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5, AN EXTRAORDINARY STORY’란 르노의 CEO 글을 읽는 동안 이 자동차 베테랑의 열정과 마법, 그리고 뉴 R5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테슬라의 혁명과 중국 제조업체의 혁신이 장악한 전기차 시장에서 과거 피아트 500을 부활시켰던 루카 데 메오는 뉴 R5 (E-Tech electric)로 르노를 소생시키려고 하고 있다. 르노에서 R5가 가진 의미, 상징성은 이제 그와 함께 새로운 매직이 돼야만 한다. 그 감동적인 출사표를 전한다.
글 | 루카 데 메오, 르노그룹 CEO
역 | 한 상 민 기자_han@autoelectronics.co.kr
Luca de Meo, CEO, Renault Group
루카 데 메오는 자동차 분야 30년의 경험을 지닌 베테랑이다. 1967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보코니 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위를 취득했다. 토요타 유럽에 합류하기 전인 1992년 르노에서 경력을 시작했고, 이후 피아트 그룹의 란치아, 피아트, 알파 로메오 사업부 책임자, 아바쓰 CEO, 피아트 그룹 CMO 직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 폭스바겐 그룹 및 브랜드의 마케팅 이사로 합류했고, 2012년 AUDI의 영업 및 마케팅 관리 이사회 멤버로 임명됐다. 2015년 11월부터 2020년 1월까지는 세아트 및 쿠프라 사장, 두카티 및 람보르기니 감독 위원회 멤버, 스페인 폭스바겐 그룹 이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2020년 7월부터 르노그룹의 CEO를 맡고 있고 2021년 1월부터 르노그룹 경영이사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노 앙페어 CEO도 겸직한다. 2023년 1월부터 유럽자동차제조업체협회(ACEA) 회장직도 맡고 있다.
2020년 7월 2일 목요일. 모든 것이 시작된 날이다. 오렌지색 목업에 빠져버린 짝사랑. 바로 뉴 R5 이야기다.
7월 초였기 때문에 모두가 휴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몇 주간의 봉쇄 후였지만, 7월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처럼의 외출을 계획하고 있었고, 이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난 전날 직장에 복귀했고 사무실로 돌아와 기뻤다. 그해 1월 르노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이후 오랫동안 출근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본래 가만히 앉아 있는 체질이 아니어서 코로나19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게다가 세아트 브랜드를 담당하던 폭스바겐 그룹에서 휴식 없이 경쟁사로 바로 이직할 수 없다는 고용계약서도 한몫했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빌랑쿠르(Billancourt)의 본사에 갔을 때부터 진짜 일이 시작됐다. 1992년 밀라노 보코니(Bocconi) 대학을 졸업한 이후 내 경력을 시작한 회사로 돌아간 최고의 순간이었고 이때 르노는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나를 이곳으로 부른 장본인이자 그룹 회장인 장 도미니크 세나르(Jean - Dominique Senard)와는 정말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그는 이미 회사를 반전시키기 시작했지만, 힘든 도전이 될 것으로 보였다. 전기로의 전환은 내연기관과 관련된 140년의 확신과 충돌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봉쇄’ 기간 동안 나는 가능한 한 바쁘게 지내려 노력했다. 회사에 관한 수십 권의 책과 기사를 읽었고, 기꺼이 나를 찾아온 전직 경영자와 파트너들을 만났다. 많은 생각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 회사의 주요 장단점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실제는 아주 조금, 아니 거의 알지 못했다.
내가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이다. 나는 르노의 디자이너들이 뭘 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특히 전기차에서. 이것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회복 전략을 수립하는 데 기초가 된다고 봤다. 그래서 그 첫 번째 결정이 바로 신형 모델을 보고 싶다고 말한 것이었다.
“그렇게 걷던 중 갑자기 R5처럼 생긴 실물 크기의 모델이 보였다”
플로레슨트 오렌지 목업
새로운 직책에 취임한 다음 날, 빌랑쿠르 본사에서 남서쪽으로 약 30분 떨어진 파리 근교의 기앙쿠르(Guyancourt) 기술센터로 향했다. 이 센터는 르노 브랜드가 많은 혁신을 설계, 제작, 시험하는 보호된 환경이자 내일의 모델을 발명하는 곳이다. 1만 2,000명의 엔지니어, 디자이너, 기술자를 모은 회백질의 집합체다. 나는 현재 개발 단계에 있는 모든 프로젝트를 동일한 방에 모아 달라고 요청했다. 라인업에는 글로벌용 소형차 몇 대와 대형 전기 모델이 포함돼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실망했다. 명백히 라인업의 완전 재검토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R5와 놀랍도록 닮은 실물 크기의 모델을 보게 됐다. 플로레슨트 오렌지 색이었기 때문에 놓치기가 힘들었다. 호기심이 생겨 기술센터의 담당자들에게 급히 돌아가 물었다.
“이건 뭐죠?”
“아, 이건 그냥 디자이너 프랑수아 르보와(Francois Leboine)의 탐구적인 연구입니다. 스타일 연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들이 대답했다. 디자인 책임자가 내가 반드시 보게 될 곳에 이것을 잘 놓아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형 전기차를 위한 제안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레트로 디자인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폐기됐습니다.”
나는 이 물건을 오랜 시간 들여다봤다. 그리고 확신했고 즉시 결정을 내렸다.
“바로 이거에요! 이 디자인을 네 개의 바퀴가 달린 플랫폼 위에 올리세요. 이것은 전기차여야 합니다. 우리는 르노 5를 만들 것입니다!”
Fiat 500, 2007
물론,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2007년 피아트에서 감독했던 신케첸토(Cinquecento, Fiat 500)의 성공적인 재출시를 떠올렸다.
세계적인 성공! 하지만 그것이 나의 유일한 영감은 아니었다. 모든 리딩 카 메이커는 다른 어떤 회사들보다 DNA 를 더 많이 표현하는 모델을 적어도 하나는 갖고 있다. 이것들은 그들의 고전이다. 르노에는 4L, R5, 트윙고, 에스파스, 캉구가 포함된다. 폭스바겐 골프나 메르세데스 S클래스와 같은 일부는 수년에 걸쳐 사라지지 않고 진화하고, 500이나 MINI와 같은 것들은 오랜만에 컴백한다.
“새로운 르노 5는 또 다른 반등의 상징이 될 것이고,
르노를 전기차 챔피언들의 클럽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부분 작동했다.
첫 번째 생애에서 르노 5는 브랜드의 역사에 큰 자취를 남겼고, 이번에도 같은 성과를 거두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의 상황과 명백한 유사점도 볼 수 있다.
1970년대 르노 5는 석유 쇼크로부터 회복하고 연비의 시대로 성공적인 전환을 이끌었다. 그때 사람들은 석유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했거나 적어도 희귀해져서 매우 비싸질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약 50년 후인 지금, 뉴 르노 5는 다른 반등의 상징이 돼 르노를 전기차 챔피언들의 클럽에 올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직감은 아이콘이 된 모델의 기원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을 알기 위해, 그것으로부터 효과적으로 영감을 끌어내기 위해 말이다.
에지있는 어포더블 카
1972년 르노 5가 출시됐을 때, 난 아프리카에 있었다. 다섯 살이었지만, 이미 바퀴 위에 있는 모든 것에 매료되었고 그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싶어 했다. 우리 가족은 피아트만 갖고 있었는데, 엄마가 R5의 라이벌인 피아트 127을 몰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종종 프랑스어를 말하는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 프랑스 엄마들이 모두 르노 5를 운전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솔직히 말해, 그때는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이 차의 창의적인 독창성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후였다.
겨우 3.52 m의 길이지만 이 차는 혁신적이고 대담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현대적이었고, 70년대의 상징이자 팝아트의 알레고리였다. 기분 좋은 얼굴, 밝은 색상, 빛나는 오렌지색 가죽 시트, 3도어 바디워크, 플라스틱 범퍼, 오리지날 사이드 프로텍션과 인티그레이티드 도어 핸들 등이 있었다.
이 작은 르노는 그 즉시 신개념, 그때까지는 일상적인 언어가 되지 못했던 ‘어포더블하지만 날렵한(edgy) 차’라는 표현을 촉발시켰다. 실용적이고 장난기 많고, 기능적이지만 운전자에게 만족스러운 차였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리어 해치가 있어 마치 살롱과 왜건(estate)의 교차점처럼 보이면서도 1965년에 출시된 골프보다 훨씬 이전에 새 출발을 한 대형 패밀리 카인 소형 R16과 조금 닮아 보였다. 이전 모델과 마찬가지로 R5는 매우 유용한 기능이 있어 부트(트렁크)를 더 크게 만들고 접근하기 쉽게 했다. 이 차를 소유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줬다. 처음으로, 자동차의 명성이 크기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는,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R5의 장점 중 하나는 그것이 정말로 우리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그런 혼합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대담한 아이디어다. 그들은 대담했다.
먼저, 디자이너 미셸 부에(Michel Boue)는 디자인 오피스의 책임자에 의해 ‘대체로 아이디어가 거부되고 특별히 눈에 띄는 성과를 거룬 적 없는 사람’으로 묘사된 르노 스튜디오의 디자이너 열 명 중 한 사람이었다. 부에의 시작은 최고가 아니었다. 하지만 부에는 언제나 ‘추하고 못생긴 것은 팔리지 않는다’고 말한 진정한 열정가이자 산업 디자인의 선구자인 프랑스계 미국인 레이몬 로위(Raymond Loewy)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로위의 집착은 스타일과 기능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이었는데, 그의 주요 고객으로는 쉘, 코카콜라, 스튜드베이커(Studebaker), 럭키 스트라이크(Lucky Strike) 등이 있었다. 이런 로위에 영감을 받은 미셸 부에는 1967년 4월 26일 ‘기밀 122 프로젝트’를 위해 두 개의 스케치를 제출했다.
큐빅 라인, 후면 해치, 악동 같은 미소를 짓는 전면 그릴, 큰 도어 등의 주요 특징이 이미 여기에 존재했다. 이 화려한 디자인 쿠데타의 배후에 있는 남자는 이 제품을 “여성스러운 미학과 조화를 이루는 민첩한 라인의 작은 물건”이라고 묘사했다. 이것은 대담하지만 멀고 먼 미래를 내다봤던 것이다. 그때는 여성해방운동의 시대였다. 그들은 일하러 나가길 원했기 때문에 세컨드카가 필요했다.
이례적으로, 그날 발표된 모형은 즉시 동결됐다. 그러니까 명백하게 한 번에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 부에는 르노의 또 다른 혁신인 르노트라마(Renaultrama)를 사용했는데, 이 장치는 풍경이 뒤에 스크롤되는 동안 1:5 축소비율의 모형을 보여줬다. 1970년대에 가상현실이라니!
기꺼이 위험을 무릅쓴 또 다른 인물은 당시 CEO인 피에르 드레이퍼스(Pierre Dreyfus)였다. 그는 곧바로 이 새로운 개념을 ‘재미있고 호감이 간다’며 실행하자고 했다. 프로젝트에 활기를 불어넣는 이 열정을 관련된 모든 사람이 공유했다. 즉, R5의 장점 중 하나는 그것이 르노 전체에 진정으로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동차가 카리스마를 가질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을 확인시켜 줬다”
정상에 오른 10년
이것은 자동차가 카리스마를 가질 수 있다는 내 생각을 확증해줬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은 업계에서도 독특한 것이었다. 매력과 존재감의 혼합, 나를 다른 사람들과 구분 짓게 하는 정의할 수 없는 품질. 오늘날 이 주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 왜냐면 우리 분야가 너무나 많은 실존적 질문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스티어링 휠과 4개의 바퀴로 꿈의 물건을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젊은 세대가 이것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자동차에 대한 열정과 새로운 환경적 제약 사이의 균형을 맞출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R5는 진정한 영감의 원천이다.
R5는 예산 내에서 모든 규칙을 어겼다. 무제한적인 예산으로 그 매력을 높이기는 쉬웠겠지만 이 경우엔 아니었다. 그래서 이 작은 시티카는 영리해야만 했다. 디자인은 혁신적이지만 기계적 구성은 전통적이었다. 엔진 레이아웃은 횡 방향이 아닌 종 방향으로 배치됐고, 후면에 트랜버스 토션 바, 4L에서 차용한 플랫폼, 기계적 가공이 더 쉬운 평평한 사이드 윈도가 채택됐다. 르노 5는 산업적 관점에서도 혁신이었다. 자동차 산업에 혁명을 가져온 두 가지 기술 혁신, 즉 컴퓨터 지원 설계의 출현과 플린스(Flins) 시험 현장에 최초의 산업용 로봇의 도입 혜택을 받은 최초의 차였다. 이를 통해 개발 비용을 더 낮추고 더 매력적인 측면에 대한 투자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올바른 결정이었고 판매는 즉시 늘었다. 1973년에는 10만 대를 돌파해 R5를 시장 순위에서 5위로 올렸다. 이듬해엔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가 됐다. 그리고 205가 보닛을 찔러넣을 때까지 거의 10년 동안 1위 자리를 지켰다! R5는 1985년 ‘잔인한 세상이여 안녕(Goodbye cruel world)’이란 제목의 광고와 함께 멋진 이벤트로 마지막 인사를 하기까지 550만 대를 팔았다.
“헤드라이트 대신 눈을, 번호판 대신 입으로 의인화한 디자인의 놀라운 예다”
놀라운 기능들
내가 좋아하는 점이기도 한데, 이런 멋진 결과를 얻기 위해 르노는 사자처럼 싸워야 했다. 새로운 버전을 테스트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서 끊임없이 도전했다.
예를 들어, 빌트인 오픈백 시트의 TS, 슈퍼차지 알핀(Alpine), 센터 엔진과 거대한 윙 익스텐션을 갖춘 근육질의 터보, 스페인 시장을 위한 더 긴 휠베이스와 기존 리어 부트를 갖춘 세단, 프리미엄 마감의 TX, 미국 시장을 위한 5도어 모델 르카(Le Car)까지, 심지어 EDF와 함께 개발한 전기 버전도 있었는데 납산 배터리로 최고 속도 80 km/h 및 주행거리 110 km를 자랑했다.
R5는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곧바로 돌아왔다. 이런 대담한 접근 방식은 유머와 코믹북 스타일을 활용한 광고에도 반영됐다. 이것은 당시 자동차 세계에서 최초였다. 헤드라이트 대신 눈, 번호판 대신 입처럼 의인화한 디자인의 놀라운 예였다.
르노 5는 쉬운 삶을 살지 않았다. 1973년 석유파동보다 1년 전에 태어나, 자본주의 황금기의 마지막 시기에 성장했다. 사실상 문명의 이동이었기 때문에 그때 많은 유럽 자동차들이 도태됐지만 R5는 그 길을 지속했다. 심지어 회사가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이런 상황에 대응해 르노는 1976년 GTL 버전을 출시했다. 연료 효율성을 위해 설계됐는데, 이는 100 km 당 연료 소비량이 5리터 아래로 내려간 최초의 차였다.
여기서 특히 인정해야 할 점은, 이 탁월한 시장 통찰력이 어느 정도의 질투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물론 다른 곳에서도 그랬다. R5의 내부 신전에 들어가 모든 비밀을 해제하기 위해 돈을 내고 싶어했던 몇몇 경쟁 업체가 있었다는 사실도 난 알고 있다.
“나는 뉴 르노 5가 우리 전기 라인업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
자연적인 혈통
나는 지금 높은 곳에 있는 R5가 작은 전기 형제자매들을 다정함과 열정으로 내려다보며 당시 광고 중 하나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르노 5, 그건 가족이에요!”
이 자연스러운 혈통이 내 최종 결정의 균형을 맞추었다. 그래 해보자!
2020년 7월 2일, 나는 기앙쿠르를 떠나기 전 오렌지색 모형을 최대한 빨리 실제 차로 만들어 달라고 팀에 요청했다. 몇 번의 수정이 필요했지만,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여름에 나는 화면을 통해 첫 스케치를 봤고 10월이 되자 차는 완성돼 있었다. 로렌 반 덴 애커(Laurens van den Acker)와 질 르 보르네(Gilles Le Borgne)의 지휘 아래 디자인, 엔지니어링 팀은 빛의 속도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해 11월 르노 브랜드의 디자인 부사장을 맡게 된 질 비달(Gilles Vidal)의 지원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중요도가 너무 높아 이 새로운 모델의 개발시간을 대폭 단축해야만 했다.
나는 뉴 르노 5가 우리 전기 제품군의 초석이 되기를 바랐다. 2021년 1월 14일 “르날루션(Renaulution)”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때, 컨셉 목업은 이미 준비돼 있었고 내 뒤에는 무대가 있었다. 그룹의 새로운 전략의 상징으로 선택했다. 이것은 7월 2일 엔지니어들에게 허가를 받은 지 불과 6개월 만이었다. 놀랍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차는 2024년에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피아트 500이 컴백했을 때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어떤 제품들은 마법과도 같다고.
끝없는 토론을 할 필요가 없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두가 동의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한다. 관성은 없다. 이렇게 좋은 추억을 남긴 차를 부활시킬 때 회사는 엄청난 사랑을 쏟아붓는다. 이는 고객이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미래를 위한 희망적인 신호가 된다. 그들은 차에 담긴 사랑을 볼 수 있다. 나는 날마다 큰 설렘으로 환생을 추적했다.
나는 새로운 모델의 모든 세부 사항에 관심을 갖는 진정한 매니아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일부이기도 하다. 새로운 R5가 개발되는 동안 수십 번도 넘게 그 주위를 서성이며 거의 강박적으로 관찰했고,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오는 강렬하고 비판적인 토론을 했다. 예를 들어, 고객은 스티어링 휠의 기어 레버 색상을 선택할 수 있다. 립스틱 케이스에서 영감을 얻었다! 나의 고정된 생각 중 하나는 새 차의 디자인이 초기 컨셉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이 된 꿈을 팔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확인했다. 이것은 우리가 보닛에 작은 충전 표시기를 유지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3년의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내가 처음으로 운전석에 앉았을 때였다. 기술센터를 처음 방문한 지 정확히 3년 후인 2023년 7월 3일, 파리에서 약 100 km 떨어진 테스트 트랙 중 하나인 오브와(Aubevoye)에서 차를 운전하도록 초대받았다. 그때 위장막 뒤에 가려져 있는 차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엔지니어 중 한 명과 함께 운전대를 잡았는데, 그것은 화려한 드라이빙 감각과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순수한 기쁨의 순간이었다. 나는 운전자를 칭찬했고 그의 대답은 나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보스의 차니까 실수할 수 없었어요!”
르노가 다시 인간 중심적이고 친근하며 접근 가능한 회사로 거듭나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 전성기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상징적인 차를 부활시키는 것이 그 과정에 기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 우리는 확실히 올바른 길을 가고 있구나!’
“일렉트릭 모더니티의 대중화를 목표로 한다”
소프트웨어로 채워진
‘아이코닉’하지만 시대에 맞게. 익숙한 라인이지만 뉴 르노 5는 실제로 이전 모델과 공통점이 거의 없다. 우리는 개성을 부여하기 위해 몇 가지 근본적인 선택을 했다. 엘론 머스크(Elon Musk)의 테슬라가 혁명을 일으키고 중국 업체의 최신 혁신으로 흔들리는 EV 시장에서 이도 저도 아닌 차가 설 자리는 없다. 기존 차체에 배터리를 붙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R5는 이제까지 이들 플레이어가 등한시했던, 작고 저렴한 시티카를 공략함으로써 도전에 나선다. 혁신과 소프트웨어로 가득 찬 R5는 일렉트릭 모더니티(electric modernity)의 대중화를 목표로 한다. 이 사업에서 모든 것은 플랫폼에서 시작되고, R5 플랫폼은 전기 구동 시스템만을 위해 설계됐다.
나는 이 점에 대해 르노 엔지니어들과 오랫동안 논의했다. 그들 중 일부는 내연기관 엔진도 장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카 아이디어를 옹호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디자인은 우리에게 큰 이점을 준다. 우리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이런 선택을 했다. 이로써 우리는 경쟁사보다 최소 2년 이상 앞서게 된다. 구체적으로 르노 5는 일반적인 차의 1/3 수준인 4개의 배터리 모듈을 탑재해 중량과 공간 측면에서 상당한 절감 효과를 누린다. 나는 또한 자동차에 인터랙티브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의 개성과 유용한 동반자가 되는 것이 아이디어였다.
“이전 모델에 이어 현대 기술로 무장한 뉴 르노 5는 여전히 대중문화 자동차다!”
유용성! R5는 카본-프리 에너지를 그리드에 다시 공급할 수 있는 최초의 차다. 이 기술적 기능은 제조업체에게는 비용이 들지만, 소비자에게는 좋다. 조사에 따르면 전기 요금을 최대 50%까지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성! 차에는 대시보드와 운전자의 스마트폰 사이를 탐색하는 르노(Reno)라는 아바타가 있다. 인공지능으로 구동되는 작은 캐릭터로, 운전 팁을 제공하거나 차가 주행하는 동안 장소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마치 다마고치처럼 살아가며 배우게 될 것이다. 이것은 차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 것이다. 이는 선도적인 브랜드만 가능한 ‘셀프-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이전 모델에 이어 현대적인 기술로 무장한 뉴 르노 5는 여전히 팝컬쳐 카다! 또한 원격 진단 및 업데이트를 제공해 훨씬 더 큰 모델의 모든 특성을 갖춘다. 그리고 300 km의 주행거리와 경쟁력 있는 가격은 자동차 산업의 진정한 게임체인저다.
“이 차는 르노와 프랑스를 다시 연결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메이드인 프랑스
이게 다일까? 그렇지 않다. 제품은 확실히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또한 프랑스와 르노에게 필수적인 또 다른 측면의 모험이기도 하다. 산업의 회복과 쇠퇴를 막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 대한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뉴 르노 5를 저비용 국가에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많은 사내 동료들도 그렇게 하도록 독려했고 모두의 생각을 들었지만 나는 버텼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이 차는 불과 3년 전 브랜드와 관련된 탈산업화 및 재배치에 대한 아이디어를 뒤로하고 르노와 프랑스를 다시 연결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내 생각은 자동차를 구입하면 그 나라의 산업 문화의 일부를 구입한다는 확고한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른 곳에 만들어 뿌리부터 잘라내면 영혼도 잃게 된다. 예를 들면, 알파 로메오를 운전하면 휴일에 이탈리아 도로를 따라 운전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르노 5를 몰 때는 프랑스의 환경을 상상해야 한다. 나는 소비자들이 이 부분에 매우 민감하다고 확신한다. 물론 더 비싸지 않다면.
나는 그것이 쉽다고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는 해냈다. 우리는 재정적 손실 없이 ‘메이드 인 프랑스’ 모델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다. 뉴 르노 5는 오트 드 프랑스(Hauts de France) 지역의 두에(Douai)에서 조립될 것이다. 그것은 이 공장에서 생산라인을 가동한 최초의 차였던 오리지널 R5에 대한 강력한 찬사다. 그리고 우리는 인근에 ElectriCity로 불리는 전기차 전용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를 위해 지역에 100억 유로 이상의 직간접 투자가 이뤄졌다. 우리는 2개의 조립 공장과 2개의 배터리 기가팩토리를 갖춘 주요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있고, 그중 하나는 프랑스 스타트업인 베르코어(Verkor)가 운영할 것이다. 목표는 전체 시스템의 탄소 배출량을 제한하는 것이다. 공급업체의 80%가 반경 300 km 이내에 위치했다. 이 또한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인다.
“우리는 이 차를 개발하는 동안 이미 많은 것을 배웠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는 불필요한 지출을 추적하고 원가를 낮추기 위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모색해왔다. 그 결과, 우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부품 수를 대폭 줄였다.
내가 회사에 입사했을 때 소형차 한 대에 최대 2,600개 부품이 필요했다. 이 수치는 이제 새 모델의 경우 평균 1,300개 미만으로 떨어졌고, 르노 5의 경우 심지어 1,100개 미만으로 떨어졌다. 여기에는 많은 이점이 있다. 자동차를 더 빨리 조립할 수 있고 품질이 크게 향상된다. 무엇보다 개발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고, 더 단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동차 산업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날 수많은 기술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더욱 민첩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배터리 부문에서는 일부 공장이 문을 열기도 전에 노후화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차를 개발하는 동안 이미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이는 긴 사슬의 첫 번째 연결일 뿐이다. 우리는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해 그룹의 또 다른 아이콘인 르노 4와 알핀 모델을 제작할 것이다. 또 뒤를 이어 전기 트윙고와 기타 여러 제품이 뒤따를 것이다.
르노 가족은 앞으로 몇 년 동안 꾸준한 속도로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르노 5 E-Tech electric과 항상 특별한 감정적인 관계를 맺을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르노에서의 첫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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