림 4와 같은 부가 작업으로서의 기기 조작과 고령화에 따른 인지 능력 저하를 고려해야 한다. 또 각기 다른 연령별 운전 행동 특성으로 학습 패턴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대부분 숙련된 운전자는 신기술이 적용된 자동차를 이용할 때 사용자 매뉴얼을 숙지한 후 사용하기 보다는 일단 운전을 시작한 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사용법을 익힌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젊은 운전자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안전운전 경고가 발생한 경우 즉시 경고상황을 받아들이고 주의 운전을 하는 반면, 고령 운전자는 경고의 원인을 알아내려고 노력한 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차이로 인해 부적절한 HMI 설계는 고령 운전자의 안전운전을 더욱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음성인식과 다이얼 조작

최근 자동차 HMI의 일반적 설계 추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정보장치 위치가 운전자에게 근접
2) 다양한 방식의 입력장치가 사용됨
3) 보다 안전한 기기 조작과 정보 전달 방식을 채택함

자동차의 실내 디자인을 관찰해 보면, 1)번 설계 경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전의 자동차 실내 디자인에서는 네비게이션과 같은 정보 디스플레이 장치가 센터 페이샤(Center facer)의 중간에 위치했으나, 최신 디자인에서는 사진 2와 같이 디스플레이의 위치를 계기판 높이로 올려 운전자가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불과 10 cm 안팎의 위치 이동이지만 운전자의 시각적 부담을 덜어주고 전방 상황을 보다 효과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했다.
자동차 HMI에서 주로 사용되는 입력장치로는 버튼과 터치스크린 등이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운전자가 음성으로 차내 시스템을 조작하는 음성인식 기술 방식과 조작이 복잡해진 스위치를 단순화시킨 스위치 통합 기술의 두 가지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음성인식 기술을 통한 자동차 HMI는 현재 상용화된 자동차 HMI 기술 중 가장 안전한 방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활용도가 아직 높지 않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음성인식 기술을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핵심기술로 규정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음성인식 기술과 관련한 세계 시장규모는 2000년 53억 달러에서 2004년에 74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지속적인 증가 추세에 있다. 프로스트 앤 설리번(Frost & Sullivan)은 자동차 HMI 시장 보고서에서 조만간 음성인식 기술이 디스플레이 점유율을 앞지를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스위치 통합 기술은 휴대전화에서 보듯 단축키나 조그 다이얼 등과 같은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채용해 운전자의 조작성 향상과 디자인 단순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 기술은 BMW, 벤츠, 아우디, 토요타, 혼다, 닛산 등에 의해 상용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에어컨, 오디오, 내비게이션 등의 탑재 확대로 조작해야 할 스위치 수가 급격히 늘면서 운전자가 운전이라는 기본 조작에 집중하기 위해서 스위치 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스위치 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전자 제품이나 휴대전화 등에 적용되고 있는 조그 다이얼에서 힌트를 얻어 한 지점에서 차량 내 전자장치를 통합 제어할 수 있는 스위치 통합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BMW의 iDrive, 벤츠의 COMAND (COckpit MANagement and Data), 아우디의 MMI(Multi Media Interface), 혼다의 프로그레시브 커맨더(Progressive Com-mander) 등이 조그 다이얼을 적용한 대표적인 스위치 통합 기술이다. 또한 사진 2의 운전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운전대에 탑재된 조작 스위치도 그 기능과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운전대 스위치를 사용할 경우 운전자는 스위치의 위치를 촉각에 의하여 확인할 수 있어서 스위치 위치 확인을 위해 시선을 빼앗길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운전대 스위치는 촉각에 의해 스위치 차이를 식별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혼돈에 의한 오작동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 HMI 기술 중 ‘운전부하관리 시스템’이 있다. Volvo의 지능형 운전정보 시스템(Intelligent Driver Information System)과 Saab의 통화관리기(Dialogue Manager)가 현재 양산되고 있는데, 이 운전부하관리 시스템은 조향각, 브레이크 작동, 턴 시그널, 우적 센서 등 차량 네트워크 상에 존재하는 정보를 이용해 운전자의 운전 부하를 추정하고, 운전 부하가 높을 때 휴대전화 또는 문자 메시지 전달을 지연시킴으로써 안전운전을 지원해 주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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